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 일상으로 끌어들이기
re + search / 반복해서 찾는다
한 번의 검색에 머무르지 않고, 반복적으로 검색하여 넓은 정보의 땅에서 원하는 걸 얻는 작업
위는 제가 정의한 리서치의 개념입니다. 특히 IT에는 디자인 리서치, 마켓 리서치, UX 리서치 등 많은 리서치의 종류가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광범위한 의미의 리서치를 기획자인 저는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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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
능동적인 리서치
보통 리서치는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 시켜서 하게 됩니다. 수동적인 리서치는 물론 업무를 진행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기획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내디뎌야 합니다. 이미 스토어에 등록된 앱은 몇백만 개에 이르렀고, 제가 다니는 회사의 경쟁사 앱만 수십 개가 됩니다. 수많은 앱의 늪에서 우리 서비스가 돋보이기 위해서는 리서치가 기획자에게 빠질 수 없는 기본 역량이기 때문에 보다 능동적인 리서치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스로 리서치를 습관화해야 한다는 말이죠.
제 하루의 어떤 날은 업무보다 폰을 보는 일이 더 많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저는 최소 회사의 경쟁사 앱은 모두 다운받아놓고 사용합니다. 금융 분야의 특성상 최소한의 금액을 투자해놔야 서비스를 수월하게 이용할 수 있어 잔고가 살짝 아프지만 대신 정말 많은, 뜻밖의 리소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넓게는 모든 분야의 앱을, 좁게는 경쟁사의 앱까지 직접 사용하면서 다양한 기능과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동 업데이트를 허용하지 않는 것인데요, 모든 앱을 매일 확인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자동업데이트를 해놓으면 변경된 내용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채로 경험하게 되어 단순 앱 경험만 하게 됩니다. 따라서 저는 직접 업데이트를 하며 어떤 서비스가 어떤 내용이 업데이트되었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렇다고 모든 걸 기록하진 않습니다. 필요한 것만!).
앱을 설치하거나 특정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면 '마케팅 수신 동의'의 팝업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나타날 때마다 "아~ 이거 너무 귀찮아!"라며 동의하지 않고 넘어갑니다. 또는 자잘한 앱푸시도 용납하지 못해 꺼버리고 말죠. 이렇게 무한대로 쌓이는 알림과 언제 왔는지 읽은 건지 모를 정도로 보관되는 메일들, 저에겐 영양가 높은 양식으로 느껴집니다. 사용자 혹은 서비스의 case 별로 수십~수백 가지인 사용자 친화적인 앱푸시, 그리고 약관, 정책, 기능, 이벤트 등의 모든 정보를 앱에 들어가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는 메일함. 귀찮지만 들여다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언갈 찾아낼 수 있습니다.
OTT를 시작으로 요즘은 영양제, 식단, 커피, 뉴스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구독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매달, 매년 꾸준히 결제만 되면 내 생활에 맞는 정보가 특정일에 맞춰 배송되죠. 우리는 서비스를 직접 찾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으며, 회사는 고객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게 구독 서비스의 장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관심 있는 서비스의 구독을 활용하여 각 회사들이 고객을 단골로 만들기 위해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하기도 합니다. 즉, 일회성 고객을 단골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들의 다양한 방법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리서치를 내 일상의 일부로 만들었을 때 업무와는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요?
시중에 나온 많은 앱들을 사용해 보면, 잘 쓰는 앱과 비교적 잘 안 쓰는 앱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비교가 됩니다. 이런 경험들은 자연스레 앱들의 비교 분석이 정리되는데요, 예를 들어 어떤 UI/UX 패턴이 정형화가 되어 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되며, 현재 시장이나 경제에 따라 바뀐 서비스/수익 모델이 왜 그렇게 바뀌었는지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더 깊게 분석한다면 서비스의 톤앤매너, 컴포넌트, 라이팅 등의 기준으로 쪼개어 요즘을 파악할 수 있겠습니다.
기획자는 서비스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객이 마주할 문제를 찾아낼 때조차 우리는 진짜 문제를 찾기 위해 서비스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리서치는 거시적/미시적 관점에서 우리가 어떤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저는 간혹 경쟁사의 앱을 쓰다가 '아, 여기는 진짜 잘 만들었다.', '이런 부분은 우리가 더 낫네?' 같은 생각을 통해 주관적 견해가 발생하면 구글링을 통해 그 견해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기사, 통계 등)를 찾아 우리 서비스의 수준을 파악하곤 합니다. 이렇게 순살 되며 쌓인 리서치 정보들은 서비스의 자기 객관화가 가능하게 해 주며, 나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갈피를 고민하게끔 이끌어줍니다.
리서치의 output은 결국 나의 input이 됩니다. 리서치를 하며 얻은 양질의 정보는 내 경험과 사회에 공개적으로 도출된 결론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나를 전적으로 받쳐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줍니다. 나에게는 풍부한 지식원이, 타인에게는 내 의견을 타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근거가 되거든요. 저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면 사전에 내가 할 말에 대해 근거를 찾아보고, 정리해 갑니다. 이 과정에서도 리서치가 생활화되어 있다면 시간도 절약되고, 좀 더 여유롭게 내 의견을 들려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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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떤 목표를 위해 기획자는 벤치마킹 보고서, 리서치 보고서를 쓰곤 합니다. 그때마다 리서치를 하며 문서를 작성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일상으로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머릿 속의 리서치는 필요에 의해 진행한 리서치보다 더 기억에 남을 것이고,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좋아서 하는 일과 타의로 배워서 하는 일의 습득력이 다른 것처럼요. 모든 것을 습관처럼 경험하고 탐구한다면 뼈와 살이 튼실한 나의 말을 사람들은 결국 인정하고 따라줄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