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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Nov 25. 2020

사랑에 대한 모든 것 - 모든 것의 탄생에 대하여

The Theory of Everything, 2014


우주가 끊임없이 팽창 중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나의 삶도 유한하고, 내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유한한데, 우주는 무한하다니, 정말 멋진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낡고 병들 수밖에 없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시간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기 때문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무한을 꿈꾸기에, 우주가 끝없이 팽창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온 우주의 시공간에 비하면 하나의 점, 찰나의 순간에도 이르지 못하겠지만, 한 사람의 인생 역시 유한한 시간에 맞서 꿈꾸고 사랑하며 끊임없이 저항하는 과정이다.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The Theory of Everything)'은 지극히 유한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번역 제목은 이야기의 한 가지 측면에만 치우쳐 영화의 매력을 반감시키는데, 이 영화는 사랑뿐 아니라 인생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크게 호킹 박사의 이론이 정립되어 가는 과정과 그의 사랑 이야기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재밌는 것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우주물리학'과  '사랑'이라는 테마가 묘하게 어우러져 빛이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연결시키는 고리는 바로 '시간'이다. 


영화 초반부의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여느 아름다운 연인들의 이야기가 그렇듯 스티븐과 제인은 첫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등식을 찾는 과학도는 우주와 시간의 시작을 찾을 단초를 발견해낸다. 스티븐이 파티에서 불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별의 탄생과 소멸을 보듯, 그들의 사랑은 마치 별처럼 빛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스티븐이 아프기 시작한다. 우주의 시간, 그 시작을 발견함과 동시에 2년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다. 야속하게도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다.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인간의 시간은 짧다 못해 찰나에도 이르지 못하는 시간인데, 그는 이마저도 혼자서는 제대로 다 살지 못할 운명이다. 


그 운명 앞에 제인은 엄청난 용기를 내어 쉽지 않은 결심을 한다. 마치 우주 만물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등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2년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연인을 헌신적으로 보살핀다. 그녀의 희생에 힘입어 스티븐은 시간의 역사를 하나하나 풀어내며 누구도 해내지 못한 것들을 해낸다. 


하지만, 동시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자기 손으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혼자 옷을 입지 못해 팔과 머리가 스웨터에 끼인 채로 보게 된 벽난로 불빛에서 우주의 시간을 풀어낼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그는 집 안 계단조차 기어 오르기 힘겨워진다. 그의 이론이 공고해질수록 그의 병세도 악화되고 제인은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결국 그토록 헌신적이었던 사랑도 시간과 현실 앞에 완전치 않은 것이 된다. 그 무엇도 불변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의 매력은 사랑이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보다, 사랑의 빛이 사그라드는 순간들에 있다. 어쩌면 한정된 시간이라고 생각했기에 선택할 수 있었던 헌신은 예상치 못했던 시간의 장난 앞에 무력해진다. 낡고 병드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없다. 스티븐의 병세가 악화될 때마다 제인은 그만큼 좌절해야 하고, 견뎌내야 한다. 온전했던 시간을 함께 했기에 그 상실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음성변환기에 왜 영국 발음이 없냐는 제인의 물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우주의 시간 만큼이나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사랑이 그렇게 변한다. 



그들은 사랑해서,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와 함께 하고,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했지만, 서로와 이별한다. 어찌 보면 사랑에는 결과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최선을 다했다, 혹은 다하고 있다는 과정이 중요할 뿐. 인생이 하나의 긴 실험이라면, 스티븐과 제인이 한 실험은 절대 실패가 아니다. 엄청난 좌절과 절망이 찾아올 것이란 걸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했다는 그 자체, 그것이 곧 삶이기 때문이다. 실패와 관계 없이, 혹은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게 있던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하고 우아한 등식, 'The Theory of Everything'을 찾는 과정이 우리의 삶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답이 아니다. 정답인지 아닌지는 더더욱 중요치 않다. 우리가 그 지난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 해답을 찾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며, 서로를 사랑했다는 것, 그게 바로 우리의 시간을 설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등식이다. 



영화는 스티븐과 제인의 찬란했던 로맨스 장면을 뒤로 감아 그들을 처음 만난 곳으로 데려다 놓고 끝을 맺는다. 호킹 박사가 착안한 바에 따르면,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으니 반대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우주는 점점 작아질 것이고, 시간을 계속 돌려 태초로 가면 우주는 완전히 작아져 시공간의 특이점에 이른다. 바로 우주와 시간의 탄생이다. 말하자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남녀가 만나 서로 호감을 느끼는,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순간이 마치 우주의 탄생처럼 경이로운 것임을 일깨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가 '인터스텔라'와 같은 본격적인 SF보다 더 큰 스케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화면에는 - 엔딩 크레딧을 제외하면 - 우주 장면 한번 나오지 않지만 말이다. 



* 2015년 1월 작성 / 2020년 11월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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