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크리에이터적 사고 (3)
이제 나는 스스로에 대해 꽤 안다.
억지스러운 노력은 그만둬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 시리즈의 결론은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구분하고,
<하고 싶은 것> 중에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누구든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되는 건 차원이 다른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다. 추상적인 행복을 향한 억지 노력은 불행을 낳는다. 그러니 거추장스러운 건덕지들은 덜어내고 스스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들여다 보는 게 중요하다.
요즘 다들 로스쿨 좋아하니까 로스쿨로 예를 들자.
로스쿨에 들어가면 좋은 대접을 받고,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좋은 삶의 기준에 따라 다르다. 본인이 추구하는 삶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공부 길에 들어서면 예상과 다른 현실에 좌절할 수도 있다. 공부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을 생각해보자.
하지만 그렇게 하고나서의 결과가 어마어마한데? 그 정도는 참아줘야 그런 보상이 따라오는 거지. 네가 변호사 연봉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지금 알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런 삶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에 맞는 공부를 해야 한다. 아니라면, 그건 마이너스를 들여 플러스를 얻는 0의 삶과 같다.
네가 정신승리하는게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아? 할 깜냥이 안 되니까 이런 식으로 말하는거 아니야?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두려워하는지 알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잘 들여다봐야한다. 야망과 성공의 욕구가 자신을 이끄는 원동력이거나, 억울한 사람들에게 연민의 진심을 담아 그들을 구제해주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변호사가 되는 것이 행복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사람은 불행할 것이다. 그래서 자꾸 상상해야한다. 내가 변호사가 되지 못하면, 나는 불행할까? 나는 왜 공부를 할까? 이거라도 갖지 못하면 나는 패배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돈이 중요한 거라면 다른 일은 안 되는 걸까? 남의 인정은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늘 이런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자수성가한 부자가 강을 건너는 것을 도와주는 뱃사공의 배를 타며 나누는 대화이다.
부자: 당신, 성공하고 싶지 않아?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갖고 싶지 않냐는 말이야. 이런 시골에서 뱃사공이나 하고 있으면, 인생에서 이룬 것이 하나도 없잖아?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이 뿌듯하고, 남들의 인정도 받지. 그들은 나를 존경하고, 내 아이들은 모두 사립학교에 다니고 아내는 100만원짜리 헤어샵에 다녀. 이런 삶이 부럽지 않아? 인생을 성취해야지. 그래야 인간다운 삶이지.
뱃사공: 정말 대단하시네요. 듣자하니 당신은 정말 성공하신 분 같은데, 어떤 삶의 목표가 있어서 여기까지 달려오신 건가요?
부자: 뭐긴, 한적한 곳에서 가족과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것이지.
뱃사공: (웃으며) 제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걸요.
하고 싶은 말은 뱃사공의 삶이 옳다는 말이 아니다.
뱃사공이 진취적인 성격이었으면 그의 삶은 불행했을 것이다.
행복만큼은 극단적인 주관주의로 가야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사는 총량의 1/3을 일을 한다면, 난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고 싶다.
자신에게 차고 넘칠 만큼의 돈이 있을 때에도 하고 싶은 것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내게 그런 돈이 있다면 남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좋은 글을 쓰고,
좋은 사진을 찍고,
좋은 영화를 만들고,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지금 바로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없다.
이게 중요하다.
그 전의 나는 최종적인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꿈을 그려왔다. 그랬더니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너무 컸고, 그러다보니 완벽주의에 빠지고, 지속성은 형편없이 떨어지며, 금방 그만 두고 쉽게 결과를 낼 수 있는 다른 것들(아닌데도)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중요한 건 본질이다. 지금 당장 최상의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면, 내가 지금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의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 나는 내 생각이 담긴 뭔가를 만들고, 그게 내 기준에 흡족한 것이 좋다.
여기에서 현실을 크게 위배하지 않으면서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실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글을 쓰고 있다. 주제는 에세이, 소설 등이다. 에세이는 스스로 짜치지 않고 담백하게 쓰려는 연습을 하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다 보니, 조금씩 반응이 오는 글이 생긴다. 글로 그런 반응을 얻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다. 소설은 하루에 두 페이지를 쓰고 있고, SF 단편소설이다. 전에 신춘문예에 도전할 때와 달리 어떤 소설을 쓰는게 잘 썼다고 인정받을지 고민하지 않게 되니, 전에 느끼지 못한 소설 속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경험을 조금씩 하고 있다. 그래서 신기하다.
