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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혁 Feb 25. 2024

순간에 대하여

작은 빛

 흰 빛이 창에 번진다. 바깥은 하얀 눈이 내린다. 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젖는 것만 같다. 한낮에 눈 앞 모든 게 사라지길 바랄 때가 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무언가 보고 있는 상태. 빛이 횡행해도 밤처럼 눈 앞을 아득하게 만들어 버릴 수는 없을까? 눈이 오는 날 어렴풋이 그런 감각을 느낀다.

 이불을 개킨다. 바닥에서 자는 나는, 덮는 이불과 까는 이불을 정갈하게 접어서 두 덩이 쌓아 올리는 아침 시간을 좋아한다. 나는 개는 걸 좋아한다. 반듯하게 선을 맞추는 때만큼은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 든다. 식당에 가서 옷을 걸 곳이 여의치 않아, 외투를 고이 접어 의자 위에 올려 두는 순간도 좋아한다. 졸리고, 피곤하고, 배가 고파 정신이 흐트러지는 순간에도, 작은 노력으로 마음을 가다듬을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 감사를 한다. 작은 순간이 나를 사로잡는 때마다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는 위로를 받는다.

 강인하고 당당한 친구들이 멋져 보였다. 그들을 따라 하려 서툴지만 당찬 척을 한 적도 많다. 이제 그런 마음이 잘 들지 않는다. 의기소침하거나 소심해 보여도 그게 자연스러운 나 라면, 생활에 있어서는 그런 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당시, 대표님의 아이와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다. 아이는 낯선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어색했는지, 엄마인 대표님의 귀에 오므린 손을 가져다 대고 귓속말을 했다. 대표님은 말했다. “넌! 남자애가! 별 것도 아닌데 그냥 말하지 않고!‘“ 귓속말의 내용은 ’ 찜닭이 매워.‘ 였다. 나는 그 남자아이가 귀여워서 웃었다.

 작은 순간을 좋아하는 건, 내가 작은 사람이기 때문일까. 작은 사람의 좁은 시야에만 들어오는 미세한 부분에  지나친 감상을 부여하는 게 아닐까? 큰 - 일 할 사람은 그 정도 사소한 것쯤은 얼마든지 가져다줘도 성에 안찰만큼 큰 행복과 큰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지금의 나는 작은 순간, 짧은 몇 초가 보석처럼 빛나보이는 순간을 마음을 끌어모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작은 집에서, 작은 하루를 열고, 작은 순간과 함께, 작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지금을 사랑한다. 약한 마음을 가졌을 때 비로소 보이는 연약한 아름다움이 있다면, 진이 빠지는 저녁 끝이나 외로운 밤에도 그럭저럭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넓은 바다를 앞에 두어도 젖은 자갈의 맑은 윤기에 초점을 맞춰야겠다. 풍성한 나무 끝에서 손짓처럼 흔들리는 초록잎 하나에 시선을 보내야겠다. 창틀 빛 속에서 온유하게 부유하는 먼지마저도 행복을 느끼기 충분한 순간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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