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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o Curly Choi Jun 09. 2023

[아이들과 유럽 자동차여행 40일] - 6화.

5년 만의 파리

싱가포르에서 14시간여를 날아 파리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비행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집을 떠난 지 20시간이 지났고, 밤새 타고 온 비행기가 편치는 않았기에 아이들도 나도 지쳐있었다. 그러나 파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하루를 다시 시작해야 되는 시간이다. 5년 전 우리 가족이 파리를 찾았을 때는 써니가 초4, 워니는 유치원생이었던 때라,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조금만 걸어도 업어달라, 힘들다, 그만 가자, 집에 가자 등등을 입에 달고 있었으니, 아내와 나는 체력적으로 힘든 것 보다도 정신적으로 더 지치고 피곤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애들도 5년의 시간 동안 많이 자라서 힘들다고 투덜거리지 않는다. 여행이 원래 이런 것이지.. 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다.


입국 수속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발견했다. 빨리 나가서 아이들을 좀 쉬게 해주고 싶지만 줄이 빨리 줄어들지 않았다. 사진도 찍고, 오늘의 일정을 대강 설명해 주며 아이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 했다. 일단 나가면 짐을 잘 찾고, 리스 차량을 인수해야 한다. 그리고 숙소를 찾아가야 하는데, 체크인 시간이 오후 3시부터라 바로 집으로 갈 수는 없고, 어딘가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야 했다. 파리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킬링 타임 할 수 있는 거리를 추천을 받아볼까, 아님 얼리 체크인이 가능한지 물어봐서 숙소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기다릴까 고민이 되었다.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우리 입국 수속 차례가 되고 큰 탈없이 관문을 지나왔다.

파리에서 입국 수속을 기다리며. 피곤한 얼굴. 마스크는 우리만.
입국 수속 후 짐 찾으러 가는 길. 지하터널 같은 이 길을 지나야 파리로 입성 가능.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지하 터널 같은 통로를 지나 짐 찾는 벨트에서 우리 케리어 3개를 무사히 찾고 밖으로 나왔다. 일단 가장 먼저 할 일은 차량을 인수해야 하는 것. 먼저 리스 회사에서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만남 장소를 확인해야 한다. 오랜만에 영어로 하는 대화가 어색하다. 전화받은 직원이 프랑스 사람이라 발음도 명확하진 않았지만, 대강 이야기를 하여 00번 게이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한 게이트를 찾는데 가도 가도 만나기로 한 그 게이트가 보이질 않았다. 찾다 보니 공항을 한 바퀴 빙 돌아 처음 우리가 있던 곳으로 다시 온 것이 아닌가.. 다시 전화를 걸어 우리가 현재 있는 게이트 번호를 이야기하고 그리 올 수 있는지 물었더니, 알겠다 한다. 게이트 밖으로 나가서 기다리는데, 담배 냄새가 진하게 난다. 택시 운전기사며 여행객이며 흡연 구역이라 표시되어 있지도 않은 듯한데, 편하게 흡연을 즐기고 있다. 이번 여행 다니면서 계속 느꼈지만,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담배에 관대하고 흡연자의 권리(?)를 아직도 많이 존중해 주고 있는 듯하다. 실외에서는 대체로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울 수 있고 길거리 걸으면서 담배 피우는 것도 자연스럽다. 심지어 아직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곳도 있는 것 같았고, 우리나라에선 90년대 이후에는 거의 볼 수 없는 실내에 재떨이가 보이기도 했다. 학교에서 담배는 '악'으로 배운 아이들은 혼란스럽다. 우리나라에선 나쁘다고 하는 것을 여기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기니까. 미성년자에게는 법으로 금지된 것이긴 하지만, 성인의 관점에서는 건강에 해로우니 기피해야 하는 것이지 담배를 피운다고 법을 어기는 것은 아닌데 우리 아이들은 미성년자든 어른이든 흡연은 곧 범죄라 여기는 듯해서 그런 부분은 바로 잡아줄 필요는 있어 보였다.


날도 춥고 담배 연기도 많고 해서 아이들은 게이트 안쪽에서 기다리라 하고 밖에 나와 기다리길 10분. 누군가 다가와 'You must be Mr. Choi?'라고 묻는다. 젊은 청년이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 같아 보였다. 셔틀을 타고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가야 하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아이들을 데리고 케리어 3개를 끌고 청년을 따라갔다. 한참을 따라가니 길가에 세워진 검은색 벤차량이 하나 보인다. 트렁크에 짐 싣는 것을 친절하게 도와준 청년은 뒷좌석 문을 열고 아이들의 탑승까지 도와준다. 유럽 와서 처음 만난 민간인인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몸이 피곤하기도 하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할지 싫어할지 몰라 그냥 잠자코 있기로 했다. 셔틀 차량은 공항을 벗어나 달려간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이 좀 껴 있었고 간간히 비를 뿌리기도 했다. 5분여를 지나 공항 근처 허허벌판 위에 위치한 리스차량 주차장 겸 사무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리스차량 인수하러 주차장으로 가는 셔틀 안. 살짝 긴장한 듯 보이는 워니와 창밖 풍경 따윈 관심 없는 써니

