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little, 2020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기대한 영화였다. 동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의 눈높이에 딱 맞는 이야기인데다 아이언맨이 동물과 대화하는 캐릭터로 나온다니, 아이와 함께 보기에 이보다 좋은 영화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닥터 두리틀'은, 아이에게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이도 저도 아닌 영화였다. 어린이용도, 어른용도 아닌 괴작(怪作)에 가까웠다.
이 모험담은 시종일관 요란하기만 할 뿐 듣고 싶진 않은 이야기다. 오히려 너무 산만해 동물과 이야기하는 미치광이가 전하는 뒤죽박죽 회고록을 듣는 느낌이다.
쉴 새 없이 대사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닥터 두리틀은 주인공 캐릭터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다. 그는 종종, 아니 자주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잭 스패로우처럼 굴고, 자신이 엉뚱한 동물 박사인지 모험가인지 마법사인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연기 역시 '아이언맨', '셜록 홈즈' 등의 시리즈에서 보여준 특유의 시니컬하고 엉뚱한 캐릭터로 일관하는데, 극과 조화되지 않는다는 인상이 강하다.
동물 캐릭터 역시 CG 기술 측면에서는 놀랍지만 각각의 매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은 각자 어떤 성취나 성장을 이뤄내는 것도, 주인공의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해내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엉뚱한 닥터 두리틀에 대한 충실한 리액션으로 극을 끌고 가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그저 진짜처럼 움직여서 신기한 가짜 동물들일 뿐이다.
최근 디즈니를 위시해 많은 스튜디오들이 과거의 캐릭터들을 최신 기술로 되살리는 데 여념이 없다. 하지만 영화가 기본을 해주지 못하면, 그 시각효과들은 한낱 기교에 지나지 않는다. 가짜 동물을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더 뛰어난 기술력이 아니라, 더 그럴듯한 이야기다. 공감할 만한 이야기만 있다면 아이는(아마 어른들도) 설령 사람이 동물 탈을 쓰고 연기했더라도 충분히 진짜 동물처럼 느끼고 감동을 받을 것이다. '닥터 두리틀'이 취한 방식은 한참 잘못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