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도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사회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공동체마다 고유한 문화가 있다.
어떤 공동체는 인정과 베풂이 자연스럽고,
어떤 공동체는 시기와 질투가 공기처럼 흐른다.
어디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우리가 경험하는 삶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그 공동체 안에서 반복적으로 쌓인 경험이
바로 나의 세상이 된다.
반복된 경험은 나의 세상을
점점 더 단단하고 견고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안에서만 생각하게 된다.
다른 문화와 다른 가치관은
틀린 것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내가 속한 세계만이
정답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이처럼 우리는
어디에 속해 살아가느냐에 따라
사고의 방향마저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어떤 공동체에서든지
그 안에서 분별하는 눈을 갖는 일이다.
혹시 나는 내가 속한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세상의 대부분은
완전히 선하지도, 완전히 악하지도 않다.
모든 공동체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장단점을 구별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일제강점기를 떠올려보자.
당시에는
일본의 식민지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었고, 어쩌면 당연한 선택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독립투사들이다.
그들의 선택은
당시의 시선으로 보면 비정상에 가까웠다.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는 말해준다.
그들의 선택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때의 ‘비정상’이
지금의 ‘존경’이 되었다.
이처럼
다수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
항상 옳은 선택은 아니다.
너무 거대한 사회 이야기라
와닿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속해 있는 작은 공동체를 생각해 보자.
친구 모임,
직장 동료,
가족,
얕은 인간관계까지.
우리는 수많은 작은 공동체 속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어떤 모임에서는
서로를 비교하고 깎아내리는 문화가 흐른다.
어떤 모임에서는
서로를 세워주고 박수를 보내는 문화가 흐른다.
우리는 어느 공동체에 더 오래 머무느냐에 따라
점점 그 공동체 문화에 물들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문화가 곧 나의 정체성이 된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이것이다.
내 생각은 다르다고 느끼면서도
공동체의 분위기에 눌려
결국 그 흐름에 끌려가고 있는 순간은 없는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내 생각을 조용히 접어두었던 적은 없는가?
남들의 판단에 휩쓸려
‘나답게’ 생각할 기회를 포기한 적은 없는가?
오늘 하루,
내가 속한 공동체의 시선에 순응하며
진실을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는지
차분히 돌아보자.
어떤 사회에 있든
어떤 모임에 속하든
분별하는 눈을 갖는 것.
어쩌면 이것이 나 자신을 지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