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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May 02. 2022

내 생일을 기억하지 않는 엄마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

내 생일을 가장 잘 기억해주는 한 사람


오늘은 내 생일이다. 결혼 이후 달라진 내 생일 풍경은 이렇다. 시어머니께서 가장 먼저 나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시거나 전화를 하신다. 메시지 내용에는 사랑이 가득하다. 이 날만큼은 나는 시어머니에게 최고의 며느리가 된 것 같다. 생일 전부터 시어머니가 보낼 메시지의 내용이 궁금하다. 신혼 때의 남편은 내 생일에 긴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요즘도 가끔 써준다. 세 명의 시누이들도 메시지를 보내준다. 처음에는 '뭘 이렇게까지... 부담스럽게...'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시댁의 분위기가 그랬다. 기념일은 꼬박꼬박 챙긴다.


친정은 다르다. 자주 연락하는 언니도 생일날엔 연락이 없다. 오빠는 서로 생사만 확인하는 사이니까 기대도 안 한다. 친정 부모님은 내 생일을 가끔 기억한다.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한 해 보다 기억한 해가 더 많지만. 내 생일을 부모님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는 서운했다. 많이 서운했다. 서운한 마음은 매번 기억을 어린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했다. 


어릴 때 엄마가 내 생일이 지난 며칠 후에야 내 생일이었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물론 나도 내 생일을 잊어버릴 만큼 관심이 없었나 보다. 그 당시에도 서운했던 기억이 나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말할 수 없이 서운했다. 나도 내 자식들 생일은 잊지 않고 챙기는데. 해가 바뀌면 가장 먼저 달력에 표시하는 게 자식들 생일인데. 부모님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혼을 하고 나니 모든 게 시댁과 비교가 되었다. 양가 부모님의 경제 사정, 자식에 대한 태도, 가족의 친밀도 등등. 한 번은 내 생일에 시댁 식구들에게는 계속 연락이 오는데 친정 식구로부터는 한 명의 축하 인사도 없자 남편에게 괜히 창피했다. 남편은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이틀 전에 친정에 저녁을 먹으러 가서 친정 부모님께 "일요일이 내 생일이에요!"라고 말했지만 부모님은 귀담아듣지 않는 것 같았다. 예감이 불길했다. 


오늘 시어머니께서 가장 먼저 전화로 생일을 축하해주셨다. 이후 친정아버지에게 카톡이 왔다. 나는 생일 축하 메시지인 줄 알고 얼른 휴대폰을 확인했다. 휴대폰에는 아빠와 엄마가 같이 낚시하러 간 사진이 있었다. 혹시나 하고 다음 메시지를 기다렸다. 축하 메시지는 없었다. 화가 났다. 분명 이틀 전에도 말했는데.


이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고민했다. 엄마에게 직접 말하면 엄마가 잊어버릴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며 화낼 것이 분명하니 조금 더 침착한 아빠에게 말하기로 했다.


전화를 하면 감정이 격해질 것이 분명해서 글로 최대한 오해 없이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서 썼다. 내가 서운하다고.


아빠가 미안하다고 했다. 처음으로 들어본 말인 것 같다. 아빠의 나이 들어서 그렇다는 말이 변명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그건 넘어가기로 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나는 이제 감정을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아두지 않기로 했다. 그때그때 내 마음을 솔직하지만 무례하지 않게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운한 마음을 담아두었다가 갑자기 맥락 없이 감정이 폭발할지 모르니까. 내 마음을 표현해도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대상에게는 최대한 솔직해지려고 한다.


내 생일을 가장 먼저 기억해주고 챙겨주는 남편은 참 다정한 사람이다. 내가 혼자 식탁에서 무엇을 먹고 있으면 일부러 내 앞에 앉아 내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다. 아이들의 학교 공개수업이 있는 날이면 참석하여 수업을 참관하고 쉬는 시간이 끝나도록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온다. 아이와 급하게 인사하고 헤어지고 싶지 않단다.


나는 내가 꼼꼼하고 세심해서 다정한 사람인 줄 알았다. 아니다. 나는 무심하다. 가족들이 밥을 먹고 있어도 일이 있으면 얼른 일어나 버리고 아이들 수업에 가서도 얼른 수업만 보고 온다. 인사도 급하게 하고 간다. 마치 숙제를 빨리 끝내고 홀가분해지려는 마음으로.


내 생일에 대한 양가 부모님의 반응을 통해 남편의 다정함을, 나의 무심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기념일을 꼬박꼬박 챙기는 집에서 자란 남편은 결혼 후에도 자기 가족의 기념일을 잘 챙기는 게 당연했다. 반면 나는 매년 남편의 생일을 메모를 보고 확인할 정도로 기념일을 챙기는 것이 어려웠다. 


남편에게 내 생일에 대한 양가 부모님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편이 말했다.

"부모님의 성격 차이가 아닐까?" 

내가 말했다.

"아니! 나는 성의와 의지, 관심의 문제라고 생각해."


속상한 기분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아빠에게 메시지를 보낸 지 2시간 정도 후에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생일 축하한다고. 나는 미역국이라도 먹었느냐고 엄마가 물어볼 줄 알았다. 그게 끝이었다. 더 속상했다. 


남편이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저녁을 먹자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난 부모님을 보고도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집에 와서 내가 특히 엄마에게 기대가 많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엄마상에 우리 엄마는 많이 비껴간다. 가끔은 시어머니가 시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시어머니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괜히 우울하고 죄책감을 느꼈다.


나도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다정한 집안에서 길러졌다면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다정함을 장착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남편을 보면서 나와 비교하며 질투를 하고 있는 내가 더 초라하게 느껴진다.


가족들에 대한 서운함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모르겠다. 내가 생일 안 챙겨줬다고 삐치는 옹졸한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래도 오늘 다짐한 것이 있다. 나도 가까운 사람의 생일 정도는 챙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일이 뭐 대단한 거라고'라고 생각했던 마음을 바꾸고 '생일만이라도 안부인사는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시누이들의 생일 축하 메시지가 오늘따라 유난히 따뜻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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