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마지막날

2006년 3월 호흡기내과

by 외과의사 이준서

드디어! 인턴 첫 달이 끝났다. 12개의 턴 중에 처음으로 의학의 꽃인 내과 인턴을 돌았는데, 생각보다 의학적이진 않았다. 내가 환자를 살릴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한달 동안 간호사 심부름 하다가 끝난 것 같은 느낌이다. 첫 달이라서 환자 치료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게 아쉬운 걸지도 모르겠다. 몇 달 지나고 나면 이렇게 깍두기 역할을 하는 턴이 오히려 그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펠로우선생님과 교수님들은 학생실습 돌 때 봤던 모습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나와는 몇 단계 떨어져 있는 분들이고, 직접적으로 접촉할 일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그런데 전공의선생님들을 옆에서 보면서, 학생실습 때와는 다른 모습을 많이 봤다. 1년차선생님과는 만날 일이 꽤 많았다. 매일 아침 회진과 오후 회진을 같이 돌기도 했지만, 환자 명단 수정사항이나 업무 중 발생하는 이런 저런 잡일들 관련해서 통화도 자주 했다. 선생님도 1년차를 해보는게 처음이다보니, 윗년차 선생님들에게 혼나는 일도 몇번 있었다. 그런데도 상당히 스테이블하시고,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화내는 일이 한번도 없었다. 나이가 좀 많은 선생님이었는데, 어쩌면 병원 들어오기 전에 이런저런 사회경험이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의 대처를 유연하게 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1년차에게 너무 많은 일이 몰리는 건 별로 합리적인 시스템 같지 않다. 펠로선생님이 병원 푸드코트에서 인턴 전공의들 밥을 몇 번 사주셨는데, 1년차 선생님은 매번 밥먹다말고 콜을 받고 먼저 일어났다. (정말 단 한번도 끝까지 밥을 같이 먹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3년차 선생님은 상당히 여유가 넘친다. 일단 출근 자체가 늦다. 내가 ABGA를 시작하려고 5시반쯤 병동에 도착하면, 1년차 선생님은 이미 병동에서 이것 저것 하고 있다. 떡진 머리와 흐린 눈을 보고 어제는 아예 잠을 안 잤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3년차 선생님은 7시 컨퍼런스 시작하기 정확히 15분 전에 나타난다. 그리고 1년차 선생님에게 환자들의 상태를 요약된 버전으로 빠르게 보고를 받는다. 컨퍼런스를 할 때는 마치 자기가 새벽부터 출근해서 환자들의 상태를 파악한 것처럼, 교수님들에게 조잘조잘 보고한다. 인턴인 내가 보기에도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좀 궁금한 부분은, 3년차 선생님도 1년차 때 똑같이 심하게 고생을 했을까? 그리고 지금 1년차 선생님은 내후년이 되면 지금 3년차 처럼 컨퍼런스 시작 15분 전에 나타나서 자기가 본 것처럼 환자 보고를 받을까. 1년차 몰아주기 시스템이 2-4년차에게는 더 편할테니, 차라리 첫 해에 개고생하는게 더 좋은 시스템일까? 회진이나 컨퍼런스 때 이런 저런 빵꾸가 나는 것을 보고 있으면, 환자들에게 이상적인 시스템 같지는 않다.


첫 달을 돌면서 내 자신에 대해 배운 것은, 나는 환자를 보는 것은 좋아하는 것 같다. 어떤 의사들은 인턴 1년하면서 환자에게 질려서 기초의학이나 병리, 영상 등으로 진로를 정한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환자나 보호자 중에는 의사들 중 가장 말단인 인턴을 좀 무시하는 태도로 대하는 분들도 있다. (특히 병원을 오래 다닌 만성질환 환자들이 그런 듯 하다) 그런데 한달 일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분들 중 대부분의 분들은 (내가 아무리 하찮은 일을 하고 있어도) 나를 존중해주셨던 것 같다.


업무 시스템에 대해서는,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많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느낀다. 예를 들어서 쇄골하중심정맥관 드레싱 (subclavian catheter dressing)의 경우, 4-5일에 한번 정도 드레싱을 하게 된다. 보통은 병동에서 콜이와서 누구 누구 해달라고 하면 드레싱을 하게 마련인데, 가보면 드레싱한지 이틀 밖에 안됐고 상태도 아주 깨끗한 경우가 있다. 담당 간호사에게 아직 날짜가 안된 것 같다고 말해본적도 있지만, 확인하는 과정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 무엇보다 괜히 병동에 자꾸 싫은 소리를 하면 내 평가에 문제가 생길것 같아서 필요없어보이는 드레싱도 그냥 하게 된다. 드레싱의 인터벌을 정하는게 지금처럼 병동에서 하는게 아니라, 환자를 담당하는 인턴이 관리하면 어떨까? 삽관부위의 상태에 따라서 할 수 있으니, 인턴의 업무 면에서도 편하고, 환자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드레싱을 받지 않을 수 있으니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오후 회진 끝나고 1년차선생님과 담배를 피는데, 선생님이 '너는 나중에 무슨 과 하고 싶어?'라고 물어보셨다. 학교다닐때부터 막연하게 수술하는 과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과를 정하진 못했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음... 너는 수술하는 과 어울릴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내과에서 잘 못했다는 뜻으로 말씀하신건가 잠깐 생각했지만, 좋은 뜻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이제 좀 일이 손에 익었는데, 내일부터는 응급실 근무다. 말로만 들었던, 모든 인턴이 가장 두려워하는 바로 그 응급실... 오늘밤에 잠을 푹 자두어야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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