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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Apr 04. 2022

비와 김밥

결핍이 알려준 것들

초등학생 시절, 비가 오는 날에는 교문 앞에 우산을 들고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들이 많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학교와 100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가까웠다. 그래도 나는 교문 앞 엄마들 속에서 우리 엄마를 매번 애타게 찾았다. 내 기억에 엄마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이 글을 우리 엄마가 보지 않기를 바란다. 내 기억과 우리 엄마의 기억이 다를 수 있으니)


비를 맞고 집까지 뛰어간 나는 집에 있는 엄마를 보고 괜히 심통이 났다. 서운했다. 그렇다고 엄마한테 왜 데리러 오지 않았냐고 묻지 않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부터 일기예보를 매일 확인한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으면 우산을 준비해야 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우산을 챙기지 못했는데 갑자기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일을 하면서도 시선이 계속 창밖에 머문다. 나는 '교문 앞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니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가 안 와서 서러웠으니까. 어떤 날은 직장 상사에게 허락을 구하고 잠깐 외출을 해서 우산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엄마는 그래야 된다고 믿었다.




몇 년 전까지 나는 김밥을 쌀 때 꼭 소고기를 넣었다. 초등학교 소풍 때 친구가 가져온 소고기가 들어간 김밥을 먹고 김밥의 신세계를 맛보았다. 정말 맛있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 집에서는 소고기를 국에만 넣어 먹었다.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 정성스럽게 싸주신 김밥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엄마가 되자 나는 우리 아이들이 먹을 김밥에 소고기를 넣었다. 맛있게 먹을 아이를 상상하면 뿌듯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소고기가 들어간 김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햄을 넣은 김밥을 더 좋아했다. 자기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김밥에 소고기 넣지 말고 햄을 많이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이상했다.




나이가 들어도 엄마에게 서운했던 기억은 남는다. 특히 결핍에 대한 기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부족했던 것들을 아이의 의견과 상관없이 채워주려고 했다. 갑자기 비가 와도 아이들은 엄마가 우산을 꼭 가져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는 맞아도 되는 거였다. 김밥은 햄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아이에게 물었다.

"갑자기 비가 오는데 엄마가 우산을 가져다주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냥 맞고 오면 되죠!"

"비 맞아도 괜찮겠어?"

"괜찮아요! 먼 거리도 아닌데요"


아이들은 그것을 결핍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나만 비 오는 날 애를 태웠다. 괜히 김밥 재료로 그 비싼 소고기를 고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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