여행 9일 차 (2023년 1월 19일) - 하이델베르크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눈이 조금 내린 모양이다. 숙소 앞 정원과 길에 눈이 쌓였다. 집집마다 벽난로가 있는지, 지붕 위 굴뚝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문득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와 있는 건지, 현지에서 지나치며 만나는 사람들은 살면서 다시 만날 일 없겠지.. 어떤 인연으로 나와 이렇게 우연히 옷깃이 스치게 된 걸까 생각하며 신기해하는 경우가 있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아이들은 피곤하다. 이미 날이 밝았는데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40일을 다녀야 하는 긴 여행이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다. 갈 수 있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쉰다. 행여나 많이 아프게 되면 전체 여행이 어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 자는 모습을 가만히 보니, 표정이 나쁘진 않다. 아이들 자는 얼굴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대강은 알 수가 있는데.. 피곤할 뿐 어디가 아프거나 하진 않은 것 같다. 돌파리 아빠 의사의 진단이다.
오늘은 슈투트가르트에서 가까운 하이델베르크에 가보기로 했다. 하이델베르크 성을 구경하고 작은 도시도 살살 걸으며 구경해보려고 한다. 느지막이 일어난 아이들을 먹이고 추슬러 길을 나선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대학4학년 때 유럽 배낭여행을 왔을 당시 가보았던 곳이다. 벌써 20년이 넘어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도시에 들어서니 흐르는 강과 성의 위치 전망 등이 아주 낯설지 않다. 하이델베르크 성 가까운 공영주차장을 찾아 주차를 하고 푸니쿨라를 이용해 성으로 올라갔다. 성이 있는 언덕 위로 걸어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하이델베르크 성 입장료에 푸니쿨라 이용료까지 포함된 패키지를 샀기 때문에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이들의 체력 관리도 필요하고.
하이델베르크 성은 30년 전쟁 당시 프랑스의 공격으로 성이 파괴된 후 복구했으나 18세기에 벼락을 맞아 불타고(추측이라 함) 폐허처럼 남겨져 있는 성이라 한다. 아직 복원이 진행 중이라는데 겉으로 봐서는 그 복원 속도가 아주 더딘 것 같아 보였다.
독일의 역사적인 유적지라는데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는지 성 내부 벽에 낙서가 가득하다. (한글 낙서도 심심찮게 보였음 ㅠㅠ) 대학 다닐 때 배낭여행으로 왔을 당시에는 이 정도까지 을씨년스럽게 방치되어 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살짝 실망스럽기도 했다. 당시 여행 왔을 때는 계절이 여름이라 지금의 분위기와는 좀 다를 수도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는 쌀쌀한 겨울에 왔고, 날씨도 구름이 낀 흐린 날이라 더욱 쓸쓸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성에서 하이델베르크 도시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발코니 같은 곳이 있다. 구글 지도를 보며 어디에 뭐가 있고 어떤 건물이 어떤 것이지 확인하며 지리를 파악한다. 그래, 여기 왔었어.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배낭여행 왔을 때 봤던 그 풍경이 더욱 또렷하게 눈앞에 떠올랐다. 도시 가운데로 네카어 강이 흐르고 평화롭고 조용한 독일의 작은 도시 풍경. 평화롭다. 우리 셋 다 별말 없이 한동안 가만히 서서 도시를 내려보다 발길을 돌렸다.
성 안에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 만한 구경거리는 많지 않았다. 그나마 성 안에서 유일하게 볼만한 구경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와인 저장고였는데 하이델베르크 시민 모두가 매일 마셔도 몇 년은 마셨을 것 같은 거대한 규모였다. 사람들이 옆에 선 사진을 보면 그 와인통이 얼마나 큰 지 가늠할 수 있다.
성에서 내려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건물을 구경하고 구시가지를 산책하다가 숙소로 복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