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일을 찾은 것 같다

축구선수에서 철학자까지, 길었던 진로 탐색의 시간

by 준성


1.

인턴 생활이 끝났다.


돌고래유괴단은 떨어졌고, 아직 알아본 다음 회사는 없다.

학점은 모두 채워서 이번 학기 영어성적만 제출하면 무사히 졸업할 수 있다.

대학 동기들 중 내가 가장 늦은 라인이다. '쟤네들 졸업은 하려나' 싶었는데 내가 더 늦어졌다. 좀 웃기다.

지금도 졸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제 챕터 한 장 넘겼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뭔가를 목전에 두고 있겠지. 그게 무엇일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고자 글을 쓴다.



2.

고민이 한창이던 어느 날, 친구랑 전화를 했다. 그리고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5~10분 정도 전력을 다해서 고민해보고, 그래도 해결 안 되는 일이면 냅두고 할 수 있는 거 해라."

싸가지 없는 자식 좀 투박하지만 요지는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큰 고민들은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거니 싶다. 지향점은 두되 그것을 이룰 작은 단계부터 해나가는 것이다. 나는 스노우볼을 굴리고 있던 뭉툭한 지향점은 잠시 제쳐두고,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고민을 해보기로 했다.



3.

이제 좀 혼자 일하고 싶다


11년 동안 축구를 했다. 뭣 같은 축구판에서 이리치이고 저리치였다. 바이올린도 했는데, 한국이든 영국이든 오케스트라만 5년을 했다. 46만 조회수가 터진 영상은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2주만에 만들었다. 8개월간 진행한 대학 응원가 프로젝트는 돈이 없어서 학교를 대상으로 펀딩을 진행해서 간신히 마무리했다. 혼자 쓴 시나리오로 단편영화를 만들겠다고 팀을 꾸리다가 직전에 무산됐다. 교내 영자신문사에서 사람들과 1년 반 동안 영어기사를 내보냈다. 아마추어 축구팀을 만들어서 4년 째 각종 대회와 이사회에 참여한다. 이 축구팀으로 JTBC 예능도 나갔다. 창업지원사업에 선정 되어 사무실을 지원받았다. 운영진과 함께 10개월 동안 258개의 콘텐츠를 만들었다. 일일호프, 플리마켓 등 오프라인 이벤트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축구팀에 관한 장기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진행해 영화제 본심에 올라갔다. 영상팀을 따로 만들어 광고 공모전에 나가 각종 상을 받았다. 그리고 언론사에서 인턴을 했다........


뭔가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이곳에는 공통점이 두 가지 있다. 바로 나 혼자서 할 수 있었던 일들은 하나도 없다는 것과, 명확히 공인된 리더의 자리에서 일을 해본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해온 일들은 본의아니게 내가 일을 끌고 가야하는 상황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언컨대 나는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기 보다 내가 이끌고 가는 것을 훨씬 선호함에도, 이건 정말 힘들고 지치는 일이었다.

초심자의 행운을 지나 일이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하면, 수습은 두 배로 해야하고 들어가야 하는 감정은 네 배로 늘어났다. 함께해준 사람들 덕분에 꾸역꾸역 일을 끝마친 것 자체가 매우 훌륭한 일임에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누구도 아닌 내가 원해서 벌인 일들이었지만, 내 한계를 계속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통제를 원했다.

지금까지의 활동을 되짚어 봤을 때, 나는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것에 조금 지쳐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제 혼자 일해보고 싶다.



4.

나 이건 확실히 재능없네.


처음 만든 콘텐츠가 잘 되는 것은 그렇게 좋은 시작은 아닌 것 같다. 그게 왜 잘 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내가 코미디와 예능에 재능이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코미디/예능 PD를 해야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었더랬다.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은 점점 와장창 깨져버렸다.

