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흑백 사진에 500을 태워요

20대 카메라 초보의 라이카 후기

by 준성

결국 카메라를 샀다.

나는 어엿한 카푸어(카메라 푸어) 3달 차다.

우스갯소리지만, 중고차 가격과 얼추 비슷하니 아주 틀린말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 사이 내 삶은 가난해졌고, 매일 라면과 과자로 연명하며 관리비 내기도 어려운......

은 거짓말이다.


내 삶은 카메라를 사기 전과 후로 비슷하다.

나는 쇼핑,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 딱히 돈 나갈 일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인턴을 하게 됐고, 인턴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렌즈를 사려고 했고, 그게 카메라로 옮겨간 것뿐이다.

그것이 하필 라이카였던 것이다.



사진 찍어본 적은 있고?


사진은 연인의 졸업사진을 찍어준 것을 제외하면 제대로 찍어본 적은 없다. 취미로 사진 인스타 계정을 운영했었는데, 몰아서 찍고 몇 달에 하나씩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지금은 계정을 삭제했다)


영상만 만들어봤지, 사진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내가 원하는 정도의 퀄리티 있는 영상을 혼자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노가다에 가까운 만드는 과정과 마음대로 컨트롤 되지 않는 협업에 현타를 씨게 느끼면서 눈을 돌렸다. 거기에 사진이 있었다.


나는 물리적으로 남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만들어낸 무언가가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기를 바란다. 내가 잘해서 나오는 좋은 결과를 좋아하고, 그 과정이 너무 복잡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실행할 수 있는 것. 사진을 잘 모르던 나는 "이론적으로" 사진이 그러한 것들을 해결해주리라 생각했다.



자신이 장비병에 걸렸다면


초보자들은 장비욕심이 있다. 좋은 기기가 좋은 사진을 찍어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랬고, 기왕 사는 거 나의 모든 감성과 철학과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잠재력마저 이끌어내어줄 절대적인 카메라를 찾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5개월이 걸렸다. 인턴 동기들이 대체 언제 카메라를 사는 거냐고 물을 때쯤, 흑백사진만 찍히는 라이카를 사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는 이러한 과정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신이 투자할 수 있다면, 가장 갖고 싶은 것을 사봐야 한다. 그래야 얼마나 자신이 부족한지도 느끼게 되고, 언제나 카메라 탓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럼에도 마음에 드는 사진이 찍혔다면 손이 저릿해지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명한 소비를 위해, 자신만의 기준을 잘 세우기를 바란다.


내게는 카메라를 고르는 기준이 두 가지가 있었다.


1. 라이카여야 할 것

2. 흑백사진만 찍을 수 있을것


우선, 나는 잦은 기변은 참을 수가 없다. 그 과정이 너무 귀찮고, 매번 그 까다로운 중고 장비 검사와 거래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나는 언젠가 라이카를 쓰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불편한 카메라라는 것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너무 쉽게 찍히는 카메라는 재미가 없었다. 라이카를 쓰는 사람이라는 딱지를 갖고 싶었다. 감가도 적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되팔기에도 유용했다. 그렇다면 라이카로 한 방에 가는 것이 효율적인 일이었다.


두 번째로, 나는 색감에 대한 감이 없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봐도, 색감이 좋은지 잘 모르겠다. 분명히 색감이 감수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아는데, 내가 그것을 구현하는 것에는 젬병이다. 어렸을 때 나는 데생만 좋아하고 물감 칠하는 것은 싫어했다. 아름다운 사진이라고 돌아다니는 감성적인 사진들도, 그것이 정말 아름다운지 잘 모르겠다. 반면 좋은 흑백사진에서는 소름이 돋게 인상적인 작품이 많았고, 나는 색감을 아예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흑백만 찍히는 카메라라니, 낭만적이잖은가.


그 외에 카메라의 디자인, 렌즈 교체 가능 여부, 헤리티지, 희소성 등, 라이카 M9 모노크롬으로 정착하게 된 계기는 시리즈 10편으로 풀어도 모자를 것이다.



사진을 찍기 전에 검토해볼 것


재미있는 건 라이카를 사기로 마음 먹고 나서야 내가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사람인지 궁금해졌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으려면 일단 들고 다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나는 그런 타입의 사람이 아니었다. 뭔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이게 부끄러움 때문인지 혹은 사진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지 알기 위해, 나는 기존의 캐논 R7을 출퇴근길에 매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훈련을 해보기를 권고한다. 자신이 사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고, 무엇을 찍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고, 군중 속에서 카메라를 드는 행위가 어떻게 느껴지는지 알 수 있다. 참고로 나는 하루에 한 장도 찍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계속 들고 다녔다.


