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변호사 코미카도 켄스케는 석가여래도 격분할 독설을 숨 쉬듯 내뱉는 냉혈한이자 매사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일삼는 아웃사이더이다. 어느 날 후배(라고 하기엔 대놓고 여주...)가 '선량한 다수의 보편적 정의'를 묻자 그런 건 소년만화에나 있다며 일침을 가하더니, 어안이 벙벙한 후배에게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것, 변호사가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야."라고 쐐기를 박는다. 분명 왕싸가지에 초극대 속물인데 어쩐지 맞는 말을 하는 거 같기도 한 이 사람, 과연 코미카도 선생은 부도덕과 부정의의 화신으로 비난받아 마땅할까.
이 바닥 일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자주 세간의 지탄을 받는데, 대개 "어째서 저런 못돼처먹은 자의 이익을 대변하느냐"는 식으로 변호사의 부도덕과 부정의를 비난하는 취지이다. 사람 목숨 예사로 거둬가던 고약한 살인마를 변호할 때나 들을 법한 소리 같지만, 평범한 사람 사이 금전관계를 다투는 민사소송에서도 종종 이런 욕지거리를 얻어 먹는다. 그저 내가 장수하길 비는 마음이 다소 거칠게 표현되었구나 싶어 껄껄 웃다가도 돌이켜보면 찜찜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이른바 '보편적 정의'란 무엇일까. 과연 그런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소송전에서는 서로가 보편적 정의의 입장에 있다며 (그 보편적 정의에서 벗어난) 상대방의 부정의를 맹비난한다. 하지만 사실 냉정히 따져보면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원하는 결론을 정의, 그와 배치되는 결론을 부정의로 규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보편적 정의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을지 모른다.
정의는 진리와 같지 않고 오히려 비탈길을 구르는 동전과 같다. 언제, 어디서, 어떤 면을 보이느냐에 따라 정의가 될 수도, 부정의가 될 수도 있고, 종래의 부정의가 훗날의 정의로, 기왕의 부정의가 장차 정의로 둔갑하기도 한다. 소송 당사자 각자의 정의가 이러할진대 그를 돕는 변호사의 정의인들 다를 리 없다. 의뢰인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해도 그것이 또 다른 위법으로 되지 않는 이상 변호사에게 사슴은 말이 되기도 한다. 변호사가 실체도 불분명한 보편적 정의론에 입각해 의뢰인의 정의를 멋대로 재단하려 든다면, 엄밀히 말해서 이는 선을 넘은 것이고 직업윤리에도 어긋난다. 그래서 이따금씩 날아드는 삿대질을 용케 피해 가며 '고얀 놈의 부정의'를 돕는 게 아니라 '생각이 다른 남의 정의'를 돕는다 해명하곤 한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들이밀게 된 칼럼인데... 비록 내용은 비루하기 이를데 없지만, 오늘도 영문 모르게 찰진 욕 잔뜩 먹고 어리둥절해 있는 이 바닥 사람들에 대한 오해를 푸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