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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May 22. 2022

나는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 (2)

글쓰기는 자가 치유 방법

아이들을 위한 정성스러운 밥상은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


아빠는 무능했다. 경제적으로 특히 무능했다. 예민한 성격 탓에 직장에 다니지 못했다. 남 밑에서 일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일했어야 했다. 결혼을 해서 자식을 셋이나 두었는데. 도둑질만 빼놓고 무슨 짓이라도 해서 식구를 건사해야 했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엄마도 일하지 않았다. 아빠가 일을 못하게 해서라고 했다. 자식들이 다 커서 돌봄이 필요 없는 나이에도 일하지 않았다. 집안의 모든 어려움을 아빠 탓으로 돌렸다. 우리가 당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이유를 무능한 아빠를 만나서라고 말했다. 


IMF 외환위기가 왔을 때 오빠가 대학을 입학했고 그 후 언니와 내가 차례로 대학에 갔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자 오빠는 군대에 갔고 언니는 휴학을 했다. 언니는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우리 집이 가난하지 않았다면 계속 다녔을 것이다. 아빠는 언니와 상의도 없이 조그만 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언니를 취직시켜버렸다. 그리고 언니가 월급을 받을 때마다 매월 50만 원씩 가져갔다. 내가 교사가 되자 나에게도 요구했다. 부모가 요구하면 당연히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대학 때 아빠가 무슨 서류를 내밀며 우리 삼 남매에게 서명을 하라고 했다. 카드 회사에서 보낸 서류였다. 모두 서명했고 우리 삼 남매는 그 후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그때는 무엇인지 몰랐다. 신용불량자가 되어서야 알았다. 아빠가 세 명의 자식들 명의로 카드를 발급받아 돈을 대출받았다는 것을. 교사가 된 이후에도 나는 카드를 발급받지 못했다. 내가 카드 대출금을 모두 갚고서야 신용을 회복할 수 있었다. 가족 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내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교원임용고사를 준비하려고 노량진 학원에 가기 위해 모았던 돈을 아빠가 가져갔던 일이다. 그 당시 사범대 학생들은 3학년 겨울방학이 되면 무조건 노량진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두 달치 학원 수강료, 고시원비, 용돈, 교재비 등을 계산하여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겨우겨우 돈을 모았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나에게 아빠가 전화를 했다. 당연히 돈을 달라고 했다. 내가 노량진에 가야 될 돈이라 줄 수 없다고 하자 아빠가 말했다.

"꼭 가야 되냐?"


나는 또 무기력하게 돈을 주었다. 집에서 학교 도서관을 왔다 갔다 하며 임용고사를 준비했다. 내가 듣고 싶어 했던 강사의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가끔씩 영상에서 현장에서 수강하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과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죽고 싶었다. 현장 강의를 듣고 싶어 인근 광역시에 일주일에 한 번 고속버스 첫 차를 타고 가서 막차를 나고 올 때는 멀미 때문에 멀미약을 먹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부모님과 인연을 끊었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때는 두려웠다. 혼자 지낸다는 것이. 나에게는 결혼이라는 숙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버티자는 생각뿐이었다. 


지금도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있다. 나에게 일어난 어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빠의 무능함 때문인 것 같은데 나는 왜 엄마만 미워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도대체 나는 왜 엄마만 미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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