그러면서 몇 가지를 깨달았는데, 그건 내가 찍고 싶은 장면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기존의 카메라는 다른 풀프레임 카메라에 비해서 작은 편임에도 여전히 너무 거추장스러웠다. 캔디드 사진을 좋아하지만, 한국에서는 찍을 여건이 되지 않는다. 무턱대고 사람들에게 다가가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문화속에서 카메라는 아이돌 홈마들이 들고다니는 대포처럼 느껴진다. 뭔가를 찍고싶어서 카메라를 들면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저 사람 기자인가봐' 같은 시선. 나는 내가 카메라를 바꾸더라도 사진을 엄청나게 많이 찍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이카 M9 모노크롬 후기


그럼에도 나는 라이카를 샀다. 왜냐하면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카메라를 뜯어보는 순간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에 와닿고, 모든 카메라에 있는 그립이 없는 것 조차 매력적인 특징으로 여겨졌다. 라이카 딱지가 없는 수광창은 매끄럽고, 얇은 바디에 비해 묵직한 무게가 헤리티지를 담은 것 같이 느껴졌다아님. 고급스러운 매트한 블랙의 카메라는 흑표범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실제로 매장에 가서 들어본 것과 또 달랐다. 이건 내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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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카메라의 정수인 M시리즈, 그 중에서도 디지털 1-2세대인 M9 모노크롬은 불편하다. 오토포커스 모드는 없고, 그래서 모든 노출을 수동으로 맞춰야 하며, 라이브뷰가 안 돼서 LCD 화면을 보면서 초점을 맞출 수도 없다. RF, 이중상합치는 흔히 접할 수 있는 필름의 그것과도 달라서 익숙해지는 것에 시간이 걸린다. 수동 조작은 느리고, 원하는 순간을 빠르게 포착하지 못하기 십상이다. 존 포커싱을 할 수 있지만, 난 아직도 존 포커싱을 익히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카메라를 사고 사진을 전보다 훨씬 많이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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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카메라는 휴대폰과의 차별화를 위해 휴대폰은 따라할 수 없는 기능들이 들어가있다. 센서의 크기 차이가 절대적이기에 센서만으로도 휴대폰을 압도하기는 하지만, 그런 기능들이 하이 아마추어의 구매욕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능들을 보유한 자신이, 마치 그것을 사용할 것처럼 느껴지는 탓이다.

그러나 내가 옛날 글에서도 썼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다르다. 나의 기존 캐논 R7은 사진-영상 전천후 카메라였다. 크롭의 기능을 대폭 활용해서 탐조를 할 수도, 연사 기능을 활용해서 스포츠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기능을 다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 그런 기능은 원하면 사용할 수 있지만, 정말 그러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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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전형적인 아마추어 입장에서, 나는 캐논 R7의 기능의 20퍼센트도 다 못 썼다. 카메라를 팔기 아쉬워서 괜히 읽은 설명서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이 우후죽순 쏟아지기도 했다. 내게 과분한 카메라였던 것이다.


약간의 제약은, 창의력을 키워주기도 한다. 각종 시각매체가 판을 치지만, 아직도 글을 읽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이다. 글이 불러일으키는 상상력은 시각 매체의 그것과 또 다르다. 나는 라이카를 사용하면서 사진이 흑백으로만 찍히리라는 프레임으로 빛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존에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던 색감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고, 흑백의 계조와 빛이 지금 내 시각을 어떻게 표현해낼 것인가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색감에 정신이 팔려 빛을 신경쓰지 못했다면, 지금은 빛이 정말로 사물을 어떻게 조각하는지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잘 한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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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물리적으로 조작 가능한 셔터스피드와 조리개, ISO에 대한 감을 잡으면서, 자동으로 노출 보정이 되던 R7에 대한 아쉬움을 없애주었다. 자동 노출 보정은 엄청나게 편리하지만, 때로 견딜 수 없이 밋밋한 사진만을 만들기도 한다. 이에 더해 이중상합치를 직접 조절하며, 작은 초점 박스가 겹치며 사물이 선명해질 때에 누르는 셔터의 느낌은 내가 사진을 직접 만들고 있다는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준다. 물론 모든 카메라는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 선천적으로 할 수 없는 것에서 오는 제약이 장점이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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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사진에 미치는 영향은 내 생각보다도 엄청나게 컸고, 명부에서 암부로 넘어가는 빛의 계조에 아름다움을 느꼈다. 특히 사진 편집을 시작하면서, 암부를 밝게 끌어올리면서 나타나는 디테일들은 R7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컬러필터가 없고, 그래서 빛 입자들을 걸러 받지 않는 흑백 필터 덕에 고운 그레인이 생긴다...는 말은, 사실 사진을 직접 만지는 나를 제외하면 쉽게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걸 눈치 챌 사진가들도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컬러를 흑백 변환한 것과 이 흑백 사진만 찍히는 카메라의 차이는 눈으로 알아채기 어렵다. 특히 사진의 결과가 커다란 실물의 프린트가 아니라, 인스타나 웹 사진용 콘텐츠라면.


라이카 카메라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지금 나와 있거나 앞으로 나올 모든 미러리스 카메라들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혹자는 사치의 끝판왕, 명품놀이 하는 카메라 회사로 라이카를 평가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만일 라이카에 컬러 사진만 찍을 수 있는 카메라들밖에 없었다면, 나는 라이카를 선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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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이 카메라를 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기존 카메라하고는 차별화 할 수 있는 카메라를 갖고 싶었다. 내 단점을 보듬고, 나만의 시각을 표현할 수 있는 카메라. 딸까닥, 하면서 돌아가는 버튼을 만지는 것이 좋다. 급하게 찍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 내가 구도를 잡고, 시간을 들여서 노출을 수정해가며 찍는 사진이 좋다. 흑백 사진만 찍히는 카메라를 샀다고 했을 때 미친놈처럼 보는 눈빛이 좋다.


만일 여러분들이 비효율적인 뭔가를 경험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굳이? 싶지만, 그렇게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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