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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샤인 Jun 05. 2021

너, 이 부서 탈출하려면 임신이 답이야.

육아휴직과 복직, 그 달콤 살벌한 시간

"너, 이 부서 탈출하려면 임신이 답이야."

회사 동료가 진지하게 말했다. 부서를 탈출하기 위해 임신을 하라니! 한편으론 어이가 없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임신만큼 좋은 구실도 없겠다 싶었다. 나는 살면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본 적이 없었다. 고로 크게 노력을 쏟은 적도 없었다. 남들이 사는 딱 그만큼,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 아이는 내게 그냥 주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갑자기 '힘든 부서'로 이동한 것은 물론, 아이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싶었던 나는 내 상황을 원망하며 모든 것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아이를 그토록 원했지만, 임신 초반에는 조심스러운 마음에 충분히 기뻐하지 못했다. 자궁에 피가 고이는 바람에 병가를 낸 후, 친정에서 누워 지냈다. 아이는 잘 버텨주었고, 안정기에 접어든 이후에는 무난한 임신 기간을 보냈다. 아이를 하루빨리 만나고 싶었다.


"집에 있는 동안 답답해서 출근하고 싶었어. 회사에 나오는 게 더 나."

예전에 출산 휴가를 3개월만 쓰고 출근한 직장 동료가 했던 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당시 직장에서는 출산 휴가 3개월 후 1년의 육아휴직을 내는 게 쉽지 않기도 했고, 보편화된 일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1년의 육아휴직은 당연한 게 되었고, 내가 출산을 하고 보니 3개월 만에 직장에 복귀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출근 대신 집에서 아이와 있는 시간이 쉬운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일단 회사에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좋았고, 집에 있는  답답하거나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아마도 독박 육아가 아니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매일  주신 친정 엄마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힘든 순간들도 분명 많긴 했지만 아이는 방긋방긋  웃고  먹었고, 부모님과 남편 모두 우리를 든든하게 지원했다. 달콤했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달콤에 대한 대가는  있었다.


"폐렴입니다. 입원하시죠."

아이의 상태를 본 의사가 말했다. 나는 복직 전 남편과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생각에 들떠있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아이는 돌이 넘도록 열한번 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입원을 해야 한다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그 작디작은 손에 바늘을 꽂고 시간마다 아이 입에 해열제를 짜 넣어야만 하는 상황은 정말 괴로웠다. 게다가 밤에 돌아다니며 자는 아이가 그 좁디좁은 침대에서 얼마나 답답해했을까. 그런데 좀 이상했다.


왜냐하면 남편이 다른 병동에 어떤 병명을 가진 아이들이 있는지 보다 보니 대부분 'pneumonia(폐렴)'인데, 우리 아이는 좀 다르다고 했기 때문이다. 'bronchitis'. 찾아보니 기관지염이란다.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고, 병동 간호사님께 확인차 물었다. "저희 아이 폐렴이 아니고 기관지염인가요?" 간호사님은 답했다. "아, 예, 뭐, 폐렴이나 기관지염이나, 같아요."


우리는 아동 병원으로 갔었다. 폐렴도 아니었고, 기관지염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동 병원은 흔히들 입원을 많이 권한다고 하던데 초보 엄마 아빠가 당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고열에 쳐져 있는 아이를 입원을 하라는 말을 거절하고 집에 와서 보살필 부모가 있을까. 좋은 경험이었다. 다들 한 번쯤 폐렴으로 입원시켜본 적이 있었다고들 하니 말이다.


'우리, 여행 못 가겠지?'

아이가 입원한 동안 남편과 나는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마 말로 뱉기엔 불편했기 때문이다. 사실 입원을 결정한 순간 여행을 취소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어느 부모가 아픈 아이를 두고 용감하게 갈 수 있을까. 하지만 가까스로 아이의 열은 떨어졌고, 3일간의 입원을 끝으로 다행히 아이는 회복되었다. 조금은 홀가분하게, 하지만 한 편으로는 친정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가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그래도 남편은 우리 삶에 이런 날이 또 언제 오겠다며 현재를 즐기자고 했다. 그러나....


"야, 너 발령 났어. OOO으로"

"뭐... 뭐라고?"


이탈리아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동료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심지어 휴직 전 부서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부서였다. 달콤한 시간에서 그 살벌한 시간의 서막이 밝아옴을 직감했다. 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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