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6일 차 (2023년 1월 26일)
- 여정 : 융프라우 등반
여행 16일 차. 스위스 툰(Thun)에서의 아침. 어젯밤의 난감한 상황을 헤치고 오늘의 태양은 떠올랐다. 셋방살이의 설움은 여전하지만 오늘의 일정을 기대하며 기운을 내본다.
구름이 조금 꼈다. 오늘 융프라우에 오를 예정인데, 날씨가 좋지가 않아 조금 염려가 된다. 일정을 변경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은 더 기상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일단 오늘 도전하는 것으로 한다.
숙소 부엌에서 호스트 가족과 다시 어색하게 만나 같이 섞여서 아침을 먹는다. 아 이게 왜 어색한지 실감이 안 날 수 있는데.. 잠깐 부연하자면, 여기 숙소가 식사까지 나오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음식은 직접 차려 먹어야 한다. 냉장고 안에 주인집 우유, 우리 우유, 주인집 계란, 우리 계란.. 다 따로따로 들어있다. 그쪽과 우리가 같은 식탁에 앉았으나 음식은 서로 다른 상황. 서양 사람 입장에서는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지만, 우리나라 정서에는 조금은 어색한 상황일 수 있다. 물론 숙소도 주인댁도 아무런 잘못은 없다. 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예약한 내 잘못이지. 이럴 거면 정식으로 홈스테이 숙소를 예약하고 갔으면 덜 어색했을 텐데.. 아무튼 그랬다. 그래. 그만 징징 거리겠다. That's travel...
다년간의 아빠 셰프 경험으로 이제 눈 감고도 만들 수 있는 간장계란밥을 아주 능숙하게, 보란 듯이 만들어 아이들과 나눠먹고 길을 나섰다.
융프라우 올라가는 여러 가지 루트가 있는데, 우리의 선택 루트는 다음과 같다.
숙소 -> 인터라켄 동역(기차) -> 그린델발트 터미널(곤돌라) -> 아이거글렛쳐(산악열차) -> 융프라우
숙소에서 출발해서 30분 정도 차로 달려 인터라켄 동역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역사 안으로 들어가 융프라우 왕복 티켓을 샀다. 온라인에서 다운로드하여 가지고 온 할인쿠폰을 사용해서 어른 150프랑, 15세 이하 아이들 20프랑씩에 구매. 어른과 아이들 패스의 가격 차이가 정말 크다. 아이들 요금이 저렴하여 괜히 돈 번 기분이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하여 그린델발트 터미널까지 이동한다. 약 40분 정도 소요. 창밖에 풍경을 보면서 이제야 비로소 스위스 경험한다.
그린델발트에 도착해서 아이거 익스프레스라고 하는 곤돌라를 타고 아이거글렛쳐까지 올라간다. 20여 년 전, 친구와 배낭여행으로 왔을 때는 곤돌라는 없었고 푸니쿨라와 산악열차만을 타고 올라갔었는데 세월이 흐른 만큼 올라가는 방법도 진화했다.
살면서 여태껏 보지 못한, 쉽게 보기 힘든 풍경을 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곤돌라에 탑승한다. 구름과 안개가 많이 껴 있어서 제대로 풍경을 볼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그런데 그 걱정은 기우였다. 곤돌라가 출발하고 조금 지나자 안개와 구름을 뚫고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자 믿기 어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풍경들끼리 서로 경쟁하듯, 갈수록 더 훌륭한 풍경이 다시 눈앞에 펼쳐지고 또 가다 보면 더 멋진 광경이 다시 나타났다. 다행히 올라갈수록 날씨도 점점 좋아졌다.
약 20분 곤돌라를 타고 아이거글렛쳐에 도착했다. 다른 관광객들이 움직이는 방향대로 같이 따라가니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산악열차를 타는 플랫폼이 나온다.
다시 산악열차로 갈아타고 융프라우로 올라간다. 약 20분을 올라가는데, 중간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view point에서 기차를 잠깐 멈춰준다. 사직을 찍고 다시 기차 탑승. 점점 올라갈수록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가슴이 조금씩 답답해짐을 느낀다.
융프라우 전망대에 도착했는데 호흡하기가 살짝 힘들고 어지럼증도 있다. 기운이 없어 그럴 수 있으니, 배를 먼저 채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카페테리아로 간다. 융프라우 왕복 패스에 포함되어 있는 바우처로 신라면과 빵 등을 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한국 관광객이 그만큼 많아서인지, 아니면 국적 상관없이 산 정상에서 먹는 라면 맛은 진리! 임을 다 알게 된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타국에서 만나는 신라면은 무척 반가웠다. 맥주를 한잔 추가 주문하여 아이들과 자리를 잡는다. 융프라우 전망대에서 먹는 라면맛이란. 말해 뭐 해. 꿀맛이다.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고, 본격적으로 융프라우 투어 코스를 시작한다. 융프라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다양한 전시(?), 설명이 있는 통로를 지나고 얼음 터널도 통과한 후 드리어 만난 Prateau. 스위스 국기와 함께 사진을 찍는 photo spot이 있는데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우리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앞뒤로 한국 관광객이 많이 있다. 서로 이야기도 건네고 사진도 찍어주면서 '뜨거운' 까지는 아니지만 '따스한' 동포애도 잠깐 느껴본다.
사방으로 펼쳐진 알프스의 설원 풍경에 말문이 막힌다. 써니야~ 워니야~ 이리 서봐, 저리 서봐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아이들도 처음 보는 풍경에 연신 "와~~" 감탄사를 연발한다. 물론 내 두 발로 걸어 올라온 것은 아니지만 정상 등정의 기쁨과 감동이 몰려온다. 한편으로는 기후 위기로 언젠가 이 아름다운 풍경도 상하고 사라질까.. 뜬금없는 염려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텐션이 조금씩 떨어진다. 아무래도 산소가 갑자기 부족해지니 금방 지치는 모양이다. 하루 종일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아이들 컨디션을 생각해서 아쉽지만 하산하기로 한다.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아이들은 물 밖에 나온 물고기마냥 비실 비실대더니, 이내 반실신 상태가 되었다. 아이들뿐 아니라 나도 지쳐간다. 저녁에 숙소에 돌아가서 저녁을 만들어 먹기는 여러 가지로 내키지 않아, 밖에서 사 먹고 들어가기로 한다. 인터라켄 동역 근처에 있는 수제 햄버거 가게에서 편안하게 저녁을 먹고 집으로 향한다.
큰 고도차이를 하루에 겪어서 그런지 숙소에 돌아오니 많이 피곤하다. 독일에서 구매한 라벤호스트를 한병 원샷한다. 아이들에게 피로해소와 스트레스에도 좋다고 먹어보라 했더니, 둘째가 그 효과를 테스트해보자며 마시기 전에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겠다고 까불거리다가 나에게 크게 혼날 뻔했다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