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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떠난 유럽 40일 드라이브] - 16화

여행 9일 차 (2023년 1월 19일) - 하이델베르크

by Juno Curly Choi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눈이 조금 내린 모양이다. 숙소 앞 정원과 길에 눈이 쌓였다. 집집마다 벽난로가 있는지, 지붕 위 굴뚝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문득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와 있는 건지, 현지에서 지나치며 만나는 사람들은 살면서 다시 만날 일 없겠지.. 어떤 인연으로 나와 이렇게 우연히 옷깃이 스치게 된 걸까 생각하며 신기해하는 경우가 있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아이들은 피곤하다. 이미 날이 밝았는데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40일을 다녀야 하는 긴 여행이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다. 갈 수 있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쉰다. 행여나 많이 아프게 되면 전체 여행이 어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 자는 모습을 가만히 보니, 표정이 나쁘진 않다. 아이들 자는 얼굴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대강은 알 수가 있는데.. 피곤할 뿐 어디가 아프거나 하진 않은 것 같다. 돌파리 아빠 의사의 진단이다.

A2F5CF02-82D8-45A8-B50E-F93A26A3808A.jpg 밤새 눈이 내렸나 보다. 조용한 마을.
IMG_6434.HEIC 일주일 넘게 여행하느라 피곤한 아이들이 곤히 잠들었다.

오늘은 슈투트가르트에서 가까운 하이델베르크에 가보기로 했다. 하이델베르크 성을 구경하고 작은 도시도 살살 걸으며 구경해보려고 한다. 느지막이 일어난 아이들을 먹이고 추슬러 길을 나선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대학4학년 때 유럽 배낭여행을 왔을 당시 가보았던 곳이다. 벌써 20년이 넘어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도시에 들어서니 흐르는 강과 성의 위치 전망 등이 아주 낯설지 않다. 하이델베르크 성 가까운 공영주차장을 찾아 주차를 하고 푸니쿨라를 이용해 성으로 올라갔다. 성이 있는 언덕 위로 걸어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하이델베르크 성 입장료에 푸니쿨라 이용료까지 포함된 패키지를 샀기 때문에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이들의 체력 관리도 필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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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로 올라가는 푸니쿨라


하이델베르크 성은 30년 전쟁 당시 프랑스의 공격으로 성이 파괴된 후 복구했으나 18세기에 벼락을 맞아 불타고(추측이라 함) 폐허처럼 남겨져 있는 성이라 한다. 아직 복원이 진행 중이라는데 겉으로 봐서는 그 복원 속도가 아주 더딘 것 같아 보였다.

독일의 역사적인 유적지라는데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는지 성 내부 벽에 낙서가 가득하다. (한글 낙서도 심심찮게 보였음 ㅠㅠ) 대학 다닐 때 배낭여행으로 왔을 당시에는 이 정도까지 을씨년스럽게 방치되어 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살짝 실망스럽기도 했다. 당시 여행 왔을 때는 계절이 여름이라 지금의 분위기와는 좀 다를 수도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는 쌀쌀한 겨울에 왔고, 날씨도 구름이 낀 흐린 날이라 더욱 쓸쓸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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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성곽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 복원 공사 중이라는데 인부는 보이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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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서 내려다 본 하이델베프크 시

성에서 하이델베르크 도시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발코니 같은 곳이 있다. 구글 지도를 보며 어디에 뭐가 있고 어떤 건물이 어떤 것이지 확인하며 지리를 파악한다. 그래, 여기 왔었어.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배낭여행 왔을 때 봤던 그 풍경이 더욱 또렷하게 눈앞에 떠올랐다. 도시 가운데로 네카어 강이 흐르고 평화롭고 조용한 독일의 작은 도시 풍경. 평화롭다. 우리 셋 다 별말 없이 한동안 가만히 서서 도시를 내려보다 발길을 돌렸다.


성 안에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 만한 구경거리는 많지 않았다. 그나마 성 안에서 유일하게 볼만한 구경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와인 저장고였는데 하이델베르크 시민 모두가 매일 마셔도 몇 년은 마셨을 것 같은 거대한 규모였다. 사람들이 옆에 선 사진을 보면 그 와인통이 얼마나 큰 지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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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서 내려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건물을 구경하고 구시가지를 산책하다가 숙소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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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구 시가지, 멀리 하이델베르크 성이 보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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