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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Dec 08. 2018

국가부도의 날 -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다루는 방식


'국가부도의 날'은 재밌는 영화가 아니다. 불과 20년 전의 일을 다뤘기 때문에 관객은 영화의 결말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시현 팀장(김혜수 扮)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IMF와의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이야기에 천재지변이나 허구의 사건이 돌발적으로 벌어지지 않는 한 윤정학(유아인 扮)은 돈을 벌고 갑수(허준호 扮)는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각 인물의 이야기가 기막히게 흥미로운 것도 아니다. 인물들은 각자의 전형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다. 그들에게는 외환 위기로 촉발된 국가 부도 사태 외에 다른 갈등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사실 온 나라를 뒤흔들린 시점에 다른 갈등이 개입할 여지가 얼마나 있었겠냐마는, 인물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위기에만 충실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전체 이야기는 밋밋해졌다. 세 가닥의 단순한 이야기는 마치 미완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국가부도의 날'은 불편한 영화에 가깝다. 관객들은 몇몇 장면들에서 자신의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그 시대의 풍파를 직격으로 맞은 이들에게는 추억이 될 수 없는 기억을 상기시킨다. 불만족스러운 현실에 사는 이들에게는 그 이유를, 만족스러운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몰랐던 사실을 일깨운다.  

 


현대사를 되짚는 영화가 대체로 그러하듯 '국가부도의 날'은 과거의 뉴스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현실성을 더하는 동시에, 알려진 사실 이면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의도다. TV와 라디오에서 쏟아지는 뉴스는 사람들의 일상과 섞인다. OECD 가입을 알리는 소식, 일각의 경제 침체 우려를 일축하는 뉴스들이 오히려 반대로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관객들이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 뉴스들은 전조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위기를 감지한 사람들과 무지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국가부도의 날'의 이야기는 크게 세 개의 갈래로 진행된다. 이들은 각각 당시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대표한다. 위기를 좀 먼저 알았던 이들은 속수무책이다. 정권의 치적(국민소득 1만 달러, OECD 가입)을 유지하기 위해 환율을 무리하게 방어하려다 외환보유고를 까먹은 정책당국은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경제 위기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금융업 종사자들은 둔감한 다수와 민감한 개인으로 나뉜다. 민감한 개인은 재빨리 투자자를 모아 달러 사재기, 풋옵션, 폭락한 부동산 사들이기로 부와 권력을 잡는다. 그리고 서민은 가장 늦게 위기를 깨닫고 가장 먼저 무너진다. 먼 얘기 같았던 국가 경제 얘기가 내 호주머니 사정으로 직결되고 나서야, 정부와 기업이 보여준 장밋빛 미래가 모두 거짓이었음을 깨닫는다.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중요한 장면은 초반부의 교차편집 시퀀스이다. (등장인물들 사이에 특별한 접점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보면 영화 전체가 교차편집된 당시의 현실이라 볼 수도 있다) 눈앞으로 다가온 초유의 국가 위기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릴 것인지 갑론을박하는 경제 수뇌부, 미도파 백화점으로부터 어음을 받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 망설이는 갑수, 대기업의 무리한 차입 경영 등 빚을 담보로 빚을 내어 쌓아온 모래성을 지적하는 윤정학을 빠르게 교차편집하며, 이 모든 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초반부터 감정을 폭발시키며 격동의 시간을 조명한다. 


이후의 전개는 모든 인간 군상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발버둥 치는 이야기일 뿐이다. 누구도 이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수 없다. 한 팀장은 위기를 은폐하거나 축소하고 서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기득권층에 맞서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이다. IMF와의 굴욕적인 협상에 분을 이기지 못한 한 팀장은 서류와 물건을 집어던지며 분노하지만, 시계가 깨진다고 시간까지 멈추는 것은 아니다. 갑수는 부도 어음 때문에 백방으로 방법을 찾아보지만 속수무책이다. 서민들은 일거리와 일자리를 잃고, 집을 헐값에 내놓는다. 빚을 내고 감옥에 갇히고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거나 이제 자기 것이 아닌 집에서 목을 멘다. 위기를 이용해 돈을 버는 윤정학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역시 세상이 하는 말에 속지 않겠다며 아득바득 발버둥 칠 뿐이다. 

  


'국가부도의 날'은 단순히 1997년 외환 위기 당시를 회상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가 작금의 모습을 하게 된 구조적인 원인을 짚어낸다. 우리 모두는 여전히 IMF 당시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영화의 결말은 뻔하디뻔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가 그 뻔한 결말 안에 살고 있는 셈이다. 영화 속의 수많은 갈등은 더 이상 스크린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양극화, 청년실업, 하도급, 비정규직, 자살률 등으로 이름만 바꿨을 뿐, 갈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국가부도의 날'은 경제 스릴러의 동력 이전에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누군가는 지난 세월을 반추할 것이고, 누군가는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를 보게 될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를 지배한 시대적 공포는 여전히 유효하다. 누군가는 여전히 '금 모으기' 이데올로기 아래 살고 있고, 누군가는 그때나 지금이나 약자 위에 군림하고 있을 것이다.  


