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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o Curly Choi Jun 13. 2023

[아이들과 유럽 자동차여행 40일] - 7화.

여행 1일 차, 파리 - 반갑다. 친구야

-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아이들과 맥도널드에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체크인 전까지 뭐 할까 고민하다가, 마침 유명 아웃렛이 근처에 있어 -아내의 제안으로- 아웃렛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쇼핑에 그다지 큰 흥미가 없기도 하거니와, 프랑스 도착하자마자 첫 방문지를 아웃렛으로 하기는, 나의 이번 여행 콘셉트와도 맞지 않았으므로 영 내키진 않았다. 하지만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그냥 그 자리에 퍼져버릴 것 같은 상태였기 때문에 나라도 괜히 텐션을 올려 아웃렛을 가보자며 아이들을 북돋았다.

아웃렛에 도착했는데 주차할 곳이 없다. 평일 낮인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을까, 점심시간이라 밥 먹으러 온 사람들인가 의아해하고 있는데, 우리의 첫 번째 숙소 호스트께서 얼리체크인이 가능하다고 연락을 해왔다. 주차할 곳도 없고, 아이들이나 나나 쇼핑에는 별 관심이 없던 터라 그냥 아웃렛을 포기하고 숙소로 바로 가기로 했다.


구글맵에 숙소 주소를 찍어 저장하고 목적지로 설정한 후 본격적인 파리 시내 운전에 나섰다. 날씨는 좋았고 내 컨디션도 다행히 나쁘지는 않아서 운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대신 파리에서 운전은 처음이고 길도 초행길이라 긴장이 되었고 교통 표지판이나 신호가 생소했기 때문에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뒷좌석의 아이들은 출발 후 얼마 되지 않아 잠이 들었다. 시차도 맞지 않고 오랜 비행에 많이 피곤한 탓이다. 40여분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파리 동쪽에 위치한 바뇰레(Bagnolet) 지역에 있었다. 동네는 조용한 주택가의 느낌이었다. 숙소 뒤편 길가에 임시로 주차를 하고 짐을 내렸다. 에어비앤비 앱을 통해 호스트가 알려준 대로 열쇠를 찾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숙소는 에어비앤비에 소개된 사진의 모습과 거의 흡사했다.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가격은 서비스료 포함해서 1박에 17만 원 수준. 창문이 동쪽으로 나 있어서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는 볕이 들어오고 있지는 않아 다소 어둡다 느껴졌다.

이번 여행 첫 번째 숙소. 파리 바뇰레 위치

차 안에서 잠이 들었던 아이들은 짧게나마 눈을 붙여서 피로가 풀렸는지 피곤한 기색은 없고 첫 숙소에 도착한 기쁨에 텐션이 올라가 집 안 여기저기 구경하며 재잘재잘 거린다. 우리는 3~4일에 한 번씩 숙소를 옮겨 다녀야 하므로 캐리어 짐을 다 풀지는 않고, 마루에 가방을 적당히 배치한 뒤 필요한 것만 꺼내 쓰는 방식으로 지내기로 했다. 매번 짐을 다 풀었다가 다시 쌌다가 하기엔 너무 잦은 이동 스케줄 때문에 그것도 큰일이 될 것 같았다.


이번에 숙소를 구하면서 난방 외에 가장 중요하게 본 것 중 하나가 세탁기의 유무다. 숙소마다 세탁기가 있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는데, 우리처럼 장기간 여행 다니는 여행객들은 세탁기가 필수다. 세탁기가 없으면 숙소 근처 코인빨래방을 이용해야 하는데, 빨래를 들고 거기까지 가는 것도 번거롭고, 가서 빨래를 하는 동안 특별히 할 일도 없이 멍하니 기다려야 하는 것도 불편하다. 그리고 빨래방을 가보면 알겠지만 그곳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에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닌 곳이 많고 대체로 비어 있는 세탁기가 없어 허탕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에어비앤비로 방을 예약할 때, 그 집 편의시설 리스트에 세탁기가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했다.


그리고 세탁기 다음으로 중요하게 체크한 것은 무료 주차가능 여부였다. 파리 같은 대도시 시내 안에 숙소를 잡을 경우 전용 주차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다른 유럽 주요 유명 도시들도 마찬가지지만 파리도 오래된 시내 건물들을 허물지 않고 계속 리모델링하면서 보존하는 경향이 있다.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워낙 처음 지을 때 튼튼하고 내실 있게 지었기 때문에 우리처럼 건물을 다 허물고 재개발/재건축할 필요가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건물 내에 주차공간이 넉넉하지 못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처럼 차량으로 여행을 다니면, 숙소 안이나 근처에 전용주차장이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곳이나 주차했다가 비싼 벌금을 물거나, 주차요금으로 피 같은 돈을 허비하게 된다.


