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할 것도 없는 일!
하루 이상의 오랜 기다림 끝에 분만실에 들어가자마자 한 번에 나온 우리 아이.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손을 빨며 빼꼼히 나를 바라보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가 건강한 것, 맑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출산이 끝났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감사했다.
게다가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
"이번 달 자연분만 산모들 통틀어 TOP 3안에 듭니다."
정신없는 출산 와중에도 칭찬을 받으니 나도 모르게 씩씩하게 출산을 해낸 내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로 우리 아이에게만큼은 정말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리라 다짐했다.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생겼다.
이렇게 출산과 동시에 넘치는 자신감으로 출발했지만, 나의 첫 번째 위기는 먹성이 좋은 아이에게 모유를 많이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터졌다. 산후조리원 퇴소 이후 첫날부터 시작된 현실. 모유로는 부족하니, 분유를 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아이는 연신 울어댔다. 그 누구도 모유 수유의 압박을 주지 않았고 노력한다고 누가 인정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노력이라도 해 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2달간의 노력 끝에 모유가 충분해지자 아이가 숨 가쁘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육아, 할만한데? 노력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하며 비로소 마음의 안정감과 자신감이 다시 생겼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 속에서도 마음속 저 깊은 곳에 항상 자리하고 있는 그늘은 있었다. 바로 복직! 아이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온전히 지켜볼 수 있는 이 휴직 기간이 지나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이를 보는 기쁨이 큰데, 나의 직장 생활이 그것을 맞바꿀 만큼 보람 있고 충분한 것인가? 그만둘 용기는 없었지만 병행하며 해내야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늘 마음 한편에 있었다. 두 돌도 채 안 된 어린아이를 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것 자체도 죄책감이 들었다.
'모두가 슈퍼우먼으로 척척 잘 해내고 있는데 나라고 못할 게 있어?'라고도 생각했지만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다. 아이를 낳는 것은 인생 제2막이라고 할 정도로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되는, 그야말로 사건 중의 사건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품기까지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주변인들로부터 귀가 아프도록 육아 이야기를 들어왔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저 아이와 함께하는 그들의 일상이 부럽기만 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머리로만 이해를 했던 것이지, 아이를 낳고 보니 그 이전의 나의 생활은 정말 우아했던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현실로 닥친 육아는 정말이지 블록버스터 급 영화 또는 희로애락이 담긴 한 편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아이로 인해 가족, 지인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상상 이상의 반전도 있었고, 롤러코스터 같은 다채로움도 경험했다. 게다가 직장 동료 및 상사까지 추가되는 직장 생활까지 해내야 하는 이 상황이 가혹하다고 느꼈고, 그렇기에 육아를 지친 직장 생활의 탈출구라고도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곧, 직장 생활이 오히려 육아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 못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