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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o Curly Choi Jun 22. 2023

[아이들과 유럽 자동차여행 40일] - 9화.

여행 3일차 (23.1.13) 1편 - 파리 오랑주리, 오르세 미술관

간밤에 미열이 있던 워니는 다행히 아침에 열이 내렸다.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평소 자전거를 열심히 타는 워니의 체력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여유 있게 일어나서 한국에서 가져온 누룽지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워니는 언제 미열이 있었냐는 듯 쌩쌩하다. 쌩쌩하다 못해, 힘이 넘치는지 아침부터 누나랑 티격태격 실랑이를 벌인다. 내 건데 왜 먹냐, 내 물건인데 왜 쓰냐.. 주고받는다. 다른 친구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선량하면서 왜 가족끼리는 이토록 야몰차고 냉정한지, 알 수가 없다. 이번 여행은 힘든 모험의 여정인데, 팀원끼리 이렇게 불화가 있으면 완주하기가 어렵다. 둘을 불러 차근차근, 하지만 근엄하게 동행자의 자세에 대해 가르친다. 솔직히 가벼운 얼차려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할 때는 가족이든 친구든, 서로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불편해도 조금 참고, 누나를 위해 또 동생을 위해 양보하고 도와주며 여행을 하자고 다짐을 한다. 살짝 어두워진 분위기가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어두움이랑은 거리가 멀다. 10분도 안되어 다시 헤헤 거리며 아빠의 염려를 불식시킨다.


오늘도 일정이 만만치 않다. 오랑주리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을 구경하고 저녁에는 바토무슈를 타고 파리의 야경을 즐길 예정이다.

숙소에서 지하철 역 가는 길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집을 나서는데 날씨가 화창하다. 어제 살짝 비가 내려서 그런지 하늘은 더욱 맑고 깨끗하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의 풍경이 어제와 또 다르다. 화창한 날씨 덕분인지 거리의 분위기도 밝고 상쾌하게 느껴진다. 날씨에 따라 거리의 정취가 이렇게 달리 보이다니, 신기하다.


지하철을 타고 콩코르드역까지 갔다. 거기서 오랑주리 미술관까지 5분가량 걷는다. 뛸리히 가든을 가로질러 가는 도중 산책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여유 있는 모습이 부럽다. 오랑주리는 '오렌지'란 뜻으로, 오랑주리 미술관은 과거 한때 귀족들에게 인기가 많던 오렌지를 재배하던 온실을 미술관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위대한 미술관은 규모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모여드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랑받는 작품이 있기 때문인데, 대표적인 작품이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수련' 연작이다.

오랑주리 미술관 가는 길. 미술관 너머 저 멀리에는 에펠탑이 보인다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들어 알고 있는 작품으로, 평소 미술에 큰 취미가 없는 나지만 꼭 한번 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모네는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집을 구입하여 말년에 집 주변의 정원과 연못을 가꾸며 그 수상 정원 풍경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입장을 위해 줄을 서있다. 검색대에서 간단히 소지품 검사를 하고 입구를 지난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 중이었다. 모네의 수련 작품을 위해 건물의 구조를 만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내부 전시실이 인상적이다.  파노라마 사진처럼 옆으로 길게 그려진 수련 그림 앞에 앉아 한참을 감상하다 보니 내가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 가운데 들어와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제주에 살면서, 나무 숲이나 정원이나 바닷가에 앉아 멍 때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수련 그림 앞에 앉아 있으니 제주에서처럼 익숙한 멍 때리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그 평화를 깨는 것은 역시 둘째 워니다.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이동할 땐 그만 가자고 하고, 한 곳에 머물러야 할 때는 이동하자고 한다. 미술관을 돌며 천천히 그림을 감상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가자고 조르고 보채는 바람에 다른 관람객에게 피해가 되므로 적당히 달래 가며 움직여야 한다. 워니는 이 그림들이 유명한 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그림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평소 차를 좋아하는 워니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다. 이 그림 하나로 람보르기니 스포츠가 수백 대를 살 수 있다고 했더니, 그제야 작은 눈이 똥글해진다. 이 그림이 그 정도란 말이야?! 하면서.