청년의 안내에 따라 사무실로 들어가 여권, 국제면허증, 등을 제시하였다. 직원이 내민 몇 장의 서류에 사인을 하고, 차키를 인수했다. 사무실에 있는 직원이 차키를 건네주며 'Don't leave it in the car, never!'라고 몇 번을 강조한다. 유럽은 차량 도난 사건 사고가 많은 곳이라 들었다. 소지품을 차 안에 두고 내리면 열에 아홉 도난을 당한다고 보면 된다. 특히 핸드폰, 노트북 등 고가의 소지품은 절대 차에 두면 안 된다. 유럽에 차들은 웬만해선 선팅도 잘하지 않으므로 차 안이 훤히 다 보인다. 그래서 웬만하면 차에 가방이나 다른 소지품을 두지 않는다. 차키도 차 안에 두면, 절도범들이 시동을 걸었을 때 시동이 걸리게 되면 차량까지 도난당할 수도 있으니 절대 차에 두지 말라는 것이다. 차량 내 소지품 절도는 여행 다니는 내내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대체로 안이 안 보이는 트렁크에 짐을 넣고 다니면 그나마 안전하지만, 우리가 빌린 차량이 SUV 차량이라 트렁크가 완전히 가려지지는 않는 형태였다. 여행 중에 한 숙소에서 다른 숙소로 거점을 옮겨 갈 때는 차에 짐을 실어둔 채 식당도 가야 하고 박물관도 가야 하는 경유가 생기기 마련인데, 그럴 때마다 케리어를 다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라 무척 신경이 쓰였다. 혹자는 케리어들끼리 금속 와이어로 서로 연결해서 트렁크에 넣는 방법도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까지 하지는 않았다.


차량의 키를 받아 들고, 아까 그 청년을 따라 밖에 주차장으로 따라갔더니 이번 여행에서 우리의 발이 되어줄 차량이 단정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 하얀색 씨트로엥 C5 에어크로스 차량이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살짝 크기가 작아 보였다. 씨트로엥 차량은 처음 타보는 거라 운전석에 앉아 이것저것 사용법을 물어보았다. 주유기 여는 방법, 라이트 및 와이퍼 사용법, 스마트폰 연동 방법 등등에 관해 설명을 듣고 더 궁금한 건 없냐고 묻는 청년을 웃는 얼굴로 보내주었다. 케리어를 트렁크에 싣는데, 아뿔싸 트렁크 덮개가 짐 때문에 닫히질 않는다. 테트리스 하듯 케리어를 이리저리 짐을 돌리고 세우며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끼워 맞췄더니 간신히 트렁크 덮개를 닫을 수 있었다. 짐까지 싣고 운전석에 앉아,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천천히 차량을 몰고 나가니 이제 진짜 여행의 시작이구나 하는 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 중 우리의 발이 되어 줄 씨트로엥 리스 차량

차를 몰아 파리로 들어간다. 구글맵을 내비게이션으로 이용했는데, 차량 내비게이션으로는 처음 써보는 거라 어색하고 불편했다. 먼저 마트를 찾아가기로 한다. 물도 사야 하고, 아이들이 배고플 시간이라 간단하게 요기할 것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구글맵에서 검색을 하니 여러 마트가 검색이 되었는데, 그중에 반가운 까르푸가 보였다. 거리고 가까워서 일단 그곳을 목적지로 찍고 출발했는데 어째 좀 이상하다. 가다 보니 우리 아까 출발했던 드골 공항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공항 내에 있는 까르푸를 목적지로 찍은 것 같은데, 공항 내에선 주차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 파리 시내와는 다른 방향이니 목적지를 다시 검색해서 공항을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유럽에서의 첫 운전. 파리 시내로 들어가는 길


공항을 빠져나오니 아침에는 흐렸던 하늘이 맑게 개었다. 유럽에서 운전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사 다니던 시절, 출장으로 유럽을 여러 번 나왔었고 그냥 여행으로도 유럽을 수차례 온 적이 있었지만 다 대중교통을 이용했거나, 회사 차량을 이용했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운전할 일은 없었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대강 유럽의 교통법규에 대해 사전 공부를 하였었고 한국에서 운전을 오래 하였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처음이라 어색하고 긴장이 되긴 하였다. 쭉 뻗은 고속 국도를 따라 차를 몰고 가는데 긴장이 서서히 풀리고 기분이 상쾌해졌다. 맑은 날씨가 한층 기분을 업시키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상쾌한 기분도 잠시, 아무래도 가는 방향이 이상하다. 아무래도 파리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갓길에 차를 대고 목적지를 다시 제대로 검색하고 싶었지만, 이런 초행길에서 갓길에 대는 것은 위험하다. 이럴 때 어른 동반자라도 조수석에 타고 있으면 대신 내비게이션 조작도 부탁하고 할 텐데, 뒷좌석에 타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런 것을 부탁할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주변을 살피며 조금 더 가다 보니 반대 편에 까르푸 간판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노란색 M자, 맥도널드 간판이 보였다. 저길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운전하면서 어렵게 맥도널드를 검색하니 가까운 곳에 있는 맥도널드 매장이 검색이 되었다. 아까 옆으로 지나간 맥도널드가 틀림없다. 어렵사리 구글맵에 그곳을 목적지로 설정하니 멀지 않은 곳에서 유턴을 하라고 맵에 표시가 된다. 가까스로 다시 방향을 잡고 맥도널드를 찾아간다.