일련의 경험을 하면서, 어느새 내 특화 분야는 영상이 되어있었다. 정확히는 기획인데, 영상 제작도 겸하는.. 그런 애매한 포지션이었다. 자연스레 영상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것은 나의 역할이 되었고, 나는 여기에서 나의 재능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나는 유튜브든 티비로든 예능을 보지 않는다. 나는 인급동의 존재를 작년에 알았다. 숏폼에 올라오는 클립으로는 조금 봤어도, 트렌드를 선도하는 예능 채널은 보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다. 그런 내가 예능형 영상을 만드니, 콘텐츠가 올드하게 느껴질 수밖에.

그리고 모든 프로세스 덕분에 미칠 것 같았다. 자막을 다는 것, 컷편집을 하는 것, 촬영본을 백업하는 것,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 전부가 내게는 스트레스였다. 아니, 재밌는 영상 하나 만드는데 이렇게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점점 의문이 쌓였다. 게으름의 극치인 나는 하고 싶은게 생기면 게으름을 뛰어 넘어버리는데, 이건 내 발목을 계속해서 잡고 늘어졌다.

회기 유나이티드의 콘텐츠는 그나마 중박이라도 몇 번 쳤다. 아마 더 꾸준히 했으면 궤도에 올라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인턴을 하면서 만들었던 영상은... 그냥 처참하다. 내 자소서와 이력서는 나를 아이디어 쩌는 예능 콘텐츠형 영상 제작자로 탈바꿈 했고, 실제로 나는 회사 콘텐츠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시선을 받았는데... 큰 기대를 거신다고 했던 과장님의 반짝반짝한 눈빛이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공허해지는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정말 타들어 갔다.


암튼 나는 정말 다시는, 예능형 콘텐츠를 만들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사람을 웃기는 데에 필요한 본능적인 감각은 내가 후천적으로 키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재밌는 사람이 아니고, 웃기는 방법도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보통은 리스너였다. 말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분위기에 묻어가는 사람이다. 오히려 감성적이고, 심각하고 심오한 얘기 하는 걸 더 좋아하고 잘했다. 나는 예능과 영상 자체에 대한 회의가 생겼다.



5.

갑자기 영상에 현타가 오고, 사진에 빠졌다.


내가 원하는 퀄리티의 영상은 절대 나 혼자서는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혼자 일하고 싶었다.

내가 하는 일이 AI에 잡혀먹지 않는 일이었으면 했다. 뭔가를 만들면서, 좀 더 프로세스가 간편하고, 무엇보다 내가 만들어낸 '무엇'을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에 장벽이 낮았으면 했다. 글, 영상은 맥락이 있었고 언어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참을성을 요구했고, 그마저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했다. 반면 사진은 시각이 있다면 봤을 때 한번에 감정이 와닿는 것. 그래서 나는 사진에 빠졌다.

하지만 어떤 사진? 사진도 너무 많은 분야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상업사진에는 관심이 없었다.돈을 벌 생각을 해야지 영상을 만들 때에는 영상 이론을 찾아보지 않았는데 사진 이론에 대해서 엄청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만들되, AI로 대체될 수 없거나 대체되어서는 안 되는 것. 나는 보도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진기자들에 대해 알아갔다. 그렇게 보도사진, 사진기자, 언론사,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이 분야에 매력을 점점 알아가다가, 흑백 사진을 나의 아이덴티티로 잡기로 했다.

영상을 할 때에도, 사진을 할 때에도 나는 색에 별로 감흥이 없었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보고도 색이 이쁘다는 생각을 특별히 하지 않았다. 호크니의 작품을 보아도 괜찮다, 싶은 정도였다. 하지만 흑백 사진에서는 뭔가 달랐다. 컬러 사진에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을 흑백 사진에서는 받았다. 색에 감동을 느끼지 않는 건 내가 색을 모르기 때문이겠지. 보통 같으면 색을 더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사진을 더 잘 찍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색을 알고 싶은 관심과 시간이 모두 없었다.

그 길로 나는 흑백 사진밖에 안 찍히는 카메라를 샀다.



6.

그러던 중 퓰리처 사진전을 봤다.