오랑주리 미술관, 모네의 수련 연작


오랑주리 미술관에는 모네의 수련 외에도 수많은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피카소, 르누아르, 세잔, 마티즈 등등의 화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니. 파리 사람들에겐 큰 혜택이 아닐 수 없다.

오랑주리 특별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명 화가들의 명작들

어제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투어 가이드분이 계셨기 때문에 가이드분을 따라 걸음을 맞춰 같이 구경을 다닐 수 있었지만, 가이드가 없는 미술관에 오니 아이들과 관람 속도를 맞추기가 어렵다. 써니는 써니대로 자신의 관심과 흥미가 있는 그림을 따라 이동하고, 미술에 큰 관심이 없는 워니는 사람 구경, 시설 구경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바쁘다. 여행을 오면서 했던 가장 큰 염려는 여행 중간에 아이들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는데, 막상 여행을 와서 며칠이 지나니 그것이 생각보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이제는 더 이상 3살 먹은 꼬맹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방향 감각이란 것도 있고, 미술관 안에서의 헤어짐은 진정한(?) 헤어짐은 아닐 것이므로 점점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지가 가면 어딜 가겠어.. 이 건물 안에 있겠지'하면서 혼자 미술관 관람을 하다 보면 아니나 다를까 중간에 딱 하고 마주치게 된다.


아이들이 각자 떨어져 관람 아닌 관람을 해준 덕분에 넉넉한 시간 동안 그림을 보고, 기념품 샵에 들렀다. 역시 아이들은 사고 싶은 것이 많다. 미술관에 있는 기념품샵이다 보니 색연필과 스케치북부터 각종 모네 그림엽서와 열쇠고리 등이 많이 있다. 아이들은 우리 여행 예산에 대한 개념이 없다.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것은 무조건 사겠다고 성화다. 안 되겠다 싶어, 이번 여행을 다니면서 기념품을 살 수 있는 예산 한도를 각자 정해주었다. 각자의 용돈 50유로와 기념품 샵에서 선물을 살 수 있는 돈 50유로를 주겠다 했다. 자기의 용돈과 기념품 구매가 가능한 예산 안에서 계획적으로 구매를 하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구매에 신중해진다. 여행 초반에 돈을 다 써버리면 나중에 여행 다니면서 사고 싶은 걸 사지 못할 수도 있다고 덧붙여 주의를 주었다. 그랬더니 손에 들고 있던 3개 중 1개만 남기고 나머진 내려놓는다. 작전 성공.


결과적으로 이번 여행 다니는 동안, 처음에 정한 기념품 예산을 크게 넘기지 않고 적절하게 관리를 하였다. 아이들은 너무 예산이 부족하다며 투덜거렸지만, 여행을 여러 차례 다녀 본 경험상 여행 갔을 땐 가급적 기념품 구매를 참는 게 맞다. 지금 이것을 안사면 언제 살 수 있느냐며, 마치 마지막 여행인 것처럼 보통은 그 기념품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막상 다녀와서 집에 도착하면 가방 안에 있는 기념품을 꺼내지도 않는 경우도 많다. 기념품은 그야말로 기념이 될만한 작은 것 하나, 보관하기 좋은 것으로 하나만 사거나 그나마도 사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사진으로 남기면 되잖아..


관람을 마치고 처음 들어갈 때 맡겨뒀던 가방을 찾으러 간다. 가방을 맡길 때 받았던 번호표를 꺼내서 직원에게 건네는데, 새삼 번호표가 재미있다.

