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ds of Prey, 2020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졸작 안에서 분명 할리퀸은 홀로 빛나는 캐릭터였다. (물론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캐릭터는 데드샷이었지만) 사람들은 심각한 사연으로 포장된 악인보다 기존의 모든 질서를 전복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할리퀸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그 열광에 힘입어 할리퀸은 코믹스 히어로가 지배하는 이 시기에 당당하게 솔로 무비로 재탄생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참담했다. 물론 할리퀸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여전했고, 전반적으로 키치한 비주얼 역시 나쁘지 않았다. 말하자면 영화의 스타일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몇몇 장면에서는 팀 버튼의 스타일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버즈 오브 프레이'에 대한 전반적인 평이 나쁘지 않은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버즈 오브 프레이'가 더럽게 재미없는 영화라는 사실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개연성을 운운하기에 앞서 재미가 없다. 마치 DC의 데드풀이 되겠다는 것처럼 1인칭으로 늘어놓는 할리퀸의 입담은, 재미가 없다. 할리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캐릭터는 코믹북의 오리지널 캐릭터와 비교할 것도 없이, 매력이 없다. 그래서 할리퀸만 프레임 밖으로 나가면 영화가 바로 재미 없어진다.
가장 주된 원인은 수준 이하의 연출이다. 할리 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설정에 충실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내러티브 자체가 광인(狂人)이 늘어놓는 이야기처럼 뒤죽박죽이다. 영화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게, 미치려면 제대로 미쳤어야 했는데 '버즈 오브 프레이'는 그다지 황홀하지도 딱히 해방감이 들지도 않는다.
액션 장인 채드 스타헬스키를 투입했음에도 불구, 전체적인 액션 신 역시 수준 미달이다. 최대한 할리퀸만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나, 느릿느릿 합을 맞추는 액션을 풀샷으로 보여주는 과감한 연출 덕에 3류 프로레슬링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애초에 할리퀸의 인기는 그저 패션이었다. 훌륭한 이미지였을 뿐 솔로 무비가 나올 정도의 서사를 갖고 있지 않았다. 즉, 영화가 첫 번째로 고민해야 했던 것은 '어떤 이야기로 할리퀸이라는 캐릭터를 완성하느냐'였다. 조커와의 이별에 슬퍼하다, 자기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악당을 물리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우연히 다른 여성 히어로들과 힘을 합친다는 이야기 사이사이에는 도무지 연결고리가 없다.
그래서 이 영화의 의미 없는 광란 역시 패션에 지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화려하게 차려입기만 한 광대들의 놀음일 뿐 전혀 전복적이지 않다. 그런 척만 하고 있을 뿐 아무것도 뒤집지 못한다. 그럴듯한 스타일만 걸치고 있으면 정말 그렇다고 보는 게 이 시대의 존재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의할 수 없다.
고작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나는 게 무슨 대단한 여성 서사인 것처럼 두 시간 동안 허우적거리던 영화는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이 모인 버즈 오브 프레이가 대단한 연대라도 되는 양 포장하며 끝을 맺는다. PC(Political Correctness)까지 패션으로 걸칠 수 있는 세상이 씁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