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떠난 유럽 40일 드라이브] - 22화

여행 15일 차 (2023년 1월 25일)

by Juno Curly Choi

- 여정 : 콘스탄츠 -> 루째른 -> 튠(Thun)


여행 15일 차. 구름이 좀 낀 날씨. 기온은 영상 1도. 독일 남부에 있는 유명 휴양지인 콘스탄츠에서 눈을 떴다. 사실 콘스탄츠는 우리의 주요 목적지는 아니고, 스위스 넘어가기 전에 하루 묵어가는 경유지라고 보는 게 맞다.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호텔에 묵었더니, 에어비앤비와는 달리 특별히 집구경 할 것은 없어 심심했지만, 체크인-아웃하는 것이 간단하고 편해서 좋은 점도 있다. 그리고 조식. 호텔이 차려주는 아침을 맛있게 먹고 오늘 길을 떠날 준비를 한다.


오늘은 스위스에 첫 숙소가 있는 툰(Thun)까지 약 3시간 운전해서 가야 한다. Thun은 베른과 인터라켄 사이에 있는 작은 호수 마을이다. 스위에서는 융프라우에 올라갈 예정이라 인터라켄에 숙소를 잡으려니, 시설과 가격이 좋은 곳은 이미 예약이 마감되었고 남아 있는 숙소는 다 너무 비쌌다. 그래서 에어비앤비에서 범위를 넓혀 숙소를 찾다가 Thun에 있는 숙소를 발견하고 예약을 했다. 이 숙소와 관련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것은 이 글의 말미에 소개하기로 한다.

그리고 튠으로 가는 길에 있는 루째른에 들러 시내 구경을 하고 쉬어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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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워니는 피곤했는지 아침에 코피를 쏟았다. 코 점막이 약한 상태가 아직 지속되고 있어서 조금 피곤하면 코피가 난다. 오늘 일정이 빡빡하지만 그래도 여기 콘스탄츠까지 왔으니 그냥 떠날 순 없다. 콘스탄츠 구시가와 보덴 호수 구경을 하고 가기로 한다.

계절이 겨울이라 관광객이 많지 않고 원래는 유람선도 운행을 하는 모양인데, 겨울이라 운행을 하지 않는지 조용하다. 갈매기들만 우리를 반기는데, 아이들은 질색팔색이다. 휑한 느낌을 넘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마저 감돈다. 그래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호수를 바보고 있으니 마음은 편안해진다. 관광객이 많이 없어도 제 할 일을 다 하고 있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여신상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고 다시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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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은 드물고 갈매기만 우릴 반기네. 여기도 사랑의 자물쇠가.. 다들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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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덴 호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서 루째른을 향해 출발한다. 채 10분을 운전하지 않았는데, 독일과 스위스의 국경 관문을 만났다. 관문을 지키는 군인 아저씨의 인상이 험상궂다. 좀 웃어주면 좋으련만. 여권을 요구한다. 스위스는 EU 회원 국가가 아니다. 다른 유럽의 EU국가들처럼 국경을 넘을 때 그냥 통과하지 않고 국경을 넘을 때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한다. 차에 탄 채로 입국 심사를 받는다. 군인 아저씨가 우리 여권을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어디로 가는지, 무슨 목적으로 가는지, 얼마나 머무는지 등을 간단하게 묻는다. 별 질문도 아닌데, 괜히 긴장된다.

IMG_7015.HEIC 콘스탄츠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국경 관문

무사히 입국 심사를 통과하고 스위스 입성. 들어가자마자 고속도로를 타기 전에 고속도로 통행증인 비넷을 사기 위해 주유소를 찾아간다. 스위스는 독일과 달리 고속도로가 무료가 아니다. "비넷"이라고 하는 고속도로 통행증을 사서 차에 부착하여야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 주유소에 함께 있는 편의점에서 비넷을 구입했다. 40프랑. 우리 돈으로 약 6만 원 정도 되는 돈이다. 스위스 비넷은 유효기간이 1/1일부터 12/31일까지 이다. 연중 언제 구매하더라도 해당 연도에 12/31일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니 당연히 연초에 비넷을 사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아마 자국민 중심 정책이 아닌가 싶다.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주일, 보름짜리 비넷 같은 건 없다. 12월 31일에 비넷을 사면, 하루 후 해를 넘겨 1/1일이 되면 비넷을 다시 사야 한다. 하루 쓴다고 해서 가격할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40프랑을 다 내야 한단다. 여행객이 많은 스위스이기 때문에 그것을 노린 비즈니스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불합리하다 느껴진다.


