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호흡기내과
오늘은 생일이다. 사실 학교 다닐때 생일이라고 특별히 행사를 하지는 않았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이나 마셨다. 하지만 병원에서 처음 생일을 맞다보니, 다른 모든 날들과 같이 아무런 특별함이 없어서 섭섭했다. 게다가 아침부터 이상하게 바빴다. 3주째 ABGA를 하고 있어서 기술이 많이 늘었는데도, 처방난 ABGA 갯수가 많아서 아침 7시에 겨우 채혈을 마칠 수 있었다. 회진 후에도 병동콜이 계속돼서 점심도 못먹고 병동을 뛰어다녔다.
오후에 회식에 참여하라는 공지를 받았다. 아마 인턴들 참석은 계획에 없다가, 갑작스럽게 정해진 것 같았다. 장소는 병원앞 고깃집이었는데, 학교 다니던 시절에 돈 많은 선배가 저녁을 사줄때 가끔씩 가던 곳이었다. 그래도 생일인데 고기를 먹게 되다니! 내심 기뻤다.
오후에 펠로선생님과 함께 회진을 돈 후 일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내과 인턴 몇명과 함께 고깃집으로 걸어갔다. 2층 전체가 내과 회식으로 예약이 되어 있었다. 분과 구분없이 내과 전체에서 참석하는 회식이었는데, 펠로우나 교수님들 없이 인턴들과 레지던트들만 식사를 하는 IR회식 (Intern, Resident) 이었다. 저녁 이른시간이라서 주로 3,4년차 선생님들이 많이 와있었고, 1,2년차들은 몇 명 안 보였다. 우리는 최대한 구석진 테이블을 찾아서 앉았고, 눈치주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주눅들어서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인턴을 시작하고 나서 한달 만에 처음으로 병원 바깥에서 식사를 했는데, 너무 맛있었다. 마치 무슨 교도소에 갇혀있다가 출소한 느낌이었다. 고기는 당연히 맛있었지만, 밑반찬과 국 마저 병원 음식과 비교도 안되게 맛있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1,2년차들이 속속 도착했고, 식당 2층은 거의 꽉 찼다.
3,4년차들은 빠르게 술이 취해갔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무섭기로 소문난 시니어 전공의들 중에는 식사자리인데도 1년차를 혼내는 사람들도 보였다. 우린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봐 말소리도 줄여서 조용 조용 대화를 나눴다. 그래도 우리 테이블은 인턴들만 있어서 자유롭게 대화라도 할 수 있었다. 옆 테이블에 한 인턴은 (어쩌다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3,4년차 테이블에 끼는 바람에 말 한마디 못하고 밥만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회식이 한참 무르익을 때, 3년차 선생님 한명이 케익을 사왔다. 케익을 보고 전공의 선생님들이 함성을 질렀다. 순간적으로 "선생님들이 내 생일을 어떻게 알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의국장 선생님도 생일이었나보다. 불을 끄고 촛불에 불을 켰고, 충성스러운 인턴들은 (나를 포함) 모두 벌떡 일어나서 케익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고, 손뼉을 치면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의국장선생님은 술이 만땅 취한 상태였는데, 풀린 눈으로 노래하는 인턴들에게 와서 술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고맙다, 고마워'라고 연신 말했다.
오늘, 내 생일에 서서 손뼉을 치면서 남의 생일을 축하했던 그 시간이, 앞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너무 싫었다. 어딘가에 속해있지 못한 사람만이 느끼는 이 외로움도 싫었고, 자신있게 '저도 생일이에요!'라고 말하지 못하는 내 신분도 싫었다. 아마도 그렇게 얘기했으면 어색하게나마 나도 같이 축하받게 해줬겠지? 좀 웃긴건 평상시엔 생일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나가곤 했다는 것이다. 힘들게 일하다보니 더 쉽게 자기연민에 빠지게 되는건가... 싶었다.
그래도 노래를 부른덕에, 케익을 자를 때 근처에 서있을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케익 반조각을 먹을 수 있었다. 케익만 먹고 다른 인턴들 몇명과 병원에 다시 들어왔고, 밀린 병동일을 몇가지 처리하고 일찍 누웠다. 아직 한달도 안 지났는데, 인턴이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