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시장을 소재로 한 일련의 영화들은 그 자체로 장르화되어 있다. 자본주의의 이면이나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기에, 주식 시장만 한 무대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런 영화들은 현재의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 그리고 이면의 욕망을 다루는 최전선에 서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금융 범죄를 흥미롭게 풀이해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다. 모르는 것을 이야기 안에서 이해시키려면 고도의 화술이 수반되어야 한다.
인간의 탐욕 역시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로 작동하는 세계에 대해 다루는 영화가 돈을 향한 탐욕을 절대악으로만 다룰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분법적인 선악 구도는 금융 소재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런 이야기를 다루려면 남다른 깊이의 성찰이 있어야 한다.
'돈'은 일단 야심으로 가득 찬 영화다. 제목부터 자신만만하다. '돈'처럼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욕망의 수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이를 제목으로 당당히 내걸 정도라면, 어떤 식으로든 돈과 이를 둘러싼 인간의 갈망을 제대로 다뤘어야 마땅하다. 그게 어렵다면 적어도 흉내 정도는 냈어야 맞다.
'돈'은 때깔만큼은 기존 '월 스트리트(1987)' 류의 영화를 제법 따라 한다. 여의도를 월스트리트로 만들기 위해 영화의 초반 리듬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기존의 허술한 한국 영화들에게서 볼 수 없는 리듬감이 꽤 느껴진다. 일종의 한국화도 꾀한다. 허술한 신입사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드라마 '미생'처럼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들의 공감을 유도할 수 있는 발판을 놓아둔다.
하지만 '월 스트리트'의 한국어 번안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했던 기대는 금세 무너지고 만다. 영화는 이야기에 점점 속도가 붙으면서부터 밑천을 드러내고 만다.
기본적으로 어설픈 금융 사기 수법으로 관객들에게 사기를 치려고 하는 것부터 문제다. 스프레드 매각 후 주워 담기 작전까지야 원리적으로는 가능하다 쳐도, 공장에 불을 질러 주가를 떨어뜨리고 공매도를 치는 방식의 수법은, 작가나 감독이 실제로 경제가 돌아가는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애초에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서 '금융', '경제' 같은 건 모두 오락영화를 만들기 위한 소재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런 비현실적이고 황당무계한 설정을 뻔뻔하게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무능력한데 부도덕하기까지 한 매력 없는 주인공도 이 영화의 결점 중 하나다. 상황과 환경에 휘둘리는 사회 초년생을 보여주면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은데, 주인공이 어리숙하다고 해서 관객들이 주인공 편에 서는 건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돈'의 주인공이 현대인의 욕망을 대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캐릭터 구축이 되지 않아 갈팡질팡하는 인물일 뿐이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무능한 주인공에게 이유 없이 떨어진 돈벼락이 노력 없이 성공하고 싶은 비뚤어진 욕망을 상징할 수는 있겠다)
한 마디로, '돈'은 돈이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다 어디서 본 장면들이 그럴듯한 편집으로 짜깁기 되어 넘어간다. 갑자기 돈 펑펑 쓰는 장면 좀 넣는다고 주인공이 욕망의 화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캐릭터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니 배우들은 상투적인 연기를 반복한다.
결국 돈 얘기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굉장한 통찰을 담고 있는 척 내레이션을 늘어놓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야망의 수직 이동을 보여준 뒤, 맨 앞과 맨 뒤는 수미상관으로 허접한 개똥철학을 배치했다. 돈을 탐하다 보면 욕망에 함몰되어 결국 자신을 망치게 된다는 뻔한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하기엔 그냥 돈 있으면 좋아하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맞지만 앞뒤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욕망하되, 생각보다 더 조심하고, 생각보다 더 선을 지킨다. 결과적으로 쉽게 휘둘리긴 하지만, 그 욕망은 생각보다 다면적이고 다층적이다.
영화 '돈'은 나름 열심히 만든 위조지폐다. 하지만 결과는 아주 조악한 기술로 만든 위조지폐가 되어버렸다. 분명 똑같이 복사한다고 했지만, 별 고민도 생각도 없이 컬러복사기로 A4용지에 프린트한 수준이다. 돈이라고 속아주려고 해도 도저히 속아줄 수가 없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