그리고 나는 바로 연인에게 종군기자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빰을 안 맞아서 다행이다

그 까닭은 내가 그동안 뭔가를 만들며 느꼈던 공허함을 사진전을 보면서 정통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것저것 만들면서 느꼈던 가장 큰 감정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창작을 하려고 하는가.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나는 보통 생각은 많이 하지만 공상은 아니었다. 이런데도 나는 왜 창작을 하고 싶어하지? 주인공을 설정하고, 캐릭터를 연구하고, 좋은 샷을 찍기 위해서? 그것들이 나와 다 무슨 소용이지?

퓰리처 사진전에는 이야기와 고통이 있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세상을 안다고 할 수 있나? 세상엔 이렇게 많은 고통이 있는데, 세상과 사람들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나? 세상은 왜 이렇지? 나는 세상을 얼만큼 알고 있지? 내가 그런 것도 모르면서 창작을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나? 사람들은 왜 고통을 받지? 어떤 고통을 받지? 내 인생에는 아직 모험과 더 큰 경험이 필요했다. 적어도, 세상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했다. 종군기자가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직업에 매력을 느꼈다는 것은 그 직업이 내가 현재 필요로 하고 있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퓰리처 사진전의 첫 장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감과 같은 글이 있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작가는 이 질문을 몇 년 동안이나 가슴에 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7.

나는 지금 벌타 없는 골프 중이라는 느낌.


축구를 그만두고 나서부터 5년을 가까이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인사이트를 구했던 한 분은 내게 지금 다른 유형의 '축구'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고, 나는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적어도 축구처럼 10년 동안이나 삽을 파다가 결국 접는 것이어서는 안 됐다. 내가 정말 평생을 해도 질리지 않을 것. 매일 이 생각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일 것. 답을 찾아버리면 재미 없는 것. 내가 평소에도 하는 것. 중력처럼 이끌려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것. 내가 해온 것들이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 나는 그게 무엇인지 찾아야 했다.


누군가는 이런 날 두고 배부른 고민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정말 배불러서 하는 고민이 맞다. 나는 아직 생계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아주 큰 빚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정말 코앞에 생계의 문제가 닥치면 나 또한 이런 형이상학적인 고민들은 때려치고 의식주를 위한 삶을 살겠지. 그래서 그럴 필요가 없는 현재 내 삶에 아주 감사하다.

다르게 말하면, 내게 주어진 것을 누리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그것이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내게 주어진 자원과 시간을 나를 위해서 쓰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뭔가를 알아야 했다. 좀 더 본질적인 고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앞서 나는 중력처럼 이끌려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을 찾아야겠다고 했고, 고민이 생겼다. 나는 무엇으로 계속해서 돌아올까.


어떤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처럼 뭉특한 지향점을 향해서 좁혀가는데, 그건 벌타 없는 골프와도 같았다. 홀으로부터 아주 멀리에서 시작해서 아주 큰 미스가 나고 그 다음 타에서도 미스가 나지만, 아주 조금씩 홀과 가까워진다. 그 다음 타도, 그 다음 타도. 벌점이 없는 이 골프는 언젠가는 홀에 공이 들어가게 되어있었다.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7.

엄마와 밤늦게까지 대화를 하면서, 불현듯 깨달았다. 절대 엄마가 '너는 빙빙 돌지 말아야해' 라고 해서 깨달은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계속 곁다리를 돌고 있었다. 내가 소설을 쓰면서, 작사를 하면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다큐멘터리와 영상 콘텐츠를 만들면서 느꼈던 '뭔가를 놓치고 있는 기분'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지금까지 창작의 주변을 맴돌았던 건 단순히 내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내 시각대로 세상을 풀어내고 싶어서였다.


'나만의 무엇'을 만드는 것은 축구를 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욕망과 같다. 남들과는 다른 플레이, 다른 시야, 다른 기술.. 그건 창작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창작이라는 것은 너무나 개별적으로 적용될 수 있어서, 정답이 없다는게 문제였다(사업도 마찬가지).