영화는 끝나지 않고 되풀이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국가라는 것이 사실 얼마나 허약한가. 이를 지배하는 자들은 얼마나 비열한가. 그렇다면 국가는 과연 국민이 의지할 만한 울타리라 할 수 있는가. 선동적인 질문을 던지며 현실에 안주하는 대중에게 본원적인 공포심을 촉발시킨다. 위기가 지나간 후 갑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윽박지르는 사장이 되어 있다. 갑수의 아들은 전 재정국 차관이 운영하는 투자회사에서 입사 면접을 기다리고 있다. 왜곡된 노동시장에서 버티고 버틴 결과, 갑수는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덕 공장주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번 돈으로 교육한 아들이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노예가 되며 악행의 먹이사슬이 완성된다.  

 


'국가부도의 날'은 약자를 위로하는 영화일까? 약자에 대하는 영화의 시선은 결코 따뜻하지 않다. 배우들이 연신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만, 영화가 서민을 위해, 관객을 위해 대신 울어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라고 감정적으로 종용한다. '국가부도의 날'의 포스터를 보면, 주요 인물들의 시선이 대부분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무언가 발표하기 위해 취재진을 맞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가오는 위기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서민을 대표하는 갑수는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밥벌이와 살림살이에 대해 묻고 있는 것만 같다.  


감정적인 고발에 비해 영화가 내놓는 답은 빈약하고 부실하다.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이념적 편향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생활에 직결되는 이야기를 감정적으로만 소비하는 것이 문제다.  


영화는 몰랐기 때문에 당한 거라며 알 권리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관심과 의심을 촉구한다. 결국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라는 게 영화의 핵심 메시지인 셈이다. 하지만 영화가 잔뜩 부추긴 감정의 방향과 정도를 생각했을 때 이런 결론은 부당하다. 국민들이 알아야 두 번 당하지 않을 거라는 메시지는 언뜻 국민들이 무지해서 당했다는 말처럼 들린다. 영화가 손쉽게 내린 결론은 자가당착이 된다. 이렇게 되면, 약자의 삶은 땔감이 되어 감정에 불을 댕기는 데만 활용될 뿐이다.  



그렇다면, '국가부도의 날'은 대중을 선동하는 영화일까? 당시 경제 상황과 이후 사회 흐름에 대한 해석이야 개개인 모두 다르겠지만, '국가부도의 날'을 선동적인 영화라고 보긴 어렵다. 개인의 정치 성향이나 가치관에 따라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을 다르게 내릴 수는 있다. 복잡한 현실을 선악 구도로 무 자르듯 나눈 영화의 사회관에 대해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과 다른 점을 짚어내며 영화가 우매한 대중을 호도한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건, 핵심에서 한참 벗어난 지적이다.  


다음은 주요 종합지와 경제지에 실린 '국가부도의 날' 지적 기사들이다.  


[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IMF 탓 망했다?···'국가 부도의 날'은 팩트 파산의 날 

http://naver.me/F0k3yAxY


[팩트체크] 영화 '국가 부도의 날', 한은이 IMF행 막았다고? 

http://naver.me/GorcsoBD


'국가부도의 날'이 불러온 21년 전 '그날' 논쟁 

http://naver.me/IDY6XQir


개봉 후 관객이 좀 들자 무슨 위기감의 발로인지 이런 기사들이 우르르 쏟아지고 있는데(심지어 비슷한 점을 지적하는 커뮤니티 글도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몇몇 기사들은 저의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특히 중앙일보의 기사는 전체 내용이 뭔 말을 하려는 것인지 정리가 안 되어 조악할 뿐만 아니라, 의도 역시 다분히 저열하다. '얄팍한 이념적 편향성으로 관객을 선동한다’며 영화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지만, 정작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지적하는 데 영화 비평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건 자신임을 모르는 모양이다. 매체가 정부와 각을 세울 수는 있는 것이지만, 무슨 괴벨스, 아이젠슈타인, 들뢰즈까지 들먹이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국가부도의 날'은 그저 감정적인 영화일 뿐이다. 설파하는 내용 역시 무조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건 영화의 완성도 탓이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현실이 훨씬 복잡다단하다는 것은 관객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이 정도로 대중이 선동 당할 것이라 호들갑을 떠는 것은, 오히려 대중을 바보로 보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이념에 빠진 이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이념으로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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