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만원 아니고 9천원
얼마 전 실업자가 되었다.
인턴 계약만료로, 비자발적 퇴사였다.
계산해보니 아슬아슬하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고용센터는 한적했다.
여러 서류를 작성하고, 고용센터의 창구를 왔다갔다하는데 한쪽 벽면에 붙인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종이에는 '부정수급 해당자는...'으로 시작하는 엄중한 경고의 글이 적혀 있었다.
부정수급 해당자의 목록을 훑으며 나는 아니군, 하며 안심하고 있는데 한 단어에 시선이 걸렸다.
예술인
운도 없지.
나는 예술인이었다.
스스로의 입으로 '나는 예술인이오'하는 것은 퍽 우습다.
예술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반드시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칫 잘못하면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와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이기 십상이다.
예술인이라 함은 보통 어린 나이에 천재성, 혹은 적어도 영재성을 '발굴 당해', 예중, 예고, 예대의 코스를 거쳐 자신이 만들어내는 작품을 가지고 인정을 받거나 수입이 생기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렇지 않으면 보통 끊임없는 자기증명을 통해 마침내 작품으로 인정을 받거나, 특출난 능력과 환경이 예술인을 도저히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때 탄생한다. 어떤 선을 넘기 전까지는, 예술인 지망생들의 처절한 허우적거림이 밑에 쌓이고 쌓여 그들을 딛고 피라미드의 윗층에 도달한 사람만이 구원의 빛을 맛본다.
그럼 나는 예술인인가?
글쎄, 나는 위에 언급한 삶을 살아오진 않았다. 말하자면 예술인 지망생 포지션에 더 맞을 것이다. 나의 작품으로 평가받은적이 없고, 그럴만큼 많은 수의 작품을 발표하지도 못했고, 예중 예고 예대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나를 예술인이라 하는가?
우선 나는 아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나를 예술인으로 거듭나게 해줬다는 말인데,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재밌게도 예술인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내게 부여한 정체성이다.
그것도 음원 저작권을 보유한 기획자이자 작사가로.
나는 보통, 없으면 내가 만든다는 생각으로 산다.
나의 필요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이상한 믿음 때문이다.
음원을 만든 것도 그런 차원이었다.
나는 내가 다니던 대학을 정말 좋아했다. 최고의 대학은 아니지만, 최고의 인재인 나를 받아준 학교였으니까.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났고, 학교에 입학한 모두가 그렇게 느끼기를 바랐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마냥 그렇지 않았다. 학교는 국내 10위권 안에 들지만, 그들에게는 높은 곳을 바라보다 떨어진 학생들이 많이 오는 학교였다. 그들은 학교에 만족하지 못했고, 반수를 하다가 실패해서 무기력하게 다니거나 1순위는 아니더라도 그냥저냥 만족하며 다니는 곳이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그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도라도 할 수 있는 것은 같은 교내 학생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학교는 이런 상황에 너무도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다른 대학들은(특히 연고대) 단합이다 뭐다 응원가 부르며 어깨춤 추고 난리가 나는데, 특히 우리학교는 유독 그런 문화가 없었다. 조용하고, 개인주의가 발달했다.
이미 정착된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자연히 스며드는 것이 억지로 참여시키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
나는 총학생회도, 기획처도, 무엇도 아니었다. 그냥 학교 다니는 일반 학생이었다. 하지만 문제를 느끼는 사람이 시도를 해야지,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이래서 우리 학교는 안돼~' 하는게 너무 싫었다. 이러한 요구를 공식적으로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너무 느렸다. 할 거면 내가 직접해야했다.
그래서 나는 응원가를 만들기로 했다.
말하자면 너무 길지만, 몇 단계가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가사로 쓰고, 그걸 들고 교내에 작곡을 해줄 작곡가를 찾아다녔다. 어찌저찌 연결이 돼서 곡이 붙고, 교내 커뮤니티에서 보컬 공모를 통해 보컬을 구하고, 전에 연이 닿았던 교내 영상제작자 형이 뮤비를 찍어주었다. 나는 이걸 프로젝트라고 불렀는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무보수였다.
