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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o Curly Choi Jun 08. 2023

[아이들과 유럽 자동차여행 40일] - 5화.

드디어 출발. 파리로 간다.

출발 당일 아침이 밝았다. 드디어 우리의 첫 번째 여행지인 파리로 간다. 싱가포르를 경유하여 파리로 가는 길은 대기시간까지 포함하여 총 26시간이 소요되는 여정이다. 직항 국적기를 탔으면 13시간 정도면 도착할 곳을 돌아 돌아서 2배가 넘는 시간을 견디며 가는 대가로 저렴한 표를 얻었다. 비행기를 오래 타는 것에 대해 큰 아이 써니는 걱정이 많았다. 평소 멀미로 고생을 많이 하기도 하고, 체력적으로 염려도 되는 듯했다. 사실 5년 전, 써니가 11살 때 우리 가족은 첫 번째 유럽 여행을 다녀왔었다. 그때는 짧은 10일간의 여행이었고, 자동차 여행도 아니었고, 주요 3개 도시만 찍고 왔었다. 그때도 왕복 비행기는 직항이 아니었다. 물론 26시간까지는 아니었지만, 베트남을 경유해야 하는 여정이어서,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에 대한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써니는 그 기억 때문에 장시간 비행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반면 둘째 워니는 평소 성격이 낙천적이고 해맑은 아이이기도 하지만, 비행기를 타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비행기를 오래 타면 오히려 좋다며 반겼다.


우리 비행기 출발 시간은 오후 1시. 최소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야 하니, 서초동 집에서 넉넉하게 9시에 나섰다. 1월 서울의 날씨는 춥다. 케리어를 3개 끌고 작은 배낭을 각자 하나씩 메고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가야 하는데, 엄두가 나질 않는다. 결국 아내의 출근 시간을 조금 미루고 정류장까지 아내가 태워주기로 했다.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었던 아내는 우리를 정류장에 내려주고, 아이들과 찐한 포옹을 하고는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떠났다.


"한 달 후에 이탈리아에서 만나~ 조심하고!"

"엄마 안녕~"


아내가 떠난 후 공항버스를 기다리는데, 정해진 시간에 차가 오질 않는다. 추운 겨울이라 밖에 오래 있으면 몸도 얼고 오랜 여정을 앞둔 아이들의 컨디션도 나빠질 수 있어 걱정이 되었다. 정류장 게시판에 적혀있는 버스 회사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해외여행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공항버스 회사도 어려움을 겪은 모양이다. 손님이 없다 보니 평소 15분에서 30분마다 오던 공항버스의 배차 간격이 한 시간 이상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 와중에 한 버스가 교통 체증 등으로 밀리기 시작하면 예정된 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오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버스 회사 직원분이 미안하다 사과하시고 양해를 구하셨다. 앞으로 10여분 더 기다려야 도착할 것 같다고 안내를 해 주셨다. 아침에 여유 있게 집을 나섰기 망정이지, 타이트한 상황이었다면 적잖이 당황했을 것 같았다.

공항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아이들


10여분 지난 후 도착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여를 달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체크인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일찍 도착해서인지 대기줄도 길지 않았다. 짐을 부치고 표를 받은 후 미리 온라인으로 환전 신청해 둔 돈을 받으러 은행창구로 갔다. 여행을 떠날 때 늘 고민되는 것이 환전 금액인데, 유럽은 대부분 가게에서 신용카드를 받기 때문에 주로 카드를 쓸 예정이라 많은 현금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급하게 택시나 버스를 타야 하거나, 고속도로 톨비를 현금으로 내야 하는 경우 또 식당에서 팁을 줄 일이 있다거나 하는 상황에 대비해서 현금이 필요하기는 할 것이다. 여행 기간도 40일로 길기 때문에 현금을 챙겨가기는 해야 하지만 얼마나 필요할지는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일단 우리가 방문할 국가 중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는 유로를 사용하는 국가이고, 스위스만 유로연합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므로 스위스 프랑을 쓰고 있다. 그래서 유로와 스위스프랑을 현금으로 환전해야 하는데, 고민하다가 400유로(한화로 약 56만 원), 100프랑(한화로 약 14만 원)을 환전했다. 돈을 받고 나서 첫째 써니에게 50유로 지폐 한 장을 비상용으로 주고 급할 때 사용해야 하니 잘 보관하라고 일러두었다.


출국 심사를 받고 출국장 안으로 들어오니 확실히 코로나 시국의 여파를 실감한다. 문을 닫고 철수한 상점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예전엔 엄청 붐비던 면세점 픽업 창구가 그야말로 을씨년스럽다. 라운지를 찾았다. 나는 현대카드에서 제공되는 라운지 이용권이 있어 무료지만 애들은 두 명에 5만 원을 내야 했다. 다소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돌아서 나가긴 이미 늦었다. 나는 본전 생각이 나서 이것저것 많이 먹었으나 아이들은 고상하게 한 접시만 먹고 일어섰다.


