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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May 22. 2022

나는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 (1)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아들의 편지: 나도 이런 편지를 쓸 수 있는 자식이고 싶다.


이혼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시누이에게 차마 말할 수 없어 담아둔 말이 있다.

"그래도 언니는 든든한 부모가 있잖아요. 힘들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엄마가 있잖아요. 힘들다고 말하면 들어주는 엄마가 있잖아요."


엄마가 이해되지 않는다. 당연히 용서할 수도 없다. 어떻게 딸한테 이럴 수 있나 싶다.


오랜 기간 상담 공부를 하면서 꼭 해결하고 싶었던 마음의 문제가 있었다. 바로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작년에 직장 일로 번아웃이 왔고 우울증이 생겨 상담을 받았을 때 다뤄보고 싶었던 주제였지만 현재 당면한 문제만 상담하느라 제대로 꺼내놓지 못했다. 이제 와서 말하자면 상담자가 제대로 다뤄주지 않은 것도 같다. 어떻게 보면 번아웃도 어릴 때 부모와의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서 나타난 문제일 수도 있는데 상담자는 그냥 지나쳤다.


그때는 휴식으로 몸과 마음이 나아지고 있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마음이 편안해지니 더 너그럽고 관대해졌다고 해야 될까.


내가 우울증으로 인해 일을 쉬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도 부모님은 자세히 묻지 않았다. 자세히 물었어도 나는 자세히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단 한 번도 힘든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 어린 나에게 부모님은 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오히려 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부모님을 보는 내가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


대학 때 조교의 행정적인 실수로 졸업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부모님께 말하지 못했다. 나를 위해 학교에 와서 따져달라고, 학교가 책임지라고 말하라고. 친구 아빠가 나의 아빠인 척 오셔서 대신 말씀해 주셨다. 그때 아빠는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부모님은 대학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아놓은 돈마저 요구하셨다. 심지어 아빠는 돈을 더 벌어올 수 없냐는 말까지 했다. 나는 돈을 갖다 드리면 우리 집의 가난이 해결될 거라 믿었다. 열심히 벌어서 모았고 교사가 되어서도 열심히 갖다 드렸다. 그럼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아빠는 열심히 일해서 돈 벌 생각이 없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돈을 벌라고 말했지만 아빠가 듣지 않자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일해서 돈을 벌어오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자식들이 돈을 벌고 있었으니까.


자식들 중에 제일 편하고 만만한 사람이 나였다. 나는 돈을 달라고 하면 줬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거절하지 못했다. 돈을 주지 않거나 도움을 거절하면 집에서 부모님의 힘들어 죽겠다는 소리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나는 무기력하게 그냥 돈을 줬다.


엄마는 오빠와 언니가 결혼하자 각각 2명의 아이, 총 4명의 손자를 키워주셨다. 그것이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한 엄마로서 한을 푸는 것처럼. 힘들지만 꾸역꾸역 해냈다. 나도 내 아이를 키워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늘 그랬다. "너는 잘 사니까"


도움은 늘 언니와 오빠에게만 주었다. 오빠는 당시만해도 비정규직이었고 언니는 원래 육아를 못하니까 그렇다고 했다. 나는 서운해하지 않았다. 내가 더 잘 사니까 양보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빠에게 엄마와 인연을 끊겠다고 말했다. 아빠는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아빠는 나를 위로하거나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아마도 나를 원망하겠지. 지독하다고.


*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이 힘들어져 여러 편에 나눠서 발행하고자 합니다. 섣부른 조언은 삼가주시면 좋겠습니다. 부부간의 문제 뿐만 아니라 부모-자식간의 문제도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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