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맞은 여고생

2006년 4월 응급의학과

by 외과의사 이준서

객혈했던 할아버지 이후로 수많은 환자들을 봤다. 매일 '이런 일이 가능하구나'라고 생각하는 일의 연속이다. 그러던 중 오늘 정말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낮턴이 끝나기 직전에 15세 여자환자가 이마에 큰 열상(찢어짐)으로 내원했다. 학생들은 부모님이 오는 경우가 많지만, 이 환자는 엄마, 아빠 그리고 여동생까지 네가족이 다 왔다. 그런데 응급실 들어올 때부터 다른 환자들과 분위기가 좀 달랐다.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은 기본적으로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온다. 술취한 환자들의 경우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들어오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보통 '우울하다'는 느낌보다 '놀랐다' 혹은 '화났다'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이 가족은 네명 다 이상하게 우울했다.


다친 경위를 조사할때도 느낌이 안 좋았다. 자녀가 다쳐서 가족들이 오면 보통 엄마가 미주알고주알 얘기하고 아빠는 딴짓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환자의 경우 엄마는 우울한 얼굴로 진찰하는 과정 내내 한걸음 떨어져 서 있었고, 아빠가 얘기를 했다. 어떻게 다쳤는지 물어보자, 환자는 말없이 울고만 있고 아빠가 나서서 '자전거 타다가 앞으로 넘어져서 바닥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처는 바닥에 쓸린 상처가 아니고, 변연부가 비교적 깨끗하게 넓게 찢어진 상태였다. 아빠 앞에서 자세히 물어보는게 안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대략의 내용만 아빠에게 들은후 가족들은 대기실로 안내했다. 성형외과에 보고하기 전에 상처를 생리식염수로 씻어내야하니, 환자는 처치실에서 대기하도록 했다.


상처를 씻어내기전에, 응급의학과 선생님에게 대략의 내용을 보고했다. 소아과 환자나 간단한 환자의 경우 인턴이 해당 진료과에 직접 보고하기도 하지만, 중증환자나 진료과 할당이 애매한 환자의 경우 응급의학과 전공의선생님이 교통정리를 해준다. 오늘은 2년차 남자선생님이 근무하고 있었다. 키는 작은데 몸이 다부지고 얼굴이 가무잡잡한 선생님인데, 인턴들에게 좀 거칠게 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응급의학과 선생님들은 여러 과들을 대하다보니 아무래도 의사들 간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이 선생님은 그런 걸 겪으면서 싸움닭으로 된 느낌이 강했다.


'선생님, 젊은 여자환자 이마 열상인데, 상처 irrigation (씻어내고) 하고 성형외과 보고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가정폭력이 의심됩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거야? 환자가 맞았대?'

'아직 환자랑 둘이 말은 안해봤는데요....'

'일단 irrigation 하고 환자랑 얘기해봐.'

'알겠습니다.'


또 한소리 들었네, 라고 생각하면서 일단 irrigation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환자에게 넌지시 자전거 타다가 넘어진게 맞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환자가 기다렸다는듯이 흑흑 흐느끼기 시작했다. 좀 기다렸다가 환자가 진정된 후,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혹시 이거 아빠가 그런거에요?'

그랬더니 환자가 내눈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밥먹다가 일어나서 의자로 내리쳐서 이렇게 됐어요.'

해사한 얼굴의 여학생이 이마가 다 망가진 상태로 이렇게 말을 하는데,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다. 하지만 환자 앞에서 반응할 수는 없으니.. 일단 알겠다고 하고 열심히 씻어냈다. 환자가 너무 측은해서 그랬는지,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는 농담도 해가면서 처치를 했다. 환자는 많이 아팠을텐데, 워낙 천성이 밝은건지, 여고생들은 다들 쉽게 웃는 건지, 내 농담에 피식피식 웃기도 했다.

처치가 끝나고 전공의선생님에게 다시 보고했다.


'선생님, 환자에게 물어봤는데 아빠가 부엌의자로 이마를 내리찍었다고 합니다. 경찰에 신고할까요?'

이렇게 애기하자 전공의선생님은 다른 환자 CT를 열심히 스크롤하다가 나를 물끄러미 보면서 말했다.

'신고해서 사실이 아니면, 니가 책임질래?'

어떤 대답을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은 정말 기대했던 말이 아니었다. 깜짝 놀라서 가만히 서있었더니 얼른 성형외과 보고하라고해서, 일단 씻어내고 성형외과에 보고했다. 곧 성형외과 1년차가 내려와서 suture (상처를 봉합하는 것)를 했고, 내가 assist (시술이나 수술 보조)를 했다.


전공의선생님이 저렇게 말은 해도, 경찰에 신고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도 다른 환자들을 중복으로 계속 보고 있어서, 실제 신고가 된건지 뭔지 알수가 없었다. Suture가 끝나고 드레싱을 하고 퇴원약을 입력할때도, 계속 경찰차가 나타나길 기대했다. 하지만 모든 처치가 끝나고 성형외과 외래를 잡고 퇴원을 할 때까지 경찰은 안보였다.


환자가 퇴원할때 나도 모르게 따라나갔는데, 아빠도 한번 돌아보고 환자도 한번 돌아봐서 둘다 눈이 마주쳤다. 내 생각이겠지만 아빠는 '저 의사는 뭔데 여기까지 나오지?'라는 눈빛이었고 딸은 '얘기해봐야 소용없구나'라는 눈빛이었다.


퇴근하고 대충 저녁을 먹고 씻고 누웠는데, 어린 여고생 환자가 피식피식 웃는 모습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오늘 내가 어떻게 하는게 올바른 일이었을까? 전공의선생님에게 정면으로 반항을 하고 내가 경찰에 신고해야 했을까? 아니면 응급의학과 교수님을 찾아가서 얘기를 했어야 하나?


아직 4월밖에 안됐는데, 지나고나서 후회하는 사건이 자꾸 생기고 있어서 무섭다. 시작할때는 그저 하루하루 큰 사고없이 지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사고가 없는게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화, 목, 토 연재
이전 09화역시 무서운 응급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