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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아세전아 Jul 08. 2020

콜롬비아 교도소, 두 발로 들어가다

케이크 칼이 진짜 무서운 이유

  여기가 어디지, 친구가 보내준 주소를 따라 또 다시 낯선 곳으로 향한다. 기사님께 "쎄구로?(확실하죠?)"를 연신 외쳐대며 우연이 주는 두려움을 달래본다. 모두가 '피부색은 비슷한데 생긴거는 전혀 다른' 나를 보며, 의심하듯 신기하듯 쳐다본다.

"아끼(여기요!)"

 구글 맵에 찍힌 목적지의 점이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샤우팅을 한다. 모두가 웃는다. 친구에게 메세지를 보내자, "내렸으면 우리집 찾아오면 돼, 알아서 될거야", 얼토당토 하지 않은 답변이 온다.

뭐지... 주변을 돌아보며 일단 씩 웃는다. 눈을 마주친 소년 두 명이,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다가온다. 

"꼬노세스, 이반?(이반이란 친구 아니?) 

"씨(알아요)"

  꼬마들은 먼저 앞장서며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저 순수한 눈빛은 찐이다. 믿고 따라갔다. 

길잡이 꼬마들, 잘생김

그늘 아래 아저씨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올라, 아미고(어서와)" 

어디서 왔냐, 누구를 찾아왔냐, 으레 여행을 하다 만나는 형식적인 인사는 단숨에 끝났고, 아저씨들이 묻는다.

"끼에레스 쎄르베자?(맥주 마실래?)"

"부에노(좋아요)"

  어느정도 입에 익은 스페인어 덕분에, 아저씨들의 호탕한 웃음 덕분에, 가라는 친구 집은 안 가고 연신 부어마셨다. 맥주는 낯선 내 마음을 가라 앉혔다. 

마셔라~마셔라~술이 들어간다~ 쭉쭉쭉


이반이 저 멀리서 웃으며 다가온다. 서로 처음 보지만, 처음이 아닌 듯이 우리는 서로 껴안으며 인사했다. "너 아니었으면 안 왔을" 이런 곳을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이반은 씩 웃으며, 어서 짐 풀라고 한다. 이 깡촌의 다아나믹함을 소개해준다고.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내 인생의 첫번째, '여름' 크리스마스라니, 너무 설렌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콜롬비아의 작은 시골 마을, 캄페체에는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크리스마스 축제를 준비 중이다. 이반은 실실 웃으며, 

"오늘 나랑 재밌는 곳 가자"

"어딘데?

"까르쏄(교도소)"

처음 듣 단어를 구글에 한글자씩 타이핑한다. 까, 르, 쎌

"께???????????????????????(뭐라고???????????????)"

  진짜 가자고 한다. 난 절대 믿지 않았다. 아니,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난 죄가 없는데 왜 교도소를 가냐, 아니 어떻게 교도소를 갈 수 있냐.....속에서 막 뭐가 튀어나온다. 이반이 웃는 거로 봐서는 농담이겠지?

  작은 마을은 에너지로 가득찼다. 남미 특유의 노래, 그 흥에 겨운 냄새가 사방에 향긋하게 묻어나왔다. 빵집에 도착한 우리는 준비된 케잌을 받아 거리에 나섰다. 

축제가 준비가 한창인 마을. 온 거리가 난리부르스

"버스타러 가자"

"어디가는데?"

"까르쎌"

"(ㅋㅋㅋㅋㅋ 이 친구가 농담이 심하네?)"

이제 진짜일까봐 살짝 무섭다. 남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가족들과 보낸다는, 얼핏 들은 기억이 떠오른다. 

("다른 가족한테 가는구나")

으레 그동안 만났던 다른 친구들이 가족들을 소개시켜줬던 경험이 떠올랐다. 난 속는 척 하고 같이 버스에 올랐다. 소중한 케잌을 두 손에 쥐고 창밖을 바라봤다. 흙먼지가 일고, 초록색 평지에는 소들이 풀을 씹고 있다. 이게 만약 진짜 교도소로 가는 버스라면, 노래 한곡을 신청하고 싶다. 

'비지스 - 홀리데이'

내렸다. 거리는 황량했다. 이반은 신나는 발걸음으로 앞장선다.

"여기야"

눈 앞에는 샬라샬라샬라..작은 글자로 간판이 보인다. 그리고 '까르셀'이 뚜렷히 보이고, 그 앞을 무장한 군인이 서 있다. 오금이 저리며, 동공히 확장되며, 난 외쳤다.

"엔 쎄리오?(리얼..?실화니..?)"

"내가 말했잖아ㅋㅋㅋ 감옥가자고"

진심이었다. 그의 가족을 만나러 간다는 건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나보다. 근데 여길 어떻게 들어가는건가? 난 죄가 없는데? 이반은 군인 아저씨와 이미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바모스(ㄱㅏㅈㅏ)"

난 모험을 좋아한다. 엄청 좋아한다. 우연에 나를 맡기고, 이 세상을 탐험하길 바랬다. 그런데, 콜롬비아 교도소를 생각한 적은 없다. 뉴스에서 콜롬비아 마피아, 게릴라 뭐 그런 것들을 많이 봐서 무서웠다. 이반, 진짜 너만 믿고 갈게. 그렇게 우연의 종말 같은 문을 열린다.

교도소 가는 길. 인증샷. 땀 한 방울.


