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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영 긍정에너지 Sep 01. 2020

코로나 시대의 ‘어2동(어쩌다 2주 동거)’

contact에서 untact로, 이젠 new-tact로

사람은 본능적으로 타인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그렇게도 고독을 논했던 것이 아닐까     


내가 작업했던 매우 인상적인 영화 <크래쉬(Crash)>의 도입부 또한 그런 맥락의 화두를 던진다     


정이 그리워 이러는 거야 

다른 도시에선... 길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정드는데

LA는 삭막하잖아

늘 차 안에 갇혀 살고

사람의 체취가 그리워서... 서로 충돌하고 상처 주지

It's the sense of touch.

Any real city, you walk, you know?

You brush past people. People bump into you.

In L.A., nobody touches you. 

We're always behind this metal and glass.

I think we miss that touch so much

that we crash into each other just so we can feel something.   

<영화 크래쉬(Crash)> 중에서

  

인간은 접촉을 그리워하기에역설적으로 일부러 충돌한다는 흥미로운 스토리였다     


코로나가 예측 불가한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가고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한 세상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지금더욱 접촉과 소통을 생각하게 된다카페에 모여 수다를 떨고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북적이는 거리를 활보하던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지난 2주간의 색다른 동거(?)는 새로운 차원의 접촉이었다     


고등학교 문예반(아람) 5년 선배 언니언니의 두 딸이 미국에서 귀국한 후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그동안 언니 부부가 지낼 곳이 필요했고그렇게 우리의 신나는 2은 시작됐다     

내가 한 일은 아침에 평소보다 약간 많은 양의 커피를 내리고잠자고 있던 내 안의 요리 본능을 가끔 발휘한 것뿐이었다


우린 서로 앞다퉈 요리(김밥/제육볶음/스테이크/새우 스파게티/육개장/마파두부/비빔국수/볶음밥/월남쌈까지)를 식탁에 올렸고맥주와인과 더불어 이어지는 수다의 향연은 끝이 없었다     

사실 우리 문예반 동아리는 다양한 연령대(30년 차이나기도선후배들이 각자의 개성과 전문지식(의사/작가/출판/번역/교육 등등)과 숨길 수 없는 말빨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왔다비교적 최근 이 모임에 합류하게 된 언니의 비어있는 폴더를 열심히 채우는 나의 열토는 매일의 드라마였다     

영화를 번역하는 나문예 창작을 강의하는 언니여기에 영화감독 형부의 게스트 출연으로웃음과 감동은 끊일 날이 없었다     

무엇보다 진한 컨텐츠는 남다른 인생사를 살았던 우리 그 자체이다아팠던 과거는 오늘의 힘이다그것이 우리의 공동 주제였다언니는 나보다 더 많이 살아온 어른답게순간순간 어떤 아픔의 지점에서 따뜻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그래이해해그랬을 거야     


또 2은 내 삶의 곳곳 문예반 아람의 흔적을 소환하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유난히 쓰잘데기없는 걸 기억 잘하는 내 특기(?)가 크게 한몫했다. (ex: 첫사랑 교생 선생님과의 5년 만의 재회그 떨리는 순간에 함께 했던 선배 언니후배 결혼식에 엄마로 위장해서 참석했던 나일요일 밤 응급실에서의 우연한 조우 등등...)      

한때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우리시차가 있으나우린 교지를 만들고 교내 백일장과 시화전을 준비하는 나름의 문학소녀들이었고그 끈끈한 무엇으로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수십 년 세월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공유해왔다그 수많은 사건 사고들은 미니 16부작은 너끈히 나오고도 남을 분량이란 것도 발견했다     

그 추억의 메이킹필름은 이번에도 이어졌다대충대충 사는 나의 살림살이 공백을 관찰한 언니는 군데군데 언니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실내운동기청소기선풍기슬리퍼기초 화장품무엇보다 냉장고를 가득 채운 식량숙박비(?)를 보육원 후원금 선지급 청구했던 나는못 이기는 척하고염치없이 수많은 아이템을 접수하고야 말았다     


코로나가 강제한 2주의 동거를 마친 오늘두 분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이산가족 비슷한 서운함이 앞섰다

그러나 언니가 남긴 흔적을 찾아 수렵 채취의 자세를 취한다망고 맛 치즈!!      


contact에서 untact로 가는 과정은 불편하지만그걸 넘어서 new-tact로 가는 재미가 쏠쏠했던 시간이었다코로나 시대의 2’(i.e. 자가격리 나비효과 동거), 많은 이들에게 강추한다    

 

(참고 : new-tact : 검색한바이런 표현은 아직 없는 듯. ‘tact’의 의미(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무슨 말을 할지어떻게 행동할지 조절하는 요령 : a keen sense of what to do or say in order to maintain good relations with others or avoid offense)를 고려해보면써도 무방할 듯. 나의 생각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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