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려고 용트림한다 : 번역작가의 일상
드라마 작가들은 처음에 자기 얘기를 많이 쓴다고 한다. 나도 오래전 잠깐 업종전환할까 싶어서 습작이라고 한 편 써서 냈더니(물론 50% 이상은 내 얘기), 그 당시 담당 쌤 반응 ’너무 마음 아팠어요‘, 친구들 반응 ’대사발 죽인다!!‘ (당연하지!! 내가 피 토했던 라인이다!!!)
여튼... 그래서 드라마엔 작가/TV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들의 현장이니까.
이번에 우연히 <런온>을 보면서 깜놀했다. 아니! 우리 업종도 주인공 직업으로 캐스팅(?)되는구나!!!!
할리우드에 스토리 소스가 부족하다더니 우리나라 연예 컨텐츠도 드디어 새 직업군 발굴!!!??
또 아주 오래전 드라마에서 주인공 여자가 번역한다면서 꽃같이 단장하고 거실에서 컴퓨터 키보드 톡톡 두드리는 거 보고 이 바닥 동료들이 분개한 적은 있었으나, 이 정도 현장감 있게 리얼한 삶을 재현한 영화/드라마는 (내 기억에) 처음인 듯...
사실 번역작가의 생활은 드라마 소스로 별로 매력이 없다.
작업시간의 90% 이상은 나 홀로 격리 상태. (해외입국자로서 현재 자가격리 중인 나는 어쩜 이렇게 생활의 불편이 없는지, 슬기로운 격리 생활 중).
드라마의 기본 요소인 갈등을 만들어내는 네트워크가 너무 약하다. 작품 의뢰하는 업체가 주 연락선이고, 요즘은 모든 업무가 디지털화되어 예전 35mm 필름 시절 다니던 자막 제작실도 갈 일이 없다. 오밀조밀 엉켜있는 드라마 작가/배우/학교/경찰/의사/검사/조폭 등의 직업군에 비해 컨텐츠 볼륨이 너무 약하다. 오래전 번역작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제작한다고 해서 영화사 사람들 만나고 시나리오 일부 리뷰해준 적 있었는데, 이유는 잘 모르지만 영화는 엎어졌다.
<런온> 신세경은 영한/한영 번역/GV 통역/시나리오 검토 등을 다 하면서 배급사 사장과 룸메까지 하고/통번역 대학원 교수와 일로 얽히는 등... 그녀의 동선을 확장 시켜 여기저기 엉키게 구성한 듯하다. (이 조건에 100% 맞는 번역작가는 ‘내가 알기론’ 없다. 한영/영한/통역/시나리오 번역 및 리뷰, 장르 불문 닥치는 대로 다 하는 내가 80% 정도 일치할까?)
의사 선배는 의학 드라마가 현실감 없다고 보고 싶지 않다고 하던데, <런온>은 신기한 직업 사전을 보듯 몇 편 보았다. 물론 신세경이기에 가능했던 밤새고 작업해도 가능한 피부 상태, 여유 있는 발걸음, 가끔 어딘가 안 맞는 대사 (ex:스파팅 할 시간은 있었어?/마감 겨우 했어), 배급사 사무실에서 시나리오 보면서 눈물 흘리는 장면(시나리오는 보통 100페이지 넘는데 그렇게 간단하게 눈물을 흘릴 수가 없다) 등은 픽션을 위한 양념으로 이해하고...
다만 누군가 우리 업종을 주인공으로 발탁했다는 Surprise!를 즐기기로 했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의학/조폭/법조계/배우/재벌 이야기에 비교하자면, 우리 업종은 드라마 소스로는 단명(?)할 것 같다는 (위에서 말한 이유로 인하여) 안타까움 때문에...
드라마 속 신세경은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매우 자기중심적 동기로 20년 넘게 젖은 낙엽 정신으로 이 바닥에 붙어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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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넓은 세상을 보았고, 내면의 세계를 성찰했고, 열정은 2+1로 붙어온 느낌.
그리고 이제 내 인생의 새로운 번역 버전을 작업중이다. (v.5.5 정도 될까?)
PS : v = vip 절대 아님 (웃자고 하는 얘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