사진을 찍고 있다. 아직 출사 경험은 많지 않지만, 난 사진이 좋다. 원래 사진 계정이 있었는데, 계정이 너무 많아지는게 짜증나기도 하고 아예 크리에이터로써 정체성을 가져가볼까 싶어서 그냥 본계정에 사진을 올리고 있다. 홍보를 안 했는데도 사진가들이 나를 조금씩 팔로우하는게 신기하다. 출사하러 나가기 위한 귀차니즘을 극복하는 것이 숙제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사진의 주제도 조금씩 잡히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있다. 실력이 좋지 않아 부끄러워서 비밀 계정을 만들었다. 그림으로 릴스를 업로드 해 반응을 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열흘 사이에 15개를 올렸다. 처음에는 몇십회도 나오지 않던 릴스 조회수가 지금은 평균 2천회 정도 나오고 있다. 나는 내 캐릭터를 갖고 싶다. 심슨이나 잭 스타우버처럼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를 섞은 내 세계관을 갖고 싶다. 언젠간 이걸로 이모티콘도 내고 캐릭터 페어도 나가보고 싶다.
그럼 이걸 가지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아직 모른다. 다만,
하던 걸 계속 할 것이다. 글 쓰고, 사진 찍고, 그림을 그릴 것이다. 이것으로 내가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냥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사진 인플루언서들이 나를 먼저 팔로우를 해주고, 그림 계정에 올린 릴스가 조금이지만 공유와 저장, 좋아요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신이 난다.
기회가 된다면 유튜브를 할 것이다. 원의 독백 같은 채널을 하고 싶다. 그런데 가진게 영상 안되는 카메라와 캠코더밖에 없으니, 있는 걸 활용해서 영상을 만들 것이다. 사진+영상 에세이 정도 될까. 그냥 내 생각들을 글로 쓰는 것처럼 담백하게 표현해 보고 싶다. 아직 구체적인 방법은 모르겠다.
장기적으로는 내가 만든 것들을 모아놓은 나만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싶다. 인스타, 유튜브, 브런치... 이제 시작하는 크리에이터들에게 너무 감사하고 좋은 플랫폼들이다. 그렇지만, 알 수 없는 그들의 기준에 흔들리는 크리에이터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원래 SNS도 싫어했지만... 결국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야만 한다. 만약 내가 창작자로써 성공한다면, 모든 SNS를 지우고 만든 것들을 내 홈페이지로 옮겨놓고 사람들과 그 공간에서 직접 소통하고 싶다. 이건 너무 나중 얘기라 모르겠다.
어쨌거나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봤지만, 본인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걸 아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런 사람들은 잘 흔들리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조금씩 안정되는 것 같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건 자신이 브랜드가 되는 수밖에는 없다.
비단 크리에이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단체에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판을 자신이 짜야한다. 그렇게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모두는 크리에이터라고 불려야 마땅할 것이다.
잊지말아야할 것은 조급함을 버리는 것이다. 회기 유나이티드에 대한 큰 욕심을 내려놓을 때와 마찬가지이다. 진정하는게 필요하다. 나는 그동안 너무 큰 도약들을 원해왔다. 범 내려온다 패러디 영상과 같은 일들은 나를 창작의 영역에 발을 내딛게 해줬다는 데에 의의가 있지만, 그건 일생에 몇 번 없는 일일 테다. 그러나 이제는 아주 조그마한 것들이 쌓여야만 그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다.
축구를 그만두고 방황한 몇 년간, 참 많은 도전을 했다. 그건 내 마음대로 결과가 나지도 않고, 주변 사람을 힘들게도 했다. 요즘은 걱정어린 시선을 받는다. 그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방법은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정진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냥.... 그냥 내가 만족할 때까지 해나가야 한다.
그것은 나만의 속도이기도 하고, 나만의 길이기도 하다. 단번에 닿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마저도 불확실하다. 그렇다면 기준을 내게 두고 한 발자국씩 앞으로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
나의 방황은 반드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방황하는 시간동안 에둘러 간 길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스스로한테 맞는 걸 찾아가면 된다.
분명한건 좋아하는걸 해야 살아남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