대강 집에 짐을 풀어놓고, 임시로 주차해 두었던 차를 건물 내 지정 주차장에 세우기 위해 집을 나섰다. 호스트가 주차장 문을 여는 방법, 지정 주차장 위치 등 주차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었다. 집을 나가면서 주차장 문을 여는 원격 리모컨 열쇠와 다시 집으로 들어올 때 필요한 현관 열쇠를 챙겨 나갔으나, 금방 돌아올 텐데 굳이 전화기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두고 갔는데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다. 사연인즉슨,


집을 나와 차를 끌고 호스트가 알려준 주차장 입구는 찾아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는데, 길이 일방통행 길이라 주차장 입구로 가려면 역주행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가 없을 때 살짝 역주행을 하여 주차장으로 얼른 쏙 들어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행여나 유럽 도착 첫날에 경찰에게 붙들려 벌금을 물거나 혹은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그냥 일방통행 길을 따라 동네를 한 바퀴 빙 돌아오면 되겠지 생각하고 차를 몰아 가는데, 돌아가는 길이 나오질 않는다. 좌회전을 두 번 하면 유턴이 되어 숙소 방향으로 갈 수 있을 텐데 좌회전 길은 보이지 않고 가다 보니 점점 숙소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처음 가는 길을 가다 숙소를 다시 찾으려면 내비게이션을 이용해야 할 것 같은데, 아뿔싸! 스마트폰을 가지고 나오지 않아서 구글맵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적으로 나의 방향감각을 이용해 숙소를 찾아가야 하는데, 도착한 지 며칠이라도 지났으면 내비게이션 없이도 동네 길이 익숙하여 숙소를 찾아가겠지만, 여기 도착한 건 불과 한 시간 전. 도로 방향을 따라 길을 가면 갈수록 숙소에서는 멀어지고 모르는 길로 가게 되는 것이었다. 교차로가 보여 좌회전을 하려고 하면, 좌회전 불가 표지가 있어서 교차로를 지나치고 또 지나치고.. 슬슬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려면 어려움을 겪는데, 초행길인 파리에서는 더더욱 내비게이션 없이 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큰일이다..

숙소가 있던 동네 거리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동물적 감각으로 내가 지금까지 지나온 길과 우리 숙소가 있었던 방향을 계속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약도를 그리면서 길을 찾아갔다. 그러다 막다른 길을 만나거나 우회전만 있는 교차로를 만나서 머릿속 약도는 점점 복잡해져 갔다. 그즈음 아이들이 걱정이 되었다. 아빠가 주차하러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으니 아이들도 불안해하고 있을 것 같았다. 왜 전화기를 두고 나왔을까, 무슨 자신감으로.. 순간 나 자신의 판단과 그 안일함이 후회가 되었다. 그래도 침착해야 했다.


"괜찮아, 찾을 수 있어.. 뭐 몇 시간이 됐든 돌다 보면 아는 길이 나오고 숙소도 보이겠지.."


불안한 마음을 지우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길을 헤매기를 30여분쯤 지났을까, 숙소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방향으로 가던 중 아까 처음 숙소를 찾아갈 때 보았던 눈에 익은 교차로 만났다.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그때부터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 뒤에 차가 오든 말든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차를 몰아가다가, 드디어 숙소 발견!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식은땀으로 젖었던 등골에 시원함이 느껴졌다. 아, 감사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숙소로 돌아왔더니 아이들이 아니나 다를까, 아빠 어디 갔었냐며 놀란 얼굴로 묻는다. 조금 전 밖에서 내가 겪은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얘들아 앞으로 한 달 남짓 여행 다니면서 절대 혼자 다니면 안 되고, 전화기를 두고 나가면 안 돼, 전화기에 충전이 잘 되어 있는지도 늘 살펴야 해.. 신신당부를 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첫날부터 대형 사고(?) 칠 뻔한 일을 겪고 난 후, 이번 유럽 여행 내내 전화기는 내 몸과 늘 한 몸이었다.


