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May 09. 2022

5월은 푸르구나! 나는 더 자라야겠다.

가족을 만나며 드는 생각

큰아들의 작품, 실물로 받고 싶다^^


이번 달은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어서 휴일에 친정과 시댁 식구들을 만났다. 가족들의 근황, 가족을 만나는 과정에서 겪었던 사건, 만나서 나눈 이야기들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앞서 발행한 내 생일에 대한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다. 댓글도 많았고 구독자도 늘었다. 가족에 대해서는 누구나 하고 싶은 말도 숨겨두었던 이야기도 많은가 보다. 내 글에 공감했다는 댓글을 읽으며 가족에 대한 서운함을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위로가 되었다. 


친정 식구를 만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친정 식구를 만날 때는 나의 불안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혹시나 식구들의 말과 행동이 남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한다. 오빠의 친정 부모님에 대한 무례한 태도가 거슬리고 창피하다. 시댁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들이 친정에서는 펼쳐지곤 한다. 남편이 우리 집을,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되고 신경 쓰인다. 친정 부모님을 만날 때는 남편 없이 만나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 


친정 오빠가 새집으로 이사한 기념으로 자신의 집을 가족 모임 장소로 제공했다. 미안한 마음에 언니와 내가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모임 당일 준비하기로 했던 음식을 찾으려 가려니 갑자기 귀찮아졌다. 부모님도 내 차로 모시러 가야 되고 음식도 찾으려 가려니 운전하는 남편에게 미안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부모님이 내 생일을 챙겨주지 않았는데 내가 어버이날을 애써서 준비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치사하고 불효 막심하게 느껴지지만 그때의 나는 그랬다. 서운한 마음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왜 중요하지 않던 생일이 갑자기 나에게 중요해진 건지, 나는 사랑받고 자란 자식이 맞는데 왜 아직도 사랑에 굶주린 사람처럼 이렇게 사랑을 갈구하는지 도무지 내가 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친정 식구와의 식사 내내 불안불안, 아슬아슬했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끝났다. 언니가 나를 대신해 음식을 찾으러 가는 수고, 오빠의 듣기 싫은 잔소리를 견디는 능력이 없었다면 나는 "앞으로 다시는 보지 말자!"는 말을 끝내 뱉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도 아무 일 없이 식사가 마무리되도록 노력했다.


새언니가 유학 준비에 쓰라고 용돈을 주었다. 고마웠다. 돈의 액수에 놀라기는 했지만 돈의 액수가 커서가 아니라 나를 신경 쓰는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돈을 받아봤다. 신기한 경험이다. 그 짜릿한 기분이 아직도 몸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시댁 식구와의 만남은 부담이 없다. 세 명의 시누이들이 식당, 메뉴 등을 결정한다. 결혼 초기에는 남편이 막내라 남편의 의견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속상했는데 이제는 시누이들이 알아서 결정하고 나는 가기만 하면 되니 좋다. 내가 주도적이지 않아도 되고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서 편하다. 어차피 내가 의견을 낸다고 해도 시누이들이 알아서 결정하니까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기로 했다. 식당을 결정하는 것은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12년의 결혼 생활 동안 남편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내가 나름대로 터득한 지혜다. 


시댁 식구들은 식당에서 식사 후 꼭 집으로 가서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눈다. 그냥 헤어지기 싫은가 보다. 내 마음이 바쁘고 불편할 때는 그것도 짜증이 났는데 내가 마음이 편해지니 그것도 괜찮다. 시부모님 댁으로 갈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시누이 집으로 갔다. 시누이들은 하나 같이 깔끔하다. 깔끔한 집에 가서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나는 좋다. 시누이들은 예쁜 그릇에 다양하고 푸짐한 다과와 안주를 내놓는다. 시누이 집을 가끔 방문할 때마다 극진한 대접을 받고 오는 것 같다. 곡진한 마음이 고맙다. 


나는 집에 예쁜 그릇도 없지만 음식을 푸짐하게 내놓지도 못한다. 남기면 버리니까. 버리면 아까우니까. 아마 어린 시절 가난했던 습성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다. 가난하지 않은 지금도 가난한 티를 못 벗은 것처럼. 그래서 손님 초대는 정말 큰 마음을 먹어야 가능하다. 시누이들이 자신의 집과 음식을 내어주는 일이 나에게는 대단하게 느껴진다.


시누이 중 한 명이 이번에 이혼을 했다. 마음이 힘든 시누이를 배려하기 위해 가족들이 각별히 말과 행동을 조심했다. 시누이들끼리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다들 성장과정에서 부모에게,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댁도 친정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농담으로 "제가 남편을 잘 키웠어요~!" 하니 남편의 큰 매형이 "우리 아내도 그런 말을 하는데. 그 말 별로예요. 내가 개도 아닌데." 이랬다. 이것은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건가. 내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생략된 말이 있을 뿐. 내가 남편을 잘 키운 것처럼 남편도 나를 잘 키운 거다. 부부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관계니까.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이제 5월 9일밖에 안되었는데 5월을 다 보내버린 것 같다. 가족을 만나는 일은 나에게는 에너지를 많은 쓰는 일인가 보다. 가족 모임을 치르면서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나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가족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는다는 것은 알겠다. 가족 모임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다는 말은 나는 차마 하지 못하겠다. 그렇다고 가족이 소중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생일을 기억하지 않는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