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백수의 크리에이터적 사고 (1)

by 준성

요즘 브랜딩에 대한 생각을 많이했다.

왜냐하면,

몇 주 전까지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아이템과 실행 방법을 찾아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그러다 또 지쳐서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인간은 배워야하는데 나는 배우는게 없다.

할 거면 쇠뿔 단김에 빼듯 착착착 실행력 있게 가야하는데, 방귀인줄 알았는데 똥이어서 급하게 항문을 닫듯 늘 뭔가가 턱 걸린다. 뻗어나가던 생각의 속도가 느려지면, 다시 현실로 내려앉아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나를 보게 된다. 그런 것들이 나를 지치게 한다.


분명 내가 전달하고 싶은 핵심 가치와 이야기는 있는데, 그걸 아이템으로 정하려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굳이 아이템으로 돌려야하나 싶고... 나는 돈머리가 없는데 굳이 리스크가 큰 사업을 벌여야하나 싶고... 결국에는,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사업을 하는 내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허하다.

나는 사업에 대해 잘 모르고, 팔고 싶은 아이템도 없는데 돈은 많이 벌고 싶다.

의지와 확신이 있다면 당연히 하겠지만, 그럴만큼도 아닐뿐더러 갈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자꾸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시도해볼법 한 상상들만 하게 되고, 0에서 1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잘 예상하지 못한다. 해본적이 없으니, 당연하다. 현실과의 갭이 너무 크니 조급해지고 막막할 수밖에.


그래서 요즘은 다시 붕 뜬 느낌을 의식적으로라도 가라앉히려고 노력중이다.

욕심을 좀 줄이고,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주변에서 찾고 있다.


브랜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특출나진 않지만 그나마 가지고 있는 내 능력들을 고루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기획력, 실행력, 글쓰기, 영상, 사진, 그림... 하나가 특출나진 않아도 브랜드를 디렉팅하는 입장에선 조금씩이라도 갖춰야하는 것들 아닌가? 그래서 브랜드를 하려고 했다. 이 능력들을 다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이유와 비슷하다.


내가 가진 것들을 활용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걸 활용해서 내가 '정말로' 만들어내게 될 것이 무엇인지는 조금 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단발성이 아닌, 지속가능하도록 하려면 내 깊은 곳에서부터 기인한 동기이자 능력이어야 한다. 이건 모든 사람이 그런건 아니다. 아무일이나 시작하면서 거기에서 애정을 붙여가며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켜나가는 사람도 있다. 단지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닐 뿐이다.


좋은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창작과 비슷한 것 같다.

세계관도 잡고 타겟도 잡고 스토리도 좋아야하고 서사가 있으면 팬이 생기며 성공하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난하다. 그런데 무엇을 선택하든 지난할 것이라면, 기왕 그럴거 그 과정에서 얻는 행복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야가 좋지 않을까?


난 보통 최상의 시나리오를 살려고 노력하는데, 그것이 안되니 매번 기대하고 실망하고 실패한다. 그래서 좀 보수적으로 마음을 먹고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니 실은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파랑새는 없을 수도 있었다. 나는 열정도 재능도 딱히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고, 현재의 나를 제3자의 입장으로 본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보일 것이라는 거다.


재밌게도 그러다보니 되려 마음이 편해지고 있다. 붕 뜬 상황을 착 가라앉히고, 그럼에도 내가 남들보다 빛나는 무언가를 분명 갖고 있다면, 그것을 중심으로 발전시켜나가보기로 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점차 수면위로 올라갈 것이다.


대학원 떨어지고 백수가 된 이후로 마음이 급하지 않고 오히려 잔잔해서 신기하다고 쓴 글이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마음가짐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진흙떼기처럼 치덕치덕 붙어있던 것들이 떨어져나가면서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결국엔 자신이 추구하는게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느껴진다면 잠시 눈을 돌려 바로 내 옆에 손이 닿는 아주 조금의 능력부터 발전시켜야 하는 것 같다. 기술과 능력이란 사슬처럼 연결되어 하나식 스킬트리 깨듯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지, 한번에 발전하는 무언가가 아니니까. 그러다보면 동떨어져보이던 것들이 연결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겠지. 단지 그뿐이다.


거창한 도전과 주변의 인정을 받는 것은 마약과도 같다.

'넌 뭐라도 될 놈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뭐라도 벌써 된 것 같다.

자신감은 좋지만,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진정 발전하는 이들은 그것과 상관없이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이 남는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내가 가진 능력은 무엇인가?

그것으로 내가 이루고 싶은 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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