여하튼,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법. 아깝지만 비넷을 구매하고 차 앞유리에 잘 붙이고 루째른으로 출발. 아이들 뿐 아니라 나도 피곤이 누적된 탓인지 집중력이 떨어진다.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길을 찾는데 자꾸 실수를 한다. 빠져나가야 할 곳에서 안 나가고, 나가지 말아야 할 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간다. 그렇게 헤매다 보니 예상 시간보다 30분이나 늦어서 루째른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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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직전에 친한 친구하나와 유럽 배낭여행을 왔었다. 그때 우리의 여정에 포함되어 있었던 루째른. 생각해 보니 22년 만에 다시 찾은 셈이다. 그때는 대학생 신분으로 왔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여기를 오게 될 줄은 그땐 몰랐다. 세월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지붕이 있는 목조다리 카펠교. 루째른의 상징이기도 한데, 22년 만에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그때와 비교해 조금 낡은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예전 배낭여행 왔던 추억을 설파하며 카펠교를 걸어서 건너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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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 다리 카펠교. 루째른의 상


루째른 구시가지를 걸으며 구경한다. 아이스크림 가게에도 들러 우리의 최애 아이스크림인 바닐라 콘도 하나씩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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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째른 거리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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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루째른을 걸어서 구경한 뒤, 다시 오늘의 숙소가 있는 툰(Thun)으로 출발한다. 내일 방문할 인터라켄을 지나 거대한 툰 호수를 옆에 끼고 차를 달리는데, 호수와 알프스 산자락의 풍경이 감탄을 자아낸다. 딱 봐도 범상치 않은 험준한 산세가 느껴진다. 어둑어둑해진 산길을 조심조심 운전하여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6시 반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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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숙소가 있는 툰 찾아 가는 길


보통은 숙소에 도착하면 그날의 여정이 마무리가 되었는데, 오늘은 오늘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뜻밖에 숙소에 있었다. 두둥..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서 호스트가 알려준 주차장에 차를 댔다. 캐리어를 끌고 주소지를 찾아가는데, 아파트 형태로 생긴 건물에 이르렀다. 아이들에게 오늘은 숙소가 현대식 건물인가 보다.. 하며 입구에서 키를 찾는데,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다가오더니, "에어비앤비 게스트?"라고 묻는다. 주인집 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자기가 안내를 해주겠다고 한다. 고맙다. 우리 숙소는 4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는 없다. 아이들을 주인집 아이들과 먼저 보내고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올라갔는데, 아뿔싸.

우리 아이들이 숙소 거실 입구에서 주인아주머니와 함께 서서 인사를 하고 있는데, 꿀 먹은 벙어리 모양 말도 못 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참고로 우리 아이들의 영어 말하기 레벨은 미국에서 돌 막 지난 베이비 수준이다) 아... 알고 보니, 여기는 주인집 가족과 공간을 셰어 하는 숙소였던 것.


여행 떠나기 전에 전체 일정에 맞춰 숙소들을 미리 예약을 했는데, 유독 여기 스위스 숙소만 여권으로 신분을 확인한 후 예약확정을 해주겠다고 했다. (에어비앤비에 여권 확인 시스템이 있었다) 괜히 찜찜했지만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은 상황이어서 그냥 그렇게 하고 예약을 했었다. 예약을 한 후 호스트로부터 오는 메시지에 자기는 미국 출신이며, 아이들 나이가 몇 살이며.. 등등의 나로선 TMI에 해당하는 정보를 채팅으로 알려주는 것이었다. 나도 별생각 없이 우리 아이들과 나이 또래가 비슷한 것 같다. 아이들끼리 서로 친구 하면 좋겠다 - 물론 언어의 장벽은 있겠지만 - 며 그냥 큰 의미 없는 스몰토크로 생각하며 넘겼었다.