목적지 근처에 오니 까르푸 식품점은 없고 까르푸 주유소만 보인다. 어차피 기름을 넣어야 했기 때문에 금강산도 주유후경이라고.. 주유소로 들어갔다. 유럽에서 기름을 주유할 때는 유종을 잘 확인해야 한다. 이것 역시 여행을 떠나기 전 다른 여행자분들의 블로그 등에서 많이 봤고 그들이 사진을 일일이 보여주며 강조했던 내용이었다. 우리가 빌린 차량은 디젤(경유) 차였는데, 유럽에서는 경유를 주로 Diesel로 표시하고 있지만 때로는 Gazole(프랑스)라고도 표시되어 있어서 이것을 우리의 가솔린(휘발유)과 헷갈릴 수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차량 주유구 커버 안쪽에 붙어 있는 스티커에 코드를 확인하고 주유하면 된다. 주유소 주유기에 표시된 코드 E5, E10 - 휘발유, B10-경유 표시와 차량 주유구 커버 안쪽에 붙어 있는 스티커에 코드를 서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유소에서 계산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우리나라처럼 1) 주유를 한 후에 넣은 양만큼 그 자리에서 카드로 결제하는 방법과 2) 주유 후에 주유소 가게 안으로 들어가 카드 또는 현금으로 결제하는 방법. 그리고 3) 주유 전에 미리 가게 안으로 들어가 넣고자 하는 기름의 양을 말하고 결제를 한 후에 다시 차량으로 돌아와 결제한 만큼 -주유소 결제 카운터에서 미리 기계에 주유할 양을 세팅해 줌- 주유하는 방법 등이다. 처음엔 방법이 여러 개라 헷갈릴 수 있지만, 여행 다니다 보면 그것도 익숙해져서 주유소마다 그들의 방식에 따라 주유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무사히 주유를 마치고, 맥도널드 매장을 찾아들어가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한다. 도시 외곽이라 주변에는 특별한 건물들이 없고 삭막한 환경이다. 여행 와서 첫 끼니를 맥도널드를 먹여서 아이들에게 미안했지만, 오랜 비행으로 절약한 돈으로 여행 다니며 맛있는 거 많이 사주마 다짐했다. 일단은 아이들이 처지지 않게 허기를 채우는 것이 중요했다.

햄버거를 먹으며 매장에 앉으니 약간의 안도감과 여유가 생긴다. 해야 할 일들을 몇 가지 점검해 본다. 일단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 호스트에게 연락을 해본다. 혹시 얼리 체크인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언제쯤 가면 될는지 등을 물어봤더니, 한두 시간 일찍 와도 좋다는 회신이 왔다. 공항을 나와 차를 찾고 어영부영하다 보니 벌써 오전 11시가 지나 있었다. 점심을 여유 있게 먹고, 숙소를 찾아가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는 파리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는 친구인데,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파리로 유학을 가서는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파리에 살고 있는 친구다. 연락도 한참 동안 못했었는데, 이번 여행 오기 전에 혹시나 이번에 파리에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연락을 해 보았었다. 반갑게 연락이 되었고, 파리에 있는 동안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약속 시간도 잡을 겸, 우리의 무사 도착을 알릴 겸 해서 전화를 했더니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세월이 흘러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목소리는 그때 그 목소리 그대로인 것 같다.


"잘 왔나? 피곤하지 않나? 혹시 오늘 저녁에 시내로 구경 나올래?"

"오늘? 음... 그럴까?"


마침 저녁에 시간이 괜찮다는 친구가 저녁에 시내에서 만나 저녁을 먹자고 한다. 숙소의 위치를 알려주니 가까운 전철역을 알려준다. 숙소에서 체크인을 하고 나서 약속 시간을 다시 정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은 도착 첫날이라 아이들도 나도 다소 피곤하긴 하지만, 낯선 장소에 와서 첫날 저녁을 우리끼리 보내면 왠지 모르게 쓸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시내에 나가서 간단히 바람도 쐬고, 아이들도 여행의 긴장감과 설렘을 느끼게 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다닐 때, 가장 힘든 순간은 이제 뭘 해야 할까 막막할 때인데, 저녁때까지 해야 할 일과 스케줄이 다 정해지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먹던 햄버거를 다 먹고 우리의 첫 번째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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