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le Frontier, 2019
'트리플 프런티어'의 외형은 영락없는 B급 밀리터리 액션이다. 벤 애플렉, 오스카 아이삭, 페드로 파스칼, 찰리 허냄 등 쟁쟁한 배우들이 포진한 캐스팅이 의아할 정도다. 하이스트 무비의 얼개에 밀리터리 액션을 결합해 대단한 이야기를 펼쳐놓을 것 같지만, 초반 전개는 오히려 느슨하기까지 하다.
캐릭터들의 개성은 좀 부족해도 각자의 사연은 충분하다. 평생 국가를 위해 희생했으나 남은 건 가난뿐인 이들이 돈을 목적으로 작전에 뛰어든다. 하지만, '트리플 프런티어'는 '전직 특수부대원들이 마약 카르텔의 돈을 훔치기 위해 다시 뭉친다'는 시놉시스에서 기대할 만한 부분을 전혀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이들의 의기투합은 어딘지 모르게 무기력해 보이고, 작전은 그리 영리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하이스트 무비에서 가장 기대하는 대표적인 시퀀스들을 대충 넘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밀리터리 액션에 대한 기대치를 채워주는 것도 아니다. 마약왕의 자택에 침입해 펼치는 작전은 꽤 사실적이지만, 단순하고 평범하며 무엇보다 이렇다 할 긴장감이 들지 않는다. 그들의 강도질은 어딘지 모르게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별문제 없이 흘러간다. 영화적 재미를 주는 장애물 역시 거의 없다. 한마디로, 한탕을 노리는 주인공들이 벌이는 범죄 행위는 그들이 나라를 위해 수없이 치렀을 대테러 작전과 별로 다르지 않게 그려진다.
영화가 전혀 다른 색을 내기 시작하는 것은 주인공들이 돈을 발견하면서부터다. 마약왕이 집 자체를 금고 삼아 벽 전체에 돈을 숨겼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그들은 작전에 맞춰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군인'이 아니라, 물욕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인간'이 된다.
그들은 성실하게 군인 생활을 마쳤음에도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도 못했고, 극한의 환경에서 상처받은 영혼은 이전으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다 다시는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 이들은 역설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에 손을 대면서 생기를 되찾는다. 의무와 헌신에서 답을 찾지 못한 군인들이 폭력과 금기에서 미래를 찾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껏 채워진 적도, 인정받은 적도 없었던 개인의 욕망과 마주한다.
이 지점에 이르면 장르를 무시한 것처럼 보였던 전반부의 느슨함도 의도적인 것이 된다. 처음부터 영화의 방점은 돈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들고 도망가는 여정에 찍혀 있었다. 돈은 최종 목표가 아니라 그들의 욕망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돈을 들고 정글을 뚫고 가야 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은유가 된다. 훔치기는 쉬웠지만, 그걸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얘기였다. 하이스트 장르처럼 보였던 영화가 길리슈트 같은 위장을 벗고 생존 영화로 전환되면서, 들끓던 욕망은 말 그대로 무거운 짐이 된다. 그들이 훔친 돈은 이제 액수가 아니라 무게가 되어 다가온다.
특히 벤 에플렉이 맡은 인물인 톰은 이러한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침착하게 작전을 이끌었던 그는 벽 속의 돈을 본 순간부터 변하기 시작한다. 그 역시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돈이 필요했고, 그 액수의 돈이 있다면 할 수 있는 일들을 알기에, 한번 불붙은 욕망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게 어느 순간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다. 헬기 무게 때문에 돈을 버려야 할 때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민간인을 먼저 쏜 순간부터였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IRONHEAD : Which one of you shot first?
REDFLY(Tom) : I don't know.
IRONHEAD : We need to watch ourselves here.
REDFLY(Tom) : Yeah, we do. What the hell does that mean?
POPE : Nothing. It just means we gotta watch ourselves, that's all.
REDFLY(Tom) : Roger that.
그들은 마을에서의 소동으로 죽은 사람들에 대한 값을 치르고 나귀와 함께 정글 속을 걷는다. 그들이 카르텔의 추격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인지, 자신의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인지 모를 때쯤 밥 딜런의 'Masters of war'가 흐른다. 다소 상투적이지만 적절한 선곡이다. 그들이야말로 'Masters of war'였고, 동시에 'Masters of war'에 의해 삶을 희생 당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욕망덩어리 그 자체인 전쟁에서 철저히 도구로 이용당한 그들은, 그것과 다르지 않은 자신의 욕망과 마주한다. 그 치열한 전쟁에서 그들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였고,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에 놓인다.
돈을 짊어지고 가기 위해 그들의 발걸음은 자꾸 늦어진다. 욕심, 헛된 희망, 과거의 대가들을 지고 가는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버려야 할 것들을 차마 버리지 못해 계속 끌고 갈 운명이다.
결국 이들은 계속 돈을 버리게 된다. 헬기에서는 무게 때문에, 마을에서 목숨값으로, 점점 돈이 줄어든다. 돈 가방이 당나귀와 함께 절벽으로 추락하는 장면은 허무하기까지 하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돈을 태워 몸을 덥히며 장난스럽게 웃는 장면에 이르면, 영화 속 인물이나 관객 모두 이런 생각에 이른다.
'왜 여기까지 이 무거운 종이 더미를 안고 온 거지?'
도저히 더는 돈을 들고 배에 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결국 아무도 찾지 못할 절벽 틈 사이로 돈 가방을 던진다. 이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욕망과 과거의 과오들을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숨겨두려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윌리엄(찰리 허냄 扮)이 포프(오스카 아이삭 扮)에게 이곳의 좌표를 건네지만, 포프가 실제로 이곳을 찾아갔을지, 돈 가방을 되찾았을진 알 수 없다. 그것은 또 다른 선택의 문제니까.
'트리플 프런티어'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과 파라과이가 만나는 접경 지역을 일컫는다. 이곳은 밀수, 마약 밀매 및 돈세탁이 횡행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곳을 헤매며 영화 속 인물들은 또 다른 접경 위에 선다. 그곳은 군인으로서의 과거, 범죄자이자 도망자로서의 현실, 그리고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미래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의 들끓는 욕망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전혀 녹록지 않다. 그들을 반기지 않았던 사회는, 일확천금을 얻고도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쫓겨 다녀야만 하는 현재의 실제적 위협으로 치환된다. 그들이 정글을 지나며 과거의 자신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다.
'허트 로커', '제로 다크 서티', '디트로이트' 등에서 현실감 넘치는 탁월한 이야기를 선보였던 마크 볼이 각본을, '마진 콜', '모스트 바이어런트', '올 이스 로스트' 등에서 미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줬던 J.C.챈더가 연출을 맡았다고 하기에, '트리플 프런티어'는 다소 평이한 편이다.
의도는 분명하나 주제에 대한 깊이 측면에서는 약간 겉핥기식이다. 긴박한 상황에 몰아넣었음에도 인물들은 그다지 절박해 보이지 않는다. 이 여정은 좀 더 사색적이거나, 아니면 좀 더 극적이어야 했다. (물론 화끈한 밀리터리 액션이나 하이스트 무비 특유의 짜릿함을 기대했을 관객들에겐 매우 의외의 전개였을 것이다) 플랫폼 탓이 크겠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특유의 소품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