오랑주리 미술관, 물품보관소 번호표 클라스

세계 곳곳에서 유명 화가의 명작을 보겠다고 몰려드는 세계적 미술관인데, 물품보관소의 번호표가 너무 빈약하다. 솔직히 좀 구리다. 내가 방문한 당일, 미술관의 특별한 사정으로 이런 번호표를 쓴 것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립 미술관이나 사설 미술관에서 이런 번호표를 쓰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도 어렵다. 처음엔 좀 너무한다, 사람들이 게을러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문득 이들의 여유, 철학? 같은 것도 느껴진다. 형식보다는 본질이다. 중요하지 않은 것에는 힘을 빼고, 반드시 필요한 것에만 최선을 다하자는 그런 철학?. 실용주의의 극단인지 아님 그냥 게으름인지.. 는 보시는 분 각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한다.


오랑주리 미술관을 나와, 근처에 있는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한다. 오르세는 5년 전 파리에 왔을 때도 방문을 했었다. 개인적으로는 3번째. 역시 입구에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 이렇게 매일매일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을 수 있는 걸까..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관광객, 관람객이 끊이질 않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문화/예술의 매력과 가치가 대단하다 새삼 느낀다. 또 한편으로는 짧게는 1세기, 길게는 수세기 전 프랑스 선조들 덕분에 지금 후손들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많은 덕을 보는구나 생각했다. 유럽 여행을 다니다 보면, 유명 화가의 미술관 하나 세워져 있는 작은 마을이 그 미술관 하나로 먹고사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이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먼 미래를 내다본 그들의 선조들의 지혜에 경의를 표할 따름이다. 

오르세 미술관을 배경으로. 어떻게 동시에 눈을 감았니..


오르세 미술관은 개인적으로 애정이 많이 가는 미술관이다. 루브르도 그렇고 오르세도 넉넉한 시간을 갖고 구경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 그러질 못해서 아쉽다. 2~3주 파리에 머물며 매일 출근하듯 와서 구석구석 찬찬히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젠가는 오겠지 바라본다. 

아이들과 나는 오르세에 들어서며, '혹시 서로 헤어져서 찾기 어려우면 여기서 기다리기다'하며 약속 장소를 먼저 정했다. 오랑주리에서도 그랬지만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서로 취향과 관심이 다르므로 같이 다니기는 어렵다. 만약을 위해 안전장치를 하고 나니 마음이 가볍다. 아이들도 각자 편하게 미술관 안을 돌아다니며 각자의 시간을 갖는다.

오르세 미술관 소장 작품

써니는 그림을, 워니는 이번에도 사람을 구경하고 다닌다. 관람하다가 중간에 아이들과 만나기도 하고 다시 헤어지기도 하면서 여유 있게 구경을 마치고, 오르세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에서 간단히 빵과 커피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중간중간에 빵이나 과자로 에너지를 보충하지 않으면 장시간 돌아다니기가 어렵다. 솔직히 아이들과 식도락 여행을 나온 것은 아니어서 맛집 찾기를 열심히 하진 않았는데, 이런 나 때문에 한국에 있는 아내는 걱정이 많다. 아이들이 맛집 찾기에 게으른 아빠 때문에 밥은 잘 먹고나 다니는지.. 거기까지 가서 매번 맛없는 패스트푸드나 먹고 다니진 않는지 노심초사다. 참다못해 직접 식당을 검색해서 카톡으로 마구 쏴주기도 한다. '지나가는 길에 그 식당이 있다면 한번 들러볼게'하고 무심히 대답하고 패스하기 일쑤다. 입 짧은 아빠와 아이들이라 유명 식당 찾아가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할 것이다. 아내가 같이 왔으면 여행이 더욱 맛있어지고 풍요로워질 텐데, 어쩔 수 없다. 맛집 탐방은 아내가 합류하여 우리 가족 완전체가 되는 이탈리아부터 시작하는 걸로.


오르세를 나와 근처에 있는 시넬리에 화방으로 향한다. [아

이들과 유럽 자동차여행 40일] - 9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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