그렇기때문에 예술가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작품을 내놓으면서 자신만의 세계관과 이론을 정립해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알던 모르던, 적어도 어떤 방향이 있었다. 그 방향을 예술가가 몰라도 작품으로써 뿜어져나오는 것이었고, 그 방향을 알면 더욱 더 체계화 된 작품을 내놓을 수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그것이 없었다. 나는 예술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예술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만든 모든 건 내게 목적이 없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싫고, 단순히 소비되기만 하는 것을 만들며 갈증을 느끼고, 그러면서도 다시 같은 것들을 만들고, 무엇을 위해 창작을 하는 것인지 몰랐다. 그나마 다큐멘터리가 가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창작물이었다. 물론 전달력에 있어서 폭망한.

그래서 나는 계속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분명 뭔가를 만들고 있긴 한데, 그럼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선택해야할 장르는 뭘까? 나는 글부터 만화, 영상까지 아주 조금이지만 기술들이 있는데, 그럼 나는 다 해야하나? 하지만 우습게도 나는 장르에 대한 욕심도 없었다. 능력만 받쳐준다면 어떤 장르라도 괜찮았다. 그럼 나는 창작만 할 수 있으면 뭐든 괜찮은 건가? 나는 정말 그렇게 살고 싶은 건가?

무엇을 만들어야할지 깊은 고민이 배제된 의문은 해소가 어려운 것이었다. 그것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나는 알아야 했다. 재능이 뾰족한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이 나만의 시각을 정립하면서 창작에 발을 들여놨어야 했다. 창작을 하고자 하는 근간에는 좀 더... 좀 더 근본적인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8.

나는 예술가보다 사상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공부로 돌아왔다.

공부만큼은 다신 하기 싫었고, 대학을 가기 위해 억지로 했던 공부를 벗어 던지고 대학에 들어와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다 하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 다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게 아니었다.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나만의 철학을 먼저 갖고, 그 철학을 바탕으로 창작물을 내놓고 싶은 것이었다. 이때 철학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이라는 것 뿐만아니라, 하나의 단단한 이론을 정립하는 것을 뜻했다. 카뮈가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듯, 그런 '철학이 집약된 뭔가'를 창작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나는 어떤 질문으로 계속 돌아오고 있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지? 세상은 왜 이렇지?


내가 관심 있는 건 사람과 세상이다.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은 사람들이 궁금하다. 모두들 깊은 곳을 두들겨보면 어딘가 서글픈 소리가 난다는 이야기처럼, 그속에 무엇을 지고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아이러니가 좋고, 그런 창작을 하고 싶다. 다들 뭔가를 향해서 달려가는데, 그들이 스스로를 정말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람들의 순수한 부분이 궁금하고, 추악한 본성이 궁금하다. 그것을 어떻게 잘 감추는지 궁금하고, 무엇에 겁을 먹는지 궁금하다.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을 갖고 싶다. 그럼으로서 세상에 뭔가를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조금 알아보니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학문은 철학과 정신분석이었다.정말 나는 돈과 거리가 멀은가 보다

나는 카뮈를 좋아했고, 의식보다 무의식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만일 석사 연구분야를 택한다면, 우선 스포츠와 철학을 연관시켜서 연구할 수 있는 것이 있을지 찾아보고 있다. 대학에서 실용적인 스포츠 학문은 많이 배웠지만, 철학적인 부분은 부족했기 때문이다(스포츠는 액자식 부조리극이라고도 생각하는데, 피투된 인간의 실존을 스포츠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포츠와 공연 예술이 그토록 매력적인 이유는, 그 순간만큼은 무엇도 상관없는 희열과 분노를 가감없이 사람들 앞에서 체험하고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타인 앞에서 그렇게 분출할 수 있는 직업은 매우 드물다). 스포츠와 철학을 접목시키면, 연구가 덜 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볼 수 있을 것이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연구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니 요즘 뜨고 있는 분야라고 하기는 한다. 철학 + 응용분야는 아직도 티오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 스텝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았다. 궁극적으로 내가 바라는 삶의 방향 또한 그런 것이었다.