그런데, 내가 여러 숙소를 한 번에 예약을 하다 보니 꼼꼼하게 살피지 못한 것 있었는데, 여기 숙소는 부엌, 거실 등의 공간을 함께 공유하며 주인집에 방 하나를 빌려 쓰는 것이었다. 서로 문화를 공유하며 소셜링(?)을 할 수 있도록 한 숙소였던 것. 나는 앞서 거쳐왔던 여타 숙소들처럼, 주인이랑 한 건물에 머물되 서로의 공간은 분리되어 있는 그런 숙소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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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와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숙소

영어로 이것저것 물어보며 인사를 건네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갓 돌 지난 영어 베이비들은 아빠가 언제 오나... 기다리며 난처해하고 있었던 것. 내가 집을 들어서자 나를 기다린 것은 우리 아이들 뿐 아니라 호스트도 마찬가지였다. 가서 인사를 하고 아이들을 극적으로 구출한 다음, 이러저러한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당황하는 건 호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숙소에 대해 잘 알아보지도 않고 예약을 한 거니? 하는 표정..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들의 손을 이끌고 우리가 배정받은 방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방문을 닫고 사태파악을 다시 한 후 아이들의 정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여기 몇 달을 머물 것도 아니고 겨우 3박인데, 이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하자고 아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려고 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그야말로 멘붕 상태였다. 보통 하루 여정을 마치고 숙소에 가면 밥 해 먹고 소파든 침대에 퍼질러 누워서 최대한 편하게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여기 숙소는 거실에 맘대로 나가지도 못해, 냉장고도 편하게 이용하지도 못해, 화장실을 갈래도, 거실을 지나 호스트 가족과 눈인사를 한번 하고 가야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거기다 영어 베이비이니..


그래도 3일을 이 공간에서 함께 지내야 하는데, 호스트 가족들에게 인사는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아서 아이들 손을 잡고 거실로 나갔다.


"디스 이즈 마이 도우터. 쉬 이즈 떨틴 이어즈 올드. 유 캔 콜 허 저스트 미카엘라. 쉬즈 잉글리쉬 네임...블라블라"


소개를 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영어가 다소 부족하고 부끄럼이 많다.. 인사를 제대로 안 한 것은, 안 한 것이 아니고 못한 것이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하고 해명과 양해를 구했다.

솔직히 나는 영어 교육 무용론자였다. 입시를 위한 영어 공부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제대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나 포함 우리나라 학생들을 보며 우리 영어교육의 무용론을 외쳐왔고, 아이들도 때 되면 공부하리라, 나중에는 AI 번역기가 잘 나와서 영어를 못해도 아무 문제 없이 살 수 있으리라 주장해 오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 오기 전까지 우리 아이들에게 그 흔한 영어 사교육을 단 1도 시키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 숙소에서 이러 일을 겪고 나니, 아이들 영어를 좀 시켰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이 영어를 조금만 할 줄 알았다면 여기 집에 아이들과 재미나게 소통하며 놀 수 있었을 텐데..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영어 교육을 시키지 않은 것이 살짝 아쉬워진 순간이다.


그건 그렇고, 이 호랑이굴(?)에서 살아서 나가려면 나라도 정신을 차리자 싶었다. 저녁거리를 들고 부엌으로 갔다. 눈치 보지 않고 숙소 여주인 옆에서 무심한 듯,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하며 쌀을 씻고, 마트에서 사 온 고기를 굽고, 떡볶이 밀키트를 아주 능숙하게 요리했다. 음식을 차려서 아이들을 먹이고 나도 먹었다.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먹었다.


사실, 이번 숙소와 같은 환경은 아주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는 상황이다. 현지인의 집에서 같이 음식을 해서 나눠먹고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고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는 즐거움도 느끼고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몸도 마음도 피곤한 상태에서 미리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갑자기 만나게 되니, 나도 정신이 없고 당황스럽기만 했다. 특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방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이것이 다 나의 잘못인 것 같아서 미안하고 난처했다.


아이들은 서둘러 밥을 먹고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남아 있던 정신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주인댁 가족들과 어색함이 없어질 만큼의 스몰토크를 어렵사리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불만과 충격의 도가니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생기고, 좋은 일도 어려운 일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게 여행이지!! 며 아이들을 달랬다. 그래도 앞으로 3일의 일정은 최대한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한다.

아.. 뜻하지 않은 셋방살이에 눈칫밥이라니...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난관을 만났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뜬다.

내일은 융프라우에 오를 예정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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