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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Dec 01. 2018

아웃로 킹 - 왕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

Outlaw King, 2018


멜 깁슨 감독과 주연을 맡은 1995년작 '브레이브 하트'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할 정도로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지만, 역사 고증에 있어서는 재앙과도 같은 영화였다. 윌리엄 월레스가 스코틀랜드 독립 영웅인 것은 맞지만, 그 외 특정 인물에 대한 묘사, 인물 간 관계, 역사적 사실을 비롯해 전투 방식이나 복식 등에서 실제와 차이가 컸다. 이 과정에서 제일 크게 희생된 인물이 바로 '아웃로 킹'의 주인공, 로버트 더 브루스다.

그는 에드워드 1세부터 3세까지 3세대에 걸쳐 잉글랜드 왕과 맞섰으며,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계승한 실질적인 독립 영웅이다. '아웃로 킹'은 스스로 왕위에 올랐지만 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전장의 진창 위를 헤맨 한 인물을 조명한다. 누군가에게는 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반역자이자 무법자(Outlaw)인 한 인간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은 곧 스코틀랜드의 독립 정신으로 연결된다.



‘아웃로 킹’에는 첫 롱테이크 신부터 시작해 후반부의 베넉번 전투 시퀀스까지 눈을 사로잡는 장면들이 여럿 담겨있다. 특히 첫 롱테이크 신이 훌륭하다. 흔들리는 촛불 주위를 돌던 카메라가 로버트를 비롯한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에드워드 1세에게 항복하는 모습을 보여준 후, 잉글랜드의 압도적인 힘을 상징하는 투석기를 목격하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이는 영화 내내 이어지는 로버트의 불안을 지탱하는 공포가 된다.


'아웃로 킹'의 로버트는 우리가 흔히 알던 왕이 아니다. 그는 비현실적으로 용맹하거나 강건하지 않다. 여느 필부와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느낀다. 윌리엄 월레스의 끔찍한 죽음은 그를 각성하게 했지만, 그는 여전히 식솔과 형제들을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잉글랜드군의 기습으로 군사의 대부분을 잃고 스코틀랜드의 다른 귀족들의 외면을 받으며 도망 다니는 그의 모습은 한없이 초라하기만 하다.



'Outlaw King'은 에드워드 1세의 시각에서 본 로버트이기도 하지만, 로버트 스스로 취한 정체성이기도 하다. 군사 규모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도망자였던 로버트는 변장, 기습, 청야전술 등 기사도에 어긋난 방식으로 잉글랜드에 맞선다. 딸과 아내마저 포로로 잡힌 그에게 중요한 건 스코틀랜드의 독립이나 왕위 계승 같은 명분이 아니라, 그의 말처럼 '단지 이기고 싶었을 뿐'인 인간의 의지였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싸워만 준다면 국가든 가족이든 이유 따위는 상관없다'고 외치는 그의 호소는 거룩한 가치 이전에 존재하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일깨운다. ('브레이브 하트'에서 'Freedom'을 외치는 멜 깁슨처럼 뜨겁진 않아도 훨씬 현실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로버트 1세는 죽기 1년 전 에드워드 3세로부터 독립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인정과 관계없이 그는 계속 왕이었으며, 왕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었다. '아웃로 킹'은 영웅 서사가 아니라 그 인간을 다룬 투쟁기이다. 다소 밋밋한 이야기, 여전히 전형적인 선악 구도가 한계이지만, 역사전쟁물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즐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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