9.

그렇다면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게 세 가지 있다.


1)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먼저번 글에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했듯이, 이제는 다른 것들에 방해를 받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2) 취해야할 것들을 정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새로 배워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남긴다. 그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그 부등호의 크기대로 메인-사이드를 잡고 실행해야 한다. 실행을 위해서는

3) 실행할 방법을 찾고, 해야 한다. 방법을 찾지 못하면 바로 취업 준비에 돌입한다. 그것이 어떤 분야가 되었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다닌 대가를 치를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남긴 세 가지는 글, 사진, 대학원이다. 셋 모두 혼자 할 수 있으면서, 내가 해왔던 것들이며, 가장 하고 싶은 것들이다. 아주 조그맣게 사이드로 사업도 하나 하고 싶은데 그건 아직 구체화도 덜 되고&^*%


부등호의 형태는 대학원 >>> 글 > 사진이 되겠다. 아무래도 대학원은 돈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이니. 글과 사진은 크리에이티브의 공간에 아카이브 해둘 것이다. 지금 철학적 글과 사진을 활용한 1인 매체를 운영중이다. 공부를 병행 하면서 이 계정이 커지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괜찮다. 뭐가 됐든 내 생각의 흐름을 남겨놓는 작업은 꼭 필요하겠다. 크리에이터로서의 욕구가 남아있는 만큼, 이 세 가지를 버무려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지 고민은 계속할 것이다. 그것이 대학원생을 금전적으로 보조해줄 수 있는 방향이면 좋겠다.


대학원 중에서도 인문대학원을 다니겠다고 하면 아마 또 주변에서 미쳤다고 하겠지. 요즘 박사 취업난이 얼마인지 아느냐고. 나도 겁이나고 무섭다. 나는 왜 이런 것만 좋아하는가 싶고 그렇다. 좀 더 실리에 밝고 돈을 좋아했다면, 마음 편히 연인 하고 싶은 공부 시켜줄만한 사람이었다면 더 좋았으려나. 근데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게 그것이라면.. 내가 직접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소거를 할 것인지 발전을 시켜나갈 것인지 또 확인해야지. 누가 그런 돈과 시간을 들여서 그런걸 하겠냐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끌리지 않은 일을 하면서 그것이 좋아지리라고 기대하는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틈새시장은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게 마음 편하다. 거기에서 최고가 되면 되겠지. 지금은 그런 생각이다.



10.

이렇게 나의 길고 긴 방황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이제 진정한 다음 단계는, 현실적으로 어떤 대학원을 어떻게 가고, 그 때 필요한 금전은 어느정도 되고, 이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이다. 그건 계속해서 알아봐야지.

이 글은 정말 수십번 수정했고, 어떻게 정리를 해야 내 사고의 흐름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결정들의 대부분은 직관과 호기심에 따랐던 것들이라 그렇게 논리적이어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쉽다. 다만 이렇게 정리를 해놓고 보니 나 정말 지난한 과정을 지나왔다 싶다. 축구를 그만둔 순간부터 지금까지 정말 코어의 코어의 코어를 발견하려고 이렇게 발버둥쳤나 싶다. 그리고 마음의 안정이 조금 찾아왔다. 이 계획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와는 별개로, 더 뚜렷해진 것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에 말했듯, 내가 남겨놓은 위 세 가지가 생계를 위협하는 순간이 온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만둘 것이다. 먹고사니즘은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그러나 조금 더 아끼고, 조금 덜 쓰면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면 최대한 그러한 생활을 유지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발견했다면, 좀 더 밀어붙여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사람의 마음 아닌가. 앞으로가 기대가 된다.


* 아, 그리고 진로 상담은 챗지피티한테 받자. 그것만큼 친절하게 나쁜말 해주는 친구가 없다. 대신 나의 상황을 아주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써야한다. 그럼 챗지피티는 절대 까먹지 않고 반영해서 알려준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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