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짧은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seo May 13. 2020

프리즌 이스케이프 - 일상의 균열을 모아 감옥문을 열다

Escape From Pretoria, 2020


너무나 정직한 국내 제목 탓에(원제는 'Escape From Pretoria') 적당한 액션과 적당한 탈옥 트릭을 보여주는, 평이한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리즌 이스케이프'는 탈옥이라는 소재를 정공법으로 다룬 진지한 탈옥 영화였다.


'대탈주(1963)', '빠삐용(1973)', '미드나잇 익스프레스(1978)', '알카트라즈 탈출(1979)', '쇼생크 탈출(1994)' 등의 탈옥 장르 수작들과 비슷한 반열이라고 단언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궤를 같이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실로 오랜만에 접하는 진지한 탈옥 장르인지라,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한번 볼 만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프리즌 이스케이프'는 극 초반부터 끝까지 대부분의 내용을 탈옥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으로 채워 넣었다. 전체 플롯은 다소 단순하고 약하지만, 나무를 깎아 열쇠를 만들어 탈옥을 감행한다는 설정도 신선하고, 그 과정에서 긴장감도 계속 유지된다. 탈옥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향해 부단히 나아가는 인물들을 집요하게 좇으며, 절로 숨죽이게 될 만큼 긴장감 있는 장면들도 적절히 배치해두었다.


다만 관객을 집중하게 만드는 스릴러 장르로서의 미덕에 비해 이야기는 조금 동력이 부족한 편인데, 무엇보다 안타고니스트가 약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악랄한 교도소장과 간수들이 있지만, 그들이 엄포를 놓는 모습에 비해 주인공들이 받는 억압과 핍박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갇혀있던 인간이 탈옥을 갈망하게 만들기 위한 부연도 좀 더 필요했다. 하지만 '프리즌 이스케이프'의 주인공은 아예 감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탈옥을 꿈꾸는 설정으로 나온다. 주인공이 반(反) 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하다 수감된 정치범인 것에 비해 이야기 전체적으로 정치적인 뉘앙스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에 기댄다. 누구든 어떤 이유에서든 감옥에 갇히게 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필사적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하다 감옥에 들어왔는지, 그들이 왜 감옥에서 나가고 싶어 하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쩌면 영화는 누구에게나 탈출해야 할 감옥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일상 자체도 생각하기에 따라 감옥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 일상을 조금씩 변화시켜 균열을 만들고, 그 균열들을 모아 문 하나를 열 수 있는 나무 열쇠 하나를 얻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그 나무 열쇠를 모두 모으면 이곳을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감옥을 나가는 유일한 방법이자, 갇혀서도 체제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식이며, 나 자신을 이겨내는 단 하나의 길이기도 하다. 아래 주인공 팀 젠킨(다니엘 래드클리프 扮)의 독백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다. 


In prison, nothing stays the same, and yet nothing changes.
(교도소에선 변하지 않는 게 없지만 아직은 변한 게 없다)

The routine is the only thing that gives time any meaning.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건 일과다)

So you use it. You use everything.
(그걸 이용해야 한다. 모든 걸 이용해야 한다)

You find the cracks in their armour and you exploit them to the fullest extent day after day after day.
(그 일상의 갑옷에서 균열을 찾아내 그걸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And through those cracks, in the uneventful footnotes of prison life. victory is won.
(그 균열을 통해 특별한 일 없는 감옥 생활 속에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That's how you beat the fascists - one act of resistance after another.
(그것이 파시스트를 이기는 방법이며 또 하나의 저항 행동이다)



'프리즌 이스케이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실제 인물인 팀 젠킨은 정말 모양을 일일이 눈으로 보고 기억해 나무 열쇠를 만들고 그것으로 15개의 강철문을 열고 나와 자유를 찾은 인물이다. 이런 영화 같은 이야기가 실재한다는 것만으로, 자유를 향한 인간의 의지와 갈망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우리는 수많은 불안 속에서도 장애물이 나오면 새로운 방법을 찾는 존재라는 것. 늘 인간의 정신을 되새기게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탈옥 영화는 존재 가치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버즈 오브 프레이(2020) - 의미 없는 광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