싱가포르까지는 약 6시간 50분 가야 한다. 비행기를 좋아하는 워니는 비행기를 타자마자 창가 좌석에 앉아서 이륙하고 상공을 날 때까지 한 시간이 넘도록 창밖 구경만 하고 있다. 앞으로 가야 할 기나긴 여정은 생각하지 않은 채 마냥 즐거운 우리 워니. 기내식이 나오자 요리 저리 정리하더니만 나이프, 포크, 스푼을 가지런히 놓고 제대로 식사를 즐길 준비를 한다.

한 시간 넘게 창밖만 구경하고 있는 워니


기내식을 이렇게 제대로 세팅하고 먹다니
기내식 정식을 세팅하고 해맑게 웃는 워니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현지시간으로 7시경에 도착했다. 확실히 따뜻하고 살짝 습하기도 하다. 동남아 공항에서 나는 특유의 습기와 향신료 음식 냄새가 섞인 향기가 느껴졌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제 여행의 시작이니 아직은 아이들이 지치지 않고 즐겁다. 해외여행을 몇 번 경험한 아이들은 낯선 외국 풍경에도 어색해하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고 해외를 나가보았는데, 우리 아이들은 부모를 잘 만나서... 좋은 세상을 잘 타고나서 벌써 해외여행이 몇 번째인지. 부럽다, 이 녀석들.


기내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많이 먹지 못한 아이들과 나는 살짝 허기가 져서 공항 내 푸트코트를 찾았다. 써니는 쌀국수, 워니는 굳이 버거킹을 먹겠다 하여 햄버거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동남아에 있는 국가라 그런지 쌀국수는 아주 훌륭했고, 버거킹은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보다 맛이 별로였다. 파리로 떠나는 비행기 출발 시간은 자정을 넘은 0시 15분. 아직 3시간이 넘게 남았는데, 별로 할 것이 없다. 창이공항 하면 떠오르는 쥬얼창이(Jewel Changi) 폭포라도 구경할까 싶어 물어보니, 터미널 밖으로 나가야 한단다. 비행기 타기 전 체크인하는 구역에 있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포기. 다니다 보니 명품 샵도 많고 면세점들이 제법 있었지만 아이들과 여기서 명품 쇼핑을 할 일은 없다. 대강 공항 내부를 어슬렁 거리며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지만 아직 탑승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싱가포르 창이공항 푸트코트
스스로 짐꾼을 자처한 창이공항 짐꾼
익숙하게 창이 공항 내부를 걷는 아이들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바샤커피
바샤커피 매장 내부


밤이 깊어지니 슬슬 몸도 피곤해져가고 있었다. 다시 라운지를 알아봤는데, 역시 아이들은 인당 4만 원 정도 돈을 내야 한다. 인천 공항보다 더 비싸다. 아이들을 두고 나 혼자 라운지에 입장할 수도 없고, 두어 시간 쉬려고 라운지에 그 돈을 쓰는 것은 아까운 생각이 들어 탑승 게이트 근처로 이동해 쉬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게이트 근처에는 우리처럼 비행기를 기다리는 탑승객들이 많았다. 시간이 밤 11시를 넘은 시간이고 몸도 피곤하다 보니 모두들 각자의 방법으로 자리를 잡고 편하게 쉬고 있다. 살짝 지친 아이들을 보며, '역시 직항 편을 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으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이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하고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려 애썼다. 아이들을 의자에 눕혔다. 힘들었는지 이내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자세가 불편하니 오래 잠들지 못하고 금방 일어나 힘들다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우리 주변에는 의자에 누운 사람, 바닥에 앉아 쉬는 사람, 심지어 바닥에 누워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배낭여행 다니다 보면 흔히 보게 되는 장면들이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장면이었던 듯하다. 나도 다리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고 허리도 뻐근하고 눕고 싶어 졌다. 지친 아이들에게 우리도 바닥에 누워 쉬자고 제안했는데, 처음에는 그럴 순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다 점점 피곤이 밀려오니 단호했던 아이들의 기세도 점점 누그러졌고 슬슬 바닥으로 내려가 앉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카펫이 깔려 있는 바닥에 가방을 베개 삼아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린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공항 바닥에 누워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아이들이다. 이런 여행 다니며 필요한 중요한 하나를 아이들이 배워간다. 다름 아닌 '얼굴에 철판 깔기'.

의자에 몸을 의지해 잠든 아이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앞으로 14시간을 가야 한다. 인천에서 싱가포르로 올 때는 저가항공 스쿠트 타이거항공과 공동 운행하는 비행 편이어서 비행기도 작고 스크린도 없어 심심했는데, 파리로 가는 비행기는 기체도 크고 엔터테인먼트 스크린도 크고, 죄석도 쾌적하다. 이번에도 써니는 14시간 비행이 걱정이고, 워니는 그저 즐겁다. 좌석 앞 스크린에서 영화, 게임 등을 재빨리 검색하여 이륙 준비에 분주하다.

이제 정말 파리로 간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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