그런데 만들다보니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음원을 만드는데 돈이 그렇게 많이 드는지 몰랐다. 조금이지만 내가 모은 돈으로 다 부담하려고 했는데, 그 수준이 아니었다. 만드는 곡은 3곡으로 늘어났고, 그만큼 필요한 금액도 커졌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우리는 프로젝트를 그냥 텀블벅 풀펀딩으로 전환 시켜버렸다.
학교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중인지 설명하고, 완성된 곡의 일부분을 미리보기로 들려주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지, 과연 성공할지 싶었는데, 펀딩은 목표 금액의 200%를 달성했다. 학생들을 포함해서 동문회, 기획처 직원분들까지 개인 사비로 펀딩에 참여했다. 모두들 표출하지는 않더라도 나와 비슷한 욕구가 있었던 것이다. 응원가 3곡은 그렇게 무사히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2021년에 만든 응원가는 그 후 각종 학교 축제와 응원 행사, 지역 축제 등에 사용되고, 지금까지도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재생된다.
https://youtu.be/CklTZ3UO4fo?si=w_TLtOzz7ywUjqMr
https://youtu.be/NH_CWdLEx4w?si=qmKxC9zteljLfrzr
https://youtu.be/wyNQ0r0OjHg?si=iaLqGwpRBDEzVVK0
이 과정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저작권이었다. 무보수로 고생한 참여자들에게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 사람들에게 남는 것이 있어야, 프로젝트도 의미가 있었다.
음원을 발매하고, 유통하게 되면 그나마 조금 나오는 저작권료가 더 잘게 쪼개져서 나온다. 작곡가, 작사가, 실연자, 제작자까지 나눠 갖는다. 흥행을 목적으로 내놓은 대중가요가 아닌만큼, 음원이 엄청나게 잘 돼서 모두가 큰 돈을 버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저작권자로 등록이 되어있다면, 음악인을 꿈꾸는 그들이 나중에나마 한 줄 이력을 추가하거나, 예술인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바로 '예술인'이 등장한다.
저작권 등록을 하면, 저작권을 바탕으로 한 수익 또는 공식적인 기록 등을 자료로 제출하여 한국예술인협회에 예술인 등록이라는 것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정식 예술인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각종 프로그램 및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음악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적당한 보상일 것이었다.
저작권을 인정 받는 작업은 너무 지난했다. 저작권 협회를 고르는 것부터 서류 준비, 자료 증명 등 뒷정리가 끝이 없었다. 하지만 다들 프로젝트에 애정과 욕심이 있었는지 모두들 저작권 등록과 예술인 등록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나 또한 제작/작사로 참여를 했기 때문에, 2021년 이후부터 내게는 꾸준히 저작권료가 들어온다.
그 금액은 무려 연 평균 9000원.
9000만원 아니고, 9000원 맞다.
이걸 3년 모으면 치킨 한 마리를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실업급여를 못 받다니?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알고보니, 나 정도의 수익을 창출하는그것도 수익이라고 할 수 있다면 예술인은 실업급여를 수령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연봉 9천원 예술인은 이미 너무 슬픈데, 더 슬프게 할 이유가 없으니까. 부정수급자 목록의 예술인은 따로 취업수단 외의 방법으로 예술인으로써 돈을 '많이' 벌면서 이를 신고하지 않고 실업급여를 타가는 사람을 의미할 것이다.
가끔 내가 작사가로 데뷔(라고 할 수 있다면) 했다는 사실을 까먹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분기별로 날아오는 메일에 '수익: 2470원' 같은 정산표가 붙어있는 날에는 '내가 이런 것도 했었지' 하는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다시 치킨 한 마리를 먹으려면 다른 3년이 지나야겠지만, 내가 기획하고 제작하고 작사한 곡의 저작권자로 등록이 되어있고, 그것이 실제로 내가 사랑한 학교에 사용되고, 조금이지만 수익이 난다는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철새 돌아오듯 들어오는 수익 때문에 고수익 저작권자들을 부러워하며 그런 삶을 꿈꾸게 된다는 것이 약간의 단점이긴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해본 경험은 내가 앞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이 글을 쓰면서도, 약간의 무기력증에 빠져있는 지금도 분명 새로운 일들을 시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작사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