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부딪히고 보자
평소 등산을 즐겨하지 않는 내가 갑자기 한라산의 정상을 찍고 왔다.
버킷리스트를 만들지 않았는데 하고 나니까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178cm/75kg의 적당한 체력과 근력을 가진 20대 후반 남성
등산은 동네의 완만한 산을 아주 가끔(평생 10번 정도 등반 경험) 탔음
등산 장비x
모든 글의 내용은 글쓴이 주관적인 판단을 전제로 작성함
2월 중순에 다녀왔기 때문에 계절적 차이가 있을 수 있음
월요일: 낮 김포 -> 제주 출발
화요일: 오전 6시 등산 시작 - 오전 11시 30분 하산 시작 - 오후 3시 숙소 도착
수요일: 오전 제주 -> 김포 도착
(1)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에서 운영하는 한라산 탐방 예약시스템에 접속하여 예약을 해야 등반할 수 있다.
(2) 관음사, 성판악 코스가 있는데 정상(백록담)에 오르기 위해서는 각 코스의 마지막 대피소에 12시 30분까지 도착해야 한다. 12시 30분부터는 정상탐방이 통제되므로 소요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예약해야 한다.
(2) 예약 비용은 발생하지 않지만 꽤 높은 경쟁률을 보여 운이 좋거나 모니터링을 하지 않는 이상 예약을 하기는 쉽지 않다.
(3) 표 구하기가 어렵다고 중고장터에서 비싼 돈 주고 구매하지 말자. 조금의 시간을 투자한다면 충분히 예약 취소 건을 노릴 수 있다.
(1)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장비: 구형 전투화, 등산 배낭(30L), 보온병, 모자, 전투복 하의, 일반 상의 및 자켓, 두꺼운 양말, 장갑
(2) 구매한 장비: 등산스틱, 아이젠
(3) 기타 챙긴 물건: 물티슈, 휴지, 보조배터리, 이어폰, 컵라면, 초코바 4개, 쓰레기 담을 봉투, 삼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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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물품들을 챙겨 등반을 한 결과 느낀 점
등산화는 무조건 등산 전용 신발을 추천(글쓴이의 신발은 상태가 좋지 않아 다녀온 후 발의 피로가 높았음)
등산스틱은 거의 사용하지 않음(아이젠으로 충분하며 비상용으로 휴대하는 수준)
몸에 열이 많다면 옷을 얇게 입고 오르다가 고도가 높아지면서 기온이 낮아질 때 추가로 옷을 입어야 함(정상 기준 기온 영하 17도)
쓰레기가 있다면 이를 처리할 봉투는 반드시 챙길 것(쓰레기통 없음)
삼각대를 쓸 환경이 되지 못함(바람에 사람들 모자가 날아감)
1) 내비게이션에 '관음사지구 야영장'을 검색하여 찾아오길 추천한다. '관음사'와 '관음사지구 야영장'은 다른 위치에 있으며 한라산 등반은 '관음사지구 야영장'에서 시작할 수 있다.
2) 주차장은 넓은 편이며 주차장 건너편 매점에서 미처 챙기지 못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으니 확인은 필수(글쓴이는 매점에서 컵라면과 아이젠을 구매함). 아이젠은 필수 of 필수
3) 예약 후 제공받은 큐알코드가 없다면 등반할 수 없으니 미리 확인하고 준비해야 한다.
1) 입구 ~ 탐라계곡(약 3.2km)
다른 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사와 난이도...인 줄 알았으나 눈길에 평소보다 더 많은 힘이 들었고 해가 뜨지 않아 앞이 어두워 녹은 계곡물에 발이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쉬운 난이도의 구간이었기 때문에 사진 찍는 소리와 대화 소리가 자주 들린다.
2) 탐라계곡 ~ 삼각봉 대피소(약 2.8km)
급격하게 높아진 경사, 올라갈수록 추워지는 기온, 점점 힘이 빠지는 다리 포기하기 좋은 조건들이 한 번에 몰려왔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하산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등산길의 화장실, 대피소, 헬기장, 정상을 제외하면 어느 곳에도 쉴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쉬고 싶다면 차갑게 얼어버린 눈 위, 가이드라인 등에 기대어 쉬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삼각봉 대피소에 올랐다면 그 보상을 충분히 받는다. 감히 표현할 수 없는 경치가 우리를 반기고 사진 찍는 모든 배경이 아름답다. 구름을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한숨을 돌리며 남은 절반의 길을 준비한다. 글쓴이는 삼각봉 대피소에서 짧게 쉰 죄로 다음 구간부터 정상까지 10번이 넘게 다리에 쥐가 나서 5번을 넘게 포기를 생각했다.
3) 삼각봉 대피소 ~ 현수교 ~ 정상
한라산에 흔들리는 다리는 두 개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하나는 현수교, 다른 하나는 내 다리이다.
표지판을 보면 분명히 삼각봉 대피소 - 현수교 까지는 보통의 난이도라고 설명이 되어 있지만 이미 힘이 많이 빠져버린 내 다리는 당장이라도 포기하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걱정은 아직 이르다. 현수교를 지나고 나니 살면서 겪어보지 못했던 등산길이 인사한다. 다리에 쥐는 나고 기온은 낮아지니 쉬더라도 길게 쉬지 못하는 진퇴양난의 구간인데 몸을 돌려 앉아 산에 기대면 보이는 것들은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도록 만든다.
4) 정상
세월아 네월아 오르다 보니 등반 4시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사진에 감히 담을 수 없는 장관이 펼쳐진다. 정상의 기온은 영하 17도인데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발은 꽁꽁 얼었고 입은 추워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모든 감각을 통해서 정상에 왔음을 실감했다. 약 40분 동안 정상에서 헛헛한 마음을 보내고 긍정의 기운을 받아냈다.
오를 때는 관음사 코스로 올랐는데 쉽지 않은 경험에 같은 길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하산길은 성판악 코스를 밟았다. 관음사에 비해 낮은 난이도로 알려져 있다고 방심할 만큼은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오르고 있었고 글쓴이 또한 풀린 다리를 어렵게 끌고 하산했다. 그래도 등산할 때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가니까 더 많은 소리와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한라산의 모든 공간은 포토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음이 가벼우니 보였던 여기저기 보이는 푯말들.
만약 등산할 때 푯말을 봤다면 심리적 충격으로 인해 정상에 오르기 전 포기했을 것 같다... 참고로 구간은 250m마다 하나씩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사진의 4-9구간은 성판악 기준 4-36까지 있으므로 정상까지 약 6,750m 정도 남았다고 보면 된다(절대 봐서는 안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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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 - 성판악 코스로 등·하산을 한 경우 관음사지구 야영장 주차장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선택하기 전 이동수단과 소요시간을 잘 따져봐야 한다.
한라산 등반을 위해 기회비용으로 투자한 2박 3일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2022년을 위해 샀던 다이어리에 버킷리스트를 한껏 적었지만 아직 이룬 것은 한 개도 없다. 분명 한라산 등정은 적어놓지 않았지만 버킷리스트를 이뤘을 때보다 더 짜릿한 쾌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은 확신이 든다.
최고의 준비는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