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 썼는데 못 이뤄서 부끄러운 글
뜬금없는 주제지만 사실상 고등학생 때부터 들어온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직장을 다니시던 아버지가 퇴직을 하고, 좋은 곳에 재취업을 하셔도 변함없이 철저하게 계획되고 내게 업데이트 되던 그것. 바로 부모님의 노후준비다. 사실 얘기할 것은 노후준비 그 자체 보다는 그것과 관련된 내 생각들이다.
우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부모님의 노후 계획을 듣는 것이 절대로 내게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님을 밝힌다. 오히려 자식으로서는 좋아해야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부모님의 노후가 철저하게 계획 되어 있다면 그만큼 자식에게 가는 부담은 줄 것이고, 나로서는 외동과 늦둥이라는 나름의 압박(?)에서 탈피해 자유로워질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아린 것은 이 주제가 지금까지 일부러 피해오던 부모님의 노화와 직접적으로 맞닿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어도, 그리고 그만큼 알지는 못해도, 부모님의 노후는 꽤나 탄탄하게 준비 된 듯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준비를 했음에도 아버지는 지금도 매일 밤늦게까지 은퇴와 노후 관련 유튜브를 정독하신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앞으로 은퇴 후 소득과 소비 그래프가 잔뜩 그려진 이면지들이 테이블 위에 어지러이 흐드러져 있다. 그리고 저녁이면 달라진 내용들을 내게 업데이트 해주신다. 그럴 때면 정말 순수하게 신나 보이셔서 가만히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어도 한두 시간은 훌쩍 넘어간다. 언제까지 일 하고, 언제부터 연금이 나오고, 퇴직금을 어떻게 분배해서 사용을 할 것이며, 이보다 더 오래 일한다면 +@가 얼마나 될 것인지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말씀처럼만 된다면 걱정은 없어 보인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나까지 고무적이 된다.
그러다 요양원 얘기가 나오면 움찔한다. 인지부조화가 오는 것이다. 어라 아직 그런 얘기가 나올 때가 아닌데. 아직 한참 남았지 않나? 부모님의 입에서 요양원 얘기가 나오는 것이 외국의 방언처럼 어색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넘어 둘 중 한분이 돌아가시고 나서의 노후 계획을 들을 때는 찰나지만 깊이 우울해진다. 어느새 우리 부모님이 여기까지 와 있나. 죽음을 논할 정도로 끝이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인가. 그러기엔 이른데.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닌데, 벌써.
어떤 나쁜 의도로 내게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전혀 아님을 안다. 부담을 주려는 것도, 탓을 하려는 것도, 내게 기대를 하는 것도 아닌 당신들의 미래를 이렇게 준비 해놓으셨다는 것을 자식인 나에게 얘기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내가 부모님의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아들이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의기소침해지는 것이다. 큰 성공과 명예와 부로 부모님을 기를 살려드리진 못해도 자기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 할 것 아닌가. 모기처럼 부모의 등에 올라타 등골을 쪽쪽 빨아먹는 인간이 되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데. 그럴 의도도, 그렇게 생각 안 하실 것도 너무나 잘 아는데도, 그냥 무능력한 현재의 내가 싫다. 드라마에 나오는 아들들처럼 엄마! 해외여행 다녀오세요! 아빠! 자 여기 선물 벤츠!! 하고 싶다.
이러한 고민은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과도 연관이 없지 않다. 아직도 나는 내가 성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성공으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고 부모님의 흰머리는 너무나 뚜렷하다. 나는 단지 내가 지금까지 부모님에 의지해 산 것처럼, 나도 부모님을 기꺼이 도와드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내가 목표가 있다면 아버지가 더 연세 드시기 전에 은퇴를 시켜 드리는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포함된 노후 계획을 위해 4년 더 일하실 계획을 갖고 있고, 큰 변수가 없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그 전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다면 아버지는 더 일하실 필요가 없어진다. 나는 이제 아버지가 당신의 삶을 온전히 즐기고, 엄마 모시고 여행도 다니시고, 취미도 즐기고, 여유롭고 행복했으면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2년 안에 내가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야 한다. 내가 부모님을 직접적으로 부양할 능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나 혼자서라도 부모님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2년은 현재 공익을 하는 시기와 어느 정도 맞물려있고, 때문에 이 시기가 내게 있어서는 중요하겠지. 뭔가 길목에 서 있는 것 같다. 흔한 패턴이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내게는 언제나 이상이 앞서지만,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을 택하는 현상을 나는 피해갈 수 있을까. 선택지가 있는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만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지만 어려운 문제다.
늘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무너진다. 아직도 내게는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고, 부모님의 노후는 멀어 보이고, 나는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고, 완벽한 시작을 원한다. 주변의 다른 동기, 후배들이 연구다 실적이다 대학원이다 취업이다 교환학생이다 하는 걸 보면서 위기감 같은 걸 느끼기는 하는데, 이 위기감이라는 게 금세 익숙해지는 성질의 것이어서 신발 밑창에 달라붙은 껌처럼 거슬리면서도 어느새 그런대로 함께 사는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그러지 말고 좀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살자고 다짐을 해본다. 그치만 어떻게? 그런 순환질문들에 빠져 살고 있는 요즘이다.
.....라는 글을 쓰고 4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아버지는 은퇴하셨고, 나는 여전히 이룬게 없다.
뭔가를 부지런히 했던 것 같긴 한데, 간신히 빌붙어 사는 것을 면하고 있을 뿐 호강시켜드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자괴감은 웬만해서 느끼지 않지만, 이 기간이 길어지면 느낄 것도 같다.
혼자의 힘으로 가계를 이끌어오신 아버지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가정을 성공적으로 돌보신 엄마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내가 그 절반이라도 따라가면 좋을 텐데.
부끄러운 글이어서 조금 고칠까도 싶었는데, 그 당시에 느꼈던 거라 수정 없이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