당장이라도 총알이 발사될 것 같은 총이 보이고, 보안관이 날 막아세운다. 작은 고프로부터 시작해, 몸에 있는 모든 소지품을 보관하고 내 몸을 수색한다. 옆에 있는 이반의 얼굴엔 여유가 넘쳐났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즐기려 했던 나는 즐기지 못했다. 진짜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쇠창살이 보인다. ㅁ자 형태의 약 40평 정도되는 작은 교도소다. 중앙에 테이블이 하나 보이고, 이반과 나는 그곳에 앉았다. 이반은 몇몇 죄수들과 올라!아미고! 를 외치며 기쁜 미소를 나눈다. 쇠창살 너머로 수많은 사람들이 날 쳐다보며, "비엔베니도스(환영합니다)" 라고 소리친다. 등에 땀 한방울이 떨어지며, 이반의 귀에 속삭인다.

"여기 왜 온거야? 내가 뭐해야 되는거야?"

"넌 그냥 여기서 사람들한테 영어를 가르쳐 주면 돼"

"내가? 어떻게?"

그렇게 간수들은 죄수들의 울타리를 열었고, 몇몇 사람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이반은 이 마을의 선생이다. 유일하게 대학교를 나오고, 스페인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독학한 후 대학교에서 영어 및 독일어 담당 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번듯한 학교 하나 없는 마을에, 그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누구에게나 무료 영어 교실을 열고, 자신이 생각하는 '삶'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하루는 교도소에서 영어 선생님 한 명을 소개시켜달라고 했다. 일정 금액의 돈을 줄테니 죄수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문화적 교화를 시키려고 했다. 이반은 그 얘기를 듣자마자 대답했다.

"돈은 필요없고, 제가 가르쳐줄게요. 대신, 제 집에 찾아오는 외국인 친구들과 같이 들어가게 해주세요."

전 세계에서 온, 100명의 다양한 친구들이 벌써 그의 집에 머물었고, 기회가 될 때마다 실전영어의 일환으로 죄수들과 친구들을 연결시켜주었다.


악수를 나눈다. 따뜻한 온기가 서로 인사하며 우리는 모두 자리에 앉았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이요"

"오! 갱냄스타일?"

교도소 안에도 TV가 있나? 아니면 밖에서 보고 이제 들어온건가? 이제 내 차례다, 내 본분을 다하기 위해 먼저 간단하게 영어로 인사했다.

"하와유? 왓이즈 유얼 네임?"

"마이 네임 이즈, 로사리오"

원탁의 기사처럼, 둥근 테이블에 오순도순 앉아 얘기를 나누다보니 그래, 이 사람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야, 이런 생각이 들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옆에 친구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근데, 하나만 조심스럽게 물어도 돼?"

"뭐든 물어봐, 친구"

"여기서 몇년이나 있어야 돼?"

"17년"

17년. 17년 전 초등학교에서 친구들과 공을 찬 기억이 떠오른다. 떠오르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 기억의 저 편에서, 17년이란 시간이 얼마나 길까 가늠해본다.

"여기 왜 들어온거야?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등에 땀 한방울이 떨어진다.

"사람을 죽였어"

"......"

"근데, 뭐 곧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뭐라 대답해야 될 지 모르겠다. 태어나서 누가 나한테 "사람을 죽였다"고 이실직고 한 적이 없었다. 친구의 얼굴을 보니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것처럼, 또는 너무 고통스러웠던 것처럼, 사람을 죽였으면 당연히 나와야할 그런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담담하게 말해 어떻게 대답해야 될 지 고통스러웠다.

간부, 죄수, 이반,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까지. 원탁의 식탁에 앉아 하하호호 웃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념했다. 간부의 신호가 떨어지자 누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1분 뒤, 그에 손에는 칼이 있었다. 칼을 너무 자연스럽게 돌리며 오는데, 간담이 서늘했다. 진짜 무서웠다. 진짜. 여기서 저걸로 날 죽여도, 이 식탁 밑에 나를 묻어도, 누구도 알 수가 없을 것이다.(그 친구는 웃으며 칼을 돌렸는데, 난 너무 무서웠어..)

 식칼을 든 죄수가(케잌 칼은 왜 안 넣어준거야?) 케잌을 여러조각으로 나누고 우리는 박수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렇게 한 시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고, 친구들과 포옹하고 문을 열고 나왔다. 노스 베모스(또 만나자)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내가 교도소에 다녀오다니, 이반의 얼굴을 보며 "이게, 진짜니?" 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얼굴엔, "많이 보던 얼굴이네ㅋㅋㅋㅋㅋ" 이런 표정이 나왔다. 그 누가 여길 다녀와도, 웃음이 나올 것이다. 안도의 웃음,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p.s

페이스북 메세지가 왔다. 

"올라, 아미고, 나 저번에 교도소에서 봤던 로사리오야. 기억하지?"

?????????????? 교도소에서 핸드폰도 할 수 있는건가?

"어!! 친구, 근데 어떻게 메세지를 보낼 수 있어?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곧 나갈 것 같다고ㅎㅎㅎ지금 밖이야"

"아 그래? 와ㄷㄷ 축하해!(???)"

"고마워, 나중에 콜롬비아 오면 꼭 연락해~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이반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사실, 너가 옆에서 말했던 친구가, 이 지역에서 되게 유명한 보스 인데, 청부살인으로 유명해. 여기 시장을 죽여서, 감옥에 들어 갔었어. 여기는 돈으로 변호사, 검사, 판사를 다 살 수 있어. 그런 곳이야"

콜롬비아 마피아 두목이 이제 내 친구다. 


지구 반대편에도 사람들이 산다. 너무나 비슷하게 때로는 너무나 다르게. 그 삶 속에 빠져들어 사람들을 바라보고, 느껴보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내가 교도소에 갔던 일. 사건, 추억, 경험은 정말 많은 경우에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재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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