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짧은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seo Dec 10. 2018

업그레이드 - 식상한 소재를 업그레이드하는 힘

Upgrade, 2018


'쏘우' 시리즈를 만든 리 워넬이 호러 장르에서 보여줬던 자신의 장기를 SF 장르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저예산으로 하나의 아이디어를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업그레이드'는 '쏘우' 시리즈와 궤를 같이한다. ‘업그레이드’는 굳이 거창한 세계관을 창조하거나 미래 사회의 비주얼을 표현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 영화다. 한눈팔지 않고 딱 이야기에 필요한 만큼의 배경만 설정해 관객으로 하여금 이야기에 집중하게 한다. 결국 그 이야기에 메시지까지 다 있으니 매우 영리한 선택인 셈이다.

‘업그레이드’는 괴한의 습격을 받아 아내를 잃고 사지가 마비된 주인공이 인공지능 칩을 이식받아 복수를 펼치는 이야기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 기술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주인공이 평생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고 살아야 되는 아이러니를 통해 인간과 기계의 경계 문제를 다룬다. 하지만 심각한 주제의식에 천착하기보다는, 잘 꿰어낸 이야기에 흥미로운 액션 시퀀스를 얹어 그럴듯한 SF 느와르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인간과 기계의 협력 수사를 통해 마치 버디무비를 보는 듯한 재미를 주기도 하고, 스테디캠을 창의적으로 활용해 전신 마비 환자가 마치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이는 독특한 액션을 선보이기도 한다. 

블룸하우스의 작품답게 수술, 사체 부검을 비롯, 액션 시퀀스 등에서 인체 상해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거리낌이 없다. 덕분에 디스토피아를 표현하는 다른 설정 없이도 어두운 배경의 SF 장르가 잘 표현되었다. 그로테스크한 표현이 강하진 않지만, 예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들을 보는 느낌도 조금 난다. 몸에 인공지능 칩을 이식한 남자의 이야기는 크로넨버그의 신체 변형 표현을 21세기식으로 변주한 것 같기도 하다. (크로넨버그의 필모그래피도 B급 호러로 시작됐으니, 리 워넬의 후속 행보를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사실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라는 소재는 로보캅 등 다양한 이야기로 변주되어온 것이다. 하지만 ‘업그레이드’는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업그레이드하는 힘을 지녔다. 인공지능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는 영화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다소 예측 가능한 결말로 향하지만, 다양한 맥거핀을 깔아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었다. 메시지도 21세기에 맞게 업그레이드했다. 기계가 인간을 잠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은 이제 막연한 공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과연 기술은 인간을 구원해줄 수 있을까. 기술이 인간의 영혼까지 업그레이드해줄 수 있을까. 기술이 인간의 절망까지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물론 ‘쏘우’가 그랬듯 영화의 결말은 결코 관객의 안도와 낙관을 허락하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웃로 킹 - 왕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