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계는 어디 까지 일까
Prologue : 여행에서 가장 큰 문제와 시련을 안겨주는 것은 화장실이다. 난 그리 깨끗한 편은 아닌데, 땅에 떨어져도 3초 안에 잽싸게 잘 먹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난 어릴 적부터 밖에서 싸질 않았다. 화장실이 무서웠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학교에서 싸본 적이 없다. 참거나, 아니면 수업 도중 뛰쳐나와 버스를 타고 집에서 쌌다. 그냥 몇 분 앉아서 일보면 되는데, 그러면 되는데 난 마치 폐쇄공포증에 걸린 사람처럼 그 공간에 들어가기 조차 싫었다.
세계여행은 내게 새로운 뒷간을 소개해주었다. 아마존 풀밭과의 물아일체부터 인도네시아 손으로 씻는 경험까지, 새롭고 강제적인 환경이 내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을까?
똑똑똑, 오늘도 새로운 인도네시아 친구 집에 도착을 했다. 수마트라섬 벵꿀루라는 작은 도시에 소박한 가정집 이다. 18시간의 버스를 타고 왔지만, 자연적인 피곤함보다 자연적인 생리현상이 더 참기 힘들었다. 친구에게 인사를 하고 바로 화장실의 위치를 물었다. 문을 열자 이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앉아쏴에 익숙한 나는 쪼그려쏴에 좌절했다. 하지만, 지금 내게 유일한 옵션이기도 했다. 앉았다. 휴, 다행이다. 어려운 고비는 일단 넘겼다. 다리가 저려오며 주변을 둘러봤다. 물 내리는 곳이 없다. 눈 앞에 타일보다 더 퍼런 바구니가 들어온다. 도구를 사용하여 물을 수동으로 붓기 시작했다. 수우우욱 변기 물이 내려가며, 미소를 지었다.
시골 할머니댁 아랫목에 누워, 어머니와 할머니가 추억을 쏟아내듯 말했던 '70년대' 그 수세식(?)인지 푸세식(?)인지 하던 얘기가 문뜩 뇌리를 스쳐간다. 2019년도에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런 잡념은 마지막 문제를 마주하며 싹 사라졌다. 어떻게 씻을 것인가. 하얀색 휴지가 보이지 않아, 보이지 않아......
두 가지의 옵션이 있었다. 1. 총총총 기어가며 친구에게 휴지를 달라고 한다. 2. 손으로 씻는다. 아직 만난 지 한시간 밖에 되지 않는 친구에게 어정쩡한 자세로 조우하기보단 난 스스로 해결하기로 선택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난 오른손잡이니깐 오른손에 물을 묻히고(오른손으로 하는게 편하니깐) 내 밑을 후려쳤다. 그렇게 첫 손질이 끝나면 두번째부터는 의식의 흐름대로 반복하면 된다. 어?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 막, 손에 닿는 느낌이 이상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엄청 두려웠는데, 막상 손으로 씻어보니 괜찮(?)았다. 근데 이게 웬걸, 또다시 내게 휴지가 필요했다. 깨끗해졌는데 휴지가 필요했다. 드라이는 어떻게 할꺼야!!!! 그렇다 휴지를 쓰는 것은 일거양득이었다. 세척과 건조. 어떻게 말릴까. 1. 총총총 기어가며..친구에게..아 이건 아니야. 2.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3. 그냥 입는다.
분명, 나 말고도 수많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하는 방식일테니, 그럼 그 사람들도 그냥 입었다는 건데, 나도 한 번 입어보자, 하는 심정으로 속옷과 바지를 위로 추켜들었다. 아, 찝찝해. 바지도 나도 축축하다. 난 얼른 비누로 양손을 벅벅 씻고, 화장실의 차가운 문고리를 열었다. 친구가 말한다. "밥 먹어!" 아 그렇지, 먹어야지.
친구는 장시간의 여행동안 배고팠을 내게 멋진 한상을 차려주었다. 친구 집에서 신세질 때는 밥 줄때 냉큼 먹어야 한다. 친구가 자기 그릇에 음식과 밥을 놓고, 손으로 먹기 시작한다. 손으로 먹는 것이 그들의 문화다. 난 그렇게, 문화에 젖어들었다. 오른손으로 밥을 비볐..다. (인도네시아 친구들에게 물으니 왼손으로 일을 보고 오른손으로 밥을 먹는다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밥을 비비며, 잠깐 께름칙했지만 난 그래도 맛나게 먹었다.
배낭여행을 하게 되면, 매일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다가온다. 상상속으로나 그려봤던 그런 화장실을 직접 맞닥뜨리고 해결하니, 아 속이 편했다. 또 다른 접근법으로 화장실 일 보기가 가능해졌다. 이제 인도네시아 여행도 내겐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왜? 내게 가장 큰 고민거리가 해결됐으니깐. 전 세계에 어느 화장실보다, 인도네시아가 내겐 끝판왕이었다. 쪼그려 앉아서 내 손으로 닦았으니, 이것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이다. 뿌듯했다. 뭔가 스스로 큰 벽을 부수고 성장한 나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좀 과장되게 말한다면 자존감도 올라간 것 같다.
이것도 사람 사는 방식이고, 내가 몰랐던 방식이다. 난 스스로 이 곳에 왔으니, 배우고 따라야했다. 정말 두렵고 포기하고 싶었다면, 난 비행기를 타고 우리집 비데까지 8시간을 날아가야 했다. 배낭여행은 항상 새로운 과제와 시험을 준다. 머리를 쓰기도 하고, 몸을 쓰기도 한다. 정말 별 것도 아닌 것에 두려워지고, 가끔은 나도 모르게 해결버튼 위에 앉아있다. 그 버튼을 누르니 참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