그렇게 주차 사고를 겪고 뜨거운 가족 상봉을 한 후, 제정신이 돌아올 즈음 저녁 약속을 위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랫동안 파리에서 살았던 친구는 우리가 있는 지역을 듣고는 우리 숙소와 자신의 위치를 감안해 퐁피두 센터 근처인 11호선 Rambuteau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오랫동안 씻지 못한 아이들을 대강 양치와 세수를 시키고 이틀 동안 그대로인 옷을 갈아입힌 후 길을 나섰다.


숙소에서 가까운 3호선 Gallieni 역에 서서 지하철을 타서 중간에 11호선으로 갈아타고 Rambuteau역까지 갈 생각이었다. 파리의 지하철은 서울에서 복잡한 지하철을 타 본 사람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다. 파리에 있는 동안 지하철 표는 주로 10장짜리 묶음인 까르네(Carnet)를 이용했다. 어른용과 10세 이하 어린이용 까르네가 따로 있었다. 지하철역에 무인 승차권 발매기에서 까르네 각각 한 묶음씩 샀다. 지하철역에서 표를 살 때, 모르는 사람이 접근해 도와준다고 하면 소매치기나 사기꾼일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길 익히 들어서, 표를 사는 동안 아이들에게 아빠 주변에 수상한 사람이 접근하지 않는지 잘 보라며 보초를 세웠다. 반 장난, 반 진지 모드로 얘길 했는데 아이들도 유럽의 소매치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다소 긴장한 듯 순순히 아빠의 지시에 따랐고 무사히 표를 구매할 때까지 주위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파리의 지하철. 우리 지하철과는 달리 안전펜스가 없어 위험해보이기도 한다

Rambuteau역에 도착해서 지상으로 나가니 친구는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미술사&미학 공부를 위해 유학을 왔다가 프랑스가 좋아서 눌러앉은 케이스다. 10여 년 전에 LG전자에 재직하던 시절 파리에 출장 왔을 때, 잠깐 만난 후 거의 10년 만에 처음으로 만났는데 많이 변하지 않고 늙지도(?) 않고 그 모습 그대로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당을 같이 다니며 사귄 친구인데, 어릴 때부터 알던 친구들은 오래간만에 만나도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 편안함과 반가움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을 처음 본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큰 아이들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이모라고 불러야 할지 누나/언니라고 불러야 할지 호칭이 좀 고민이었는데, 이젠 나이도 있으니 이모라고 하기로 하고 친구를 따라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숙소가 있는 동네랑은 달리 "파리"스러움이 가득한 건물들과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눈에 익은 건물이 나타났는데 현대미술관이 있는 퐁피두 센터. 파리에는 고대/중세 그림은 루브르 박물관, 근대 그림은 오르세 미술관 그리고 현대미술품은 퐁피두 센터에 있다고 보면 된다. 퐁피두 센터는 이번 파리 여행 일정에 있는 곳이어서 며칠 후 방문하기로 하고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아이들이 피곤할 거 같으니, 간단히 저녁을 먹고 오늘은 일찍 귀가하기로 했다. 친구가 근처 크레페 맛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크레페를 먹어본 적 없는 제주 시골뜨기 우리 아이들은 그저 모든 것이 생경하고 신기한 듯 어리벙벙한 채로 따라다녔다.

파리 도착 첫날 저녁으로 먹은 크레페

음식을 먹으며 친구와 지난 시간 살아온 이야기, 최근 근황, 우리 가족의 이번 여행 계획 등등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아이들은 원래 입이 짧기도 하지만 오랜 비행 탓에 피곤하기도 하고 시차 적응도 안된 터라 입맛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절반 이상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는 이렇게 잠깐 보고 헤어지기는 아쉽다며, 우리가 파리를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만나자고 제안했다. 친구의 남편도 한국에서 온, 아내의 오랜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한다 했다. 다시 만나면 우리는 좋겠지만, 바쁜 친구의 시간을 많이 뺐는 것은 아닌지, 친구에게 민폐가 될까 봐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여행 다니며 상황을 보고 다시 연락을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아까 주차를 하다 길을 잃는 바람에 난리를 쳤던 나도 피곤했지만 이제 슬슬 체력의 한계에 도달한 아이들을 이끌고, 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와 저녁 9시경에 숙소에 도착했다. 아이들을 씻기고 침대에 눕혔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나도 샤워를 하고 못다 한 짐정리를 좀 더 한 후에 내일 일정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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