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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사원 Apr 30. 2023

망설일 바에 열심히

4월 마지막주 묵상

-

오랫동안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당선됐다

불경기에 내년 연봉걱정을 덜어 줄 소식에

사내게시판은 들썩였고

여기저기서 축하메시지가 온다


뒤풀이 술자리를 가지게 됐다

열다섯 명 남짓한 사람들이

서로의 눈을 번갈아 마주쳐가며

술잔을 부딪히고, 격려한다


결과가 좋았기에 망정이지

낙선이었으면 우리팀 공중분해 될 뻔했다고

엔 하지 못했던 무서운 농담도 한다


술기운이 좀 올랐을 때였을까

이번 프로젝트 총괄을 맡은

MA(Master Architect)눈이 마주쳤다


평소엔 대화할 일 없는 사람인데

내 나이를 묻더니 뭇 어른들이 그렇듯

그 연차 때 자신이 겪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듣는 얘기는

화자도 청자도 다음날이면 잊어버려서

나도 너무 에너지 써가며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렇게 온갖 소음 사이로

간신히 문장이 끝나는 순간만 캐치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시늉만 하다가


주변이 페이드아웃되며

그 사람의 목소리 톤, 말투와 표정이

선명하게 들어온 순간이 있었다


30대를 부디 치열하게 살아가라고

일이든 사랑이든 무엇이든 좋으니 죽도록 하라고


40이 되고 50이 되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테니

보이지 않아도 일단 달리라고


-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다들 방향 방향 하는데

아무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면서
타인의 선택 하나하나에 온갖 조언을 남발해대는
이 풍조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


책임지지 못할 말들에 휘둘리고 비틀거리며

보이지도 않는 깃발을 찾아가는게 지쳐갈 무렵


나는 곧게 뻗은 선으로
명확한 출발선, 경로, 도착선이 그어진

빨간 우레탄 바닥 위의 트렉이 아니라


힘껏 뻗은 팔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원 없이 달릴 수 있는

무채색 하늘 아래 넓은 광장을 생각한다


누군가 알려주지도, 스스로 깨우치지도 못하는

그저 저 멀리 일렁이는 깃발을 바라보며 비틀거리는 것 보다


두 발이 땅을 딛고 있는 이유를 따라

그저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주는 충만함이
이 끝없는 레이스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하는

더 큰 원동력이 될 때가 있다


-

믿고 살아왔던 가치와 현실의 충돌
혼자 끙끙대던 아름답지 않은 문제들


당장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으면

때론 미래의 한층 성장했을 나에게 맡겨두고

주어진 지식, 인연, 환경 속에서

그냥 마음껏 달려라. 오늘을 후회 없이 잘 살자


그래야 내가 숨을 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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