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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Nov 27. 2018

창궐(2018) - 현란한 칼질로 허공만 벤다

※ 결말을 포함해 영화 내용의 상당 부분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의도도 나쁘지만, 실력은 더 나쁘다. '공조'로 약 78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김성훈 감독은 장르 간 부조화, 개연성 부재 등 전작에서 보여준 패착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럴듯해 보이는 장르를 가져와 적당히 섞어 내놓으면 될 거라는 얄팍한 의도, 그마저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실력 모두 문제다.



'창궐'의 초반 시퀀스는 전부 톤이 다르다. 조선 배경 사극의 흔한 권력 암투와 좀비 호러도 서로 잘 붙지 않는데, 갑자기 강림대군(현빈 扮)은 이죽거리는 캐릭터로 나타나 웃음을 주려 한다. 


플롯의 전개 또한 어설프다.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해 시간 순서에 혼란을 주기도 하고, 장면 간 연결이 헐거워 긴장감과 이야기의 동력이 반감된다.


가장 큰 문제는 갈등을 전개하는 과정이다. 인물들을 이끄는 동인(動因)이 마땅치 않아 행동 하나하나에도 개연성이 없다. 특히 강림대군의 동기가 제일 문제다. 세상만사에  냉소적인 주인공이 야귀 떼를 헤치고 가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다. 최소한의 동기마저(형의 유지를 받들어 형수인 경빈을 청나라로 피신시키려고 한다) 늦게 밝혀져 어색하기만 하다. 


눈앞의 상황에 대한 반응 역시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다. 강림대군은 쑥대밭이 된 포구 마을에서도 태연하고, 살수가 나타났는데도 이후 행보에서 배후를 알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다 할 전사(前事)나 설득력 있는 서브플롯을 부여받지 못한 박을용 무리는 각자 다른 무기를 든 어벤져스처럼 등장하지만 이후에는 별 역할이 없다. 별다른 계기도 없이 각성해 맹목적으로 형수 경빈을 지키는 강림대군은 대놓고 조자룡에라도 빙의한 듯한 모습이다.



'창궐'의 이야기는 '강림대군 군주 되기', '김자준(장동건 扮) 왕 되기'라는 두 축으로 흘러가는데, 각 이야기가 직진만 할 뿐 제때 만나지 못한다. 철부지 왕자가 야귀 떼에 시름하는 백성들을 만나 군주로 거듭나는 이야기와 왕위 찬탈의 야욕을 보이는 간신의 이야기가 아예 별개로 흘러간다. 


강림대군은 김자준의 음모를 늦게서야 깨닫지만 이를 막기 위해 이렇다 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 김자준은 강림대군이 역모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살수 한 번 보낸 것 외에는 별다른 견제를 하지 않는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서사의 축을 맡은 두 인물이 서로 소 닭 보듯 하고 있는 것이다. 


야귀를 출몰시키는 공간 역시 둘로 나뉜다. 제물포의  야귀와 김자준이 궁으로 유입시킨 야귀는 강을 기점으로 정확히 두 무리로 갈라져 각각 백성의 공포와 궁의 혼란을 유발한다. 이런 설정은 도식에 맞춰 이야기를 전개시키기엔 알맞을지 몰라도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는 걸림돌이 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야귀에 쫓기는 것도, 야귀에 의해 고립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행보를 거듭한다. 처음부터 가망이 없어 보였던 '창궐'의 서사는, 강림대군이 궁에 가기 위해 강을 건너는 순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제물포의 백성들은 후반부 내내 언급조차 되지 않다가 마지막 장면이 되어서야 구출된다) 



사실 제물포에서는 현실인 야귀가 궁에서는 역도들이 퍼뜨리는 흉흉한 소문이라면, 이 대립 구도만으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악인이 자기 힘으로 막지도 못할 야귀를 궁으로 들이며, 영화 스스로 이 구도를 파괴하고 만다. 덕분에 이야기는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인물들은 일관성을 잃었다. 


청나라를 받들던 김자준은 이렇다 할 설명 없이 사신이 온 자리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자신의 조선은 청의 속국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앞뒤가 안 맞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야귀는 소문일 뿐이라고 일축하던 김자준이 야귀가 된 왕을 죽이고 나서는 이게 야귀의 실체라고 외친다. 


김자준은 이른 시점에 자멸한 후 '자의로 움직이는 야귀'가 되기까지 한다. 설정상 무리수까지 두어 가며 악인을 '야귀의 왕'으로 만든 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주인공이 맞서야 할 대상을 편의에 의해 통합하는 한편, 목석같은 야귀만 베다가 끝날 액션에 최종 보스를 세우는 꼼수를 둔다. 


추측건대 영화는 각 계층이 서로를 야귀로 보는 상황을 통해 누가 진짜 야귀인지 묻는 은유를 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설픈 은유 덕에 '창궐'은 중심축이 없는 이야기가 됐다. 이야기의 동력이 부족해질 때마다 핵심 소재인 야귀를 반복해 출몰시킬 뿐이다



'창궐'의 긴장감 부족은 이야기의 문제도 있지만, 좀비를 잘못 활용한 탓도 있다. '창궐'의 야귀는 관객에게 조금의 공포감도 주지 못한다. 나쁘지 않은 액션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별 쾌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야귀를 그저 상황에 이용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귀 디자인에 일관성이 없는 부분도 문제다) 그들은 그저 이야기의 길목에 서서 현빈의 칼을 기다리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시간과 공력을 퍼부었음에도 후반부의 액션 시퀀스가 지루하기만 한 이유다.


의문의 존재도, 공포의 대상도 아닌 야귀의 자리에는 뭘 갖다 놔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온다. 괴물, 돌연변이, 야수, 흡혈귀, 심지어 외계인을 소재로 넣었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소재가 곧 장르가 아님을 망각한 결과다. (아무리 가져다 쓰는 거라지만, 박 종사관의 대사로 야귀의 특성을 줄줄 읊는 장면들은 불성실하기까지 하다)


결국 '창궐'은 현란한 칼질로 허공만 벤다. 악인, 야귀 중 누구를 베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며 열심히 칼만 휘두른다. 어차피 둘 모두 악인이나 야귀나 예측불허에 멍청하긴 마찬가지여서 누구를 베나 마찬가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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