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en: Dark Phoenix, 2019
평이 워낙 나빴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은 오히려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엑스맨이 볼 거리와 스케일만 중요한 시리즈는 아니었기에, '다크 피닉스'의 소박한 액션 신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걱정했던 것보다 나쁘진 않았다는 얘기다)
특히 후반부 액션 신은 과거 대비 창의적이지 않았을 뿐 속도감 측면에서 비교적 훌륭했다. 물론 다크 피닉스가 우주 최강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전작 대비 줄어든 스케일이 좀 의아하긴 했지만, 제한된 공간들 안에서 캐릭터의 개성은 충분히 살린 편이다.
오히려 영화는 다크 피닉스의 존재만 등장하면 정신을 못 차리고 서사의 언저리를 헤맨다. 절대적인 힘에 대해 다룬다는 것은 스스로 풀 수 없는 모순을 만드는 것인데, 이를 설득력 있게 다루긴 사실 만만치 않은 일이다.
진 그레이가 보여주는 모습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히어로의 방황과 성장이라기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의 비행에 가깝다. 그저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한 명의 뮤턴트가 벌이는 사태쯤으로 그려내고 나니, 다른 모든 뮤턴트들의 사투가 우스꽝스럽게 되어 버렸다.
오리지널 트릴로지 3부작의 '엑스맨: 최후의 전쟁(2006)'에서 다룬 피닉스 포스를 다시 부활시킨다는 건 굉장히 야심찬 일이었다. 게다가 전작 '엑스맨: 아포칼립스'부터 이어진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야심에 그쳤고, 뒷맛이 찝찝한 마무리가 되고 말았다.
만약 이 영화가 진 그레이를 주인공으로 세운 스핀오프였다면 어땠을까. (물론 피닉스 포스는 그렇게 다뤄질 수 있는 소재가 아니지만) 좀 더 그녀의 심리에 집중할 수 있었을 테고, 그와 별개로 엑스맨 시리즈는 그 위용에 맞는 적절한 마무리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호평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그간 사랑받은 캐릭터들 각각이 적절한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크 피닉스'는 시리즈를 이끌었던 캐릭터들에게서 그동안의 업적에 맞는 커튼콜 기회를 앗아갔다.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는 물론이고, 미스틱의 퇴장은 어이없기까지 하다. 안 그래도 갈등과 봉합 패턴이 이제 슬슬 지겨워질 때가 되었는데, 오히려 급작스럽게 전개되는 플롯 탓에 더 힘없는 동어반복이 되어 버렸다.
'남과 다른 존재’로서의 뮤턴트들의 고뇌 역시 평면적이다. 시리즈의 엔딩이라고 하기엔 오히려 전작들보다 수준이 얕다. 이러려고 기존 6편의 서사를 시간 여행까지 해가며 뒤엎고 새로 쓴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가 해낸 그 어려운 일이 '아포칼립스'를 지나 '다크 피닉스'에 이르러 정말 무용한 일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