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엄마부터 되고 보자!'
아이가 오랫동안 안 생기자,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모든 신경은 '임신'에 가 있었다. 마음이 허전했고 하루빨리 아이를 품에 안고 싶었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거 생각보다 힘들어. 자식 없으면 뭐 어떠니~."
친정 엄마는 힘들어하는 나에게 위로를 건네며 말씀하시곤 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도 워킹맘이었기에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힘드셨을 것이다. 회사 내 워킹맘들과 우리 엄마를 보면서도 당시 나는 워킹맘의 고충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했다. 그저 엄마가 되고 싶었고, 나도 잘 해낼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팀장님,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같은 팀에서 일하는 나의 입사 동기가 말했다. 그녀는 아이 돌봐주던 분과 잘 맞지 않아 힘들어했고, 두 돌 쟁이 아이도 자주 아팠다. 게다가 그녀의 가족들 모두 지방에 있어서 도움을 받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한동안 정신없이 지내던 그녀를 볼 때마다 나는 은근히 신경이 쓰이고 불안했다. 그러다 어느 날, 한계에 다다른 그녀는 결국 퇴사를 선언하고 말았다.
차분했던 그녀가 흔들릴 때마다 안타깝긴 했지만, 사실 나는 아이와 함께하는 그녀의 삶이 내심 부러웠다. 하지만 몇 년 후 그녀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게 장난이 아니구나!'
복직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주말 아침이었다. 아이의 한쪽 눈이 벌겋게 부어올라 눈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조금 불안한 마음에 소아과로 곧장 향했다.
"소견서 써드릴게요,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열은 없어서 아닐 수도 있지만 일단 최악의 상황을 말씀드릴게요. 심해지면 실명까지 갈 수 있습니다."
소아과 의사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태며 다소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의심되는 병명은 '안와 연조직염'으로, 눈에 염증이 생기면 안구에 퍼지고 최악의 경우 실명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이전에 수련한 대학병원에서 감염 내과 쪽에 있었기에 이 경우를 잘 안다고 했다. 최악의 경우 실명이라는 말에, 순간 나와 남편은 말문이 턱 막혔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대학병원 응급실 의사가 아이 상태를 보더니 안과와 성형외과가 함께 있는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치료를 거절당하니 '아이의 상태가 그 정도로 심각한가?'라는 생각에 더 두렵고 막막했다. 남편이 전화로 수소문한 끝에 다른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입원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
검사가 끝나자 의사가 말했다.
"통원 치료할 수는 없나요?"
우리 부부는 입원만은 제발 안된다는 심정으로 재차 물었다.
"네, 원인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생제를 써야 하는데, 통원 치료로는 불가합니다."
의사는 단호한 음성으로 답했다.
아직 확진을 내릴 수는 없지만 항생제 주사 투여를 하며 염증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소변검사 때문에 최소 3일의 입원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한 번의 입원 경험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입원만은 막고 싶었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내가 복직해서 이런가? 아이 음식도 제대로 못 챙겨줘서 이 지경이 되었나?'라며 수없이 자책했다. 당장 월요일 출근부터가 문제였다. 하지만 결국 출근한다 해도 아픈 아이를 둔 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아 양해를 구하고 연차를 냈다.
"으앙, 으앙, 으앙~~~!!!!!!!!"
아이가 새벽에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이의 손에 링거 바늘을 다시 꼽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잠을 잘 때 구르면서 자다 보니, 손에 꼽은 링거 바늘이 자꾸 빠져나갔다. 그 곱고 작은 아이의 손에 큰 바늘을 여러 번 쿡쿡 찌를 때마다 내 온몸에 바늘이 꽂힌 기분이었다. 아파서 발버둥 치는 아이를 누르며 붙잡고 있자니 고통스러웠고, 결국 나도 꾹꾹 눌러 담았던 눈물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입원 둘째 날에도 아이의 부은 눈은 가라앉지 않았고, 나는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피검사 결과는 정상이었지만 의사도 그저 지켜봐야 한다며 명쾌한 답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셋째 날 아침, 기적적으로 아이의 눈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퇴원을 마치고, 그다음 날부터 사무실에 출근하는데 기운이 빠지고 일하기가 싫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직장을 다녀야 하는 것일까 괴로웠고, 밀려드는 업무로 숨이 턱턱 막혔다. 하지만 또 막상 출근을 해 보니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는 게 체력적으로 훨씬 더 힘들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무턱대고 그만두는 것도 답은 아니었다. 힘들어했던 내 동기도 결국 일을 그만두지 않았던 것을 보면 말이다.
육아도 워킹맘도 남들이 하는 걸 볼 때는 이렇게까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나에게 닥치니 엄마들이 왜 피곤해하는지, 또 괴로워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슈퍼우먼처럼 보였던 엄마들도 사실 알고 보면 나와 같은 경험을 했을 테고, 그럼에도 두 가지를 포기하지 않고 버텨냈다는 점이 참 대단하다.
이 땅에서 슈퍼우먼으로 살아간다는 건, 고통 없이 척척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쓰디쓴 경험들을 묵묵히 삼켰다는 뜻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