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에서 untact로, 이젠 new-tact로
사람은 본능적으로 타인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그렇게도 ‘고독’을 논했던 것이 아닐까?
내가 작업했던 매우 인상적인 영화 <크래쉬(Crash)>의 도입부 또한 그런 맥락의 화두를 던진다.
정이 그리워 이러는 거야
다른 도시에선... 길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정드는데
LA는 삭막하잖아
늘 차 안에 갇혀 살고
사람의 체취가 그리워서... 서로 충돌하고 상처 주지
It's the sense of touch.
Any real city, you walk, you know?
You brush past people. People bump into you.
In L.A., nobody touches you.
We're always behind this metal and glass.
I think we miss that touch so much
that we crash into each other just so we can feel something.
<영화 크래쉬(Crash)> 중에서
인간은 접촉을 그리워하기에, 역설적으로 일부러 충돌한다는 흥미로운 스토리였다.
코로나가 예측 불가한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한 세상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지금, 더욱 접촉과 소통을 생각하게 된다.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떨고,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북적이는 거리를 활보하던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지난 2주간의 색다른 동거(?)는 새로운 차원의 접촉이었다.
고등학교 문예반(아람) 5년 선배 언니, 언니의 두 딸이 미국에서 귀국한 후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그동안 언니 부부가 지낼 곳이 필요했고, 그렇게 우리의 신나는 ’어2동‘은 시작됐다.
내가 한 일은 아침에 평소보다 약간 많은 양의 커피를 내리고, 잠자고 있던 내 안의 요리 본능을 가끔 발휘한 것뿐이었다.
우린 서로 앞다퉈 요리(김밥/제육볶음/스테이크/새우 스파게티/육개장/마파두부/비빔국수/볶음밥/월남쌈까지)를 식탁에 올렸고, 맥주, 와인과 더불어 이어지는 수다의 향연은 끝이 없었다.
사실 우리 문예반 동아리는 다양한 연령대(30년 차이나기도) 선후배들이 각자의 개성과 전문지식(의사/작가/출판/번역/교육 등등)과 숨길 수 없는 ’말빨‘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왔다. 비교적 최근 이 모임에 합류하게 된 언니의 비어있는 폴더를 열심히 채우는 나의 열토는 매일의 드라마였다.
영화를 번역하는 나, 문예 창작을 강의하는 언니, 여기에 영화감독 형부의 게스트 출연으로, 웃음과 감동은 끊일 날이 없었다.
무엇보다 진한 컨텐츠는 남다른 인생사를 살았던 우리 그 자체이다. 아팠던 과거는 오늘의 힘이다. 그것이 우리의 공동 주제였다. 언니는 나보다 더 많이 살아온 어른답게, 순간순간 어떤 아픔의 지점에서 따뜻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그래, 이해해, 그랬을 거야’
또 ‘어2동’은 내 삶의 곳곳 문예반 아람의 흔적을 소환하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유난히 쓰잘데기없는 걸 기억 잘하는 내 특기(?)가 크게 한몫했다. (ex: 첫사랑 교생 선생님과의 5년 만의 재회, 그 떨리는 순간에 함께 했던 선배 언니. 후배 결혼식에 ‘엄마’로 위장해서 참석했던 나, 일요일 밤 응급실에서의 우연한 조우 등등...)
한때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우리. 시차가 있으나, 우린 교지를 만들고 교내 백일장과 시화전을 준비하는 나름의 문학소녀들이었고, 그 끈끈한 무엇으로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수십 년 세월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공유해왔다. 그 수많은 사건 사고들은 미니 16부작은 너끈히 나오고도 남을 분량이란 것도 발견했다.
그 추억의 메이킹필름은 이번에도 이어졌다. 대충대충 사는 나의 살림살이 공백을 관찰한 언니는 군데군데 언니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실내운동기, 청소기, 선풍기, 슬리퍼, 기초 화장품, 무엇보다 냉장고를 가득 채운 식량! 숙박비(?)를 보육원 후원금 선지급 청구했던 나는, 못 이기는 척하고, 염치없이 수많은 아이템을 접수하고야 말았다.
코로나가 강제한 2주의 동거를 마친 오늘, 두 분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산가족 비슷한 서운함이 앞섰다.
그러나 언니가 남긴 흔적을 찾아 수렵 채취의 자세를 취한다. 앗, 망고 맛 치즈!!
contact에서 untact로 가는 과정은 불편하지만, 그걸 넘어서 new-tact로 가는 재미가 쏠쏠했던 시간이었다. 코로나 시대의 ‘어2동’(i.e. 자가격리 나비효과 동거), 많은 이들에게 강추한다.
(참고 : new-tact : 검색한바, 이런 표현은 아직 없는 듯. ‘tact’의 의미(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행동할지 조절하는 요령 : a keen sense of what to do or say in order to maintain good relations with others or avoid offense)를 고려해보면, 써도 무방할 듯. 나의 생각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