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발적, 타의적 의지를 사용해 움직인다.
하기 싫은 것을 버티고, 참고,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리고 그 행동이 끝난 순간,
하나의 감정이 따라온다.
“이 정도 했으면, 이제 보상받아도 되지 않을까?”
즉, 반발력(보상심리)이다.
운동을 통해 10kg를 감량하면
오늘 하루는 치킨을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하루 종일 열심히 공부했다면
유튜브를 보며 마음껏 쉬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적절한 보상은 더 나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만들어준다.
문제는 보상과 목표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운동을 멈추면
몸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공부를 게을리하면
점수는 다시 내려간다.
내려간 점수와 불어난 몸무게를 보며 후회하고 좌절하고
다시 결단하고 나아가는 것을 반복한다.
사실 위 예시는 필자의 이야기이다.
최근에는
공무원 시험을 위해 하루 종일 공부한 뒤,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저녁 시간을 유튜브 및 웹툰에 쏟아버렸다.
그 시간을 돌아보면
지금의 나라면 하지 않을 선택인데,
그때의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 길을 선택하고 있었다.
결국 깨달은 것은,
공부를 ‘의지’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지를 사용해 억지로 행동하면
그만큼 정신적인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줄어들수록
유혹을 견디는 힘도 함께 약해진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바로 “끝난 직후”다.
운동이 끝난 후,
공부가 끝난 후,
노력이 끝난 바로 그 순간.
가장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항상 다짐하면서도 쉽게 무너질까?”
필자는 이것이 정체성의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삶을 살아내면서 매우 중요하다.
“나는 학생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느낀다.
말과 행동, 선택이 정체성에 맞춰진다.
정체성을 더 구체적으로 세워보면 어떨까?
“나는 공부를 즐기며
세상에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다.”
이 순간,
공부는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이 아니다.
공부는
나를 세상으로 넓게 나아가게 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된다.
즉, 내 삶의 방향을 이루는 수단으로 바라보게 된다.
공부 그 자체가 아니라
공부 너머의 의미를 보게 된다.
이때부터 더 이상 억지로 버티는 의지가 필요하지 않다.
행동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선택은 고민이 아니라 흐름이 된다.
정체성이란,
이처럼 의지를 넘어 삶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하지만 정체성으로 움직이는 삶은
명확하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어떤 중요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외부의 동기,
주변 환경,
체계적인 시스템보다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적인 믿음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습관을 바꾸기란 무척이나 어렵다.
새로운 목표와 계획을 세웠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변화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 아주 작은 습관의 힘(제임스 클리어 지음)
나는 어떤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 하나가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