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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삭한 주노씨 Jul 23. 2020

우울할때 난 내가 아니야

감정의 변화일까 성격이 변한걸까?

짧지만 굵게 연애를 했다. 제대로 누군가를 좋아했기에 내상이 클 줄 알았다.

짧은 만남과 헤어짐이 일상인 숙박업자가 갖는 직업병 때문일까? 의외로 덤덤한 내 자신의 모습이 걱정도 되고 가끔 무섭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별 후 이상한 증상들이 느껴진다. 혹자는 갱년기 장애라는데 내가 보기엔 우울증 같다. 여지껏 살아오면서 두어번 이런 증상을 경험했다. 잘나가던 직장에서 처음으로 밀려났던 10여년전에도 그랬고, 제주에 와서 게하를 열고 사람이 미어터지던 그 때도 딱 이랬다.


1) 사람을 대하기가 힘들다. 코로나 시대에 걸맞게 비대면 셀프입실 시스템인데, 어쩌다 손님들과 마주치면 인사만 하고 도망치듯 나만의 공간으로 숨어든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있으려고 발악을 한다. 흔해 빠진 반복적인 대화들이 식상하다보니 손님이 먼저 물어보기 전까진 왠만해선 말을 걸지 않는다. 숙박업계의 ‘타다’ 택시다.


2) 짜증이 쉽게 나고 분노조절도 살짝 안되고 있다. 하루 전 보내드리는 이용안내문자에 있는 정보를 전화로 되묻거나 셀프입실을 하지 않는 분들에게 짜증섞인 어투로 말을 할 때가 있다. 전기차로 바꾸고 가속능력이 좋아져서인지 답답하게 운전하는 차가 내 앞을 가로막으면 쌍시옷이나 4 letter words가 시나브로 튀어 나온다. 콜센터 직원이 말귀를 못알아 듣거나 한 말 또 하게 하면 빈정거리며 비수를 꽂는 독설을 날리곤 한다. 돌아서면 후회할 말을 하다보니 ‘사후보상처리’에 더 많은 공력과 비용이 들고, 결국 기껏해야 얻는 건 ‘츤데레’란 허울좋은 별명이다.


3) 정리정돈을 잘 못한다. 손님이 사용한 객실 청소만 겨우 해낼 뿐, 정원관리나 마당 곳곳에 널부러져 있는 잡동사니들을 그대로 방치해 둔다. 날을 잡아 버릴 건 다 버리고 치워야지 하고 마음 먹지만 마음 먹은만큼 잘 안된다. 모처럼 놀러 온 누나가 집에 생기가 없어졌다며 직접 이곳 저곳을 정리정돈하며 일만 하고 가셨다. 집안 일이 점점 귀찮아 지다보니 다시 스탭을 고용했다. 식사도 대부분 간단히 해치우거나 외식을 한다. 혼자 되고 3kg이 빠졌다.


4) 걱정이 많고 자책을 많이 한다. 어찌됐든 내가 부족해 연애에 실패한거고 새로 온 스탭과도 의견충돌이 잦다 보니 요즘들어 난 왜 관계에 어려움을 갖는 걸까 고민을 자주한다. 소통능력이나 공감능력의 저하로 누군가와 친해지고 나면 결국 그들이 내게 실망할까봐 사전에 그런 위험을 차단하려고 사람자체를 피하는 건 아닐까? 제주 오기 전부터 알던 오랜 지인들 외엔 딱히 흉금을 터놓고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이런 내가 못마땅하고 싫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생각하고 몇 가지 대안을 당장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해결의지가 있는 걸 보니 아직 상태가 심각하진 않은 것 같다.


1) 일단 3년만에 요가학원을 다시 끊었다. 호흡만 제대로 해도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 있단 기대감에 월목금 아침 집근처 종달리에 새로 오픈한 요가원엘 간다. 어깨가 뻣뻣해 병원에서 사진을 찍었더니 자세결함으로 목뼈가 정상인에 비해 덜 휘어있어 어깨 근육이 당기는 거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요가가 맞아 보인다.


2) 게을리했던 예불의식을 다시 하고 있다. 종교에 푹 빠지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부모님께서 강추하시니 불단을 만들어 석가모니불 사진과 정한수를 올리고 3~40분간의 의식을 치른다. 금강경을 읽고 기도와 염불을 의식적으로 이틀에 한 번은 하고 있다. 효과는? 약간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정도랄까...


3) 디지털 대학교 과정 등록을 고민 중이다. 역학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 국내유일의 학과인 원광디지털대학교 동양학과에 편입하려 알아봤더니 편입과정은 이미 신청 마감이라 2학년으로 입학하던지 내년 봄 3학년으로 편입하란다. 이 나이에 어디 취업이나 창업을 위한 건 아니고 공부에 대한 순수한 욕구, 그리고 새로운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다. 조직생활과 결혼, 자녀양육 등 이 땅의 중장년들이 정상적인 사회화 과정을 통해 얻는, 나이에 맞는 ‘격’을 갖출 기회를 상실한 나로서는, 스쳐가는 게스트만 상대하는 부평초같은 삶이 아닌 교양과 덕을 갖춘 커뮤니티에 대한 그리움이 근래들어 간절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감정이 늘 평온할 수만은 없단 걸 안다. 감정의 간헐적 요동 같은데 성격 자체의 문제로 이미 고착된건 아닌지 우려된다. 오래된 지인들이 난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위로해줄 거 같은데 요즘 같아선 뭐가 뭔지 나도 모르겠다. 우울증은 평생 감기처럼 오는 거라는데 쉽게 정복되지 않는 코로나형 우울증이 아니길 그저 바라본다.


출출할 때 난 내가 아니듯, 우울할 때 나도 내가 아닐거야 ㅡㅡ;;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달달한 마음의 스니커즈!

Che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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