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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권은 어디에 있을까?(1)

페루 여행 중 가방을 도둑맞다.

여권을 잃어버렸다. 가족 모두. 칠레에서 만든 신분증까지 들어있던 가방을 누군가 훔쳐갔다. 우리 가족의 크록스 신발도 이제 없다. 페루 여행 중 버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버스 좌석 위쪽에 있는 짐을 확인하는 남편의 얼굴이 이상했다. 당황하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의 크록스 신발만 들어 있던 둘째 아이의 가방이 사라졌다. 대신 아이의 가방과 같은 검은색의 추레한 가방이 놓여 있었다. 페루 버스 터미널에 가서 도난 신고를 했지만 찾을 방법은 없었다. 칠레에 오면서 둘째 아이의 가방은 새로 산 것이라 아까웠다. 아끼던 가방을 잃어버린 둘째는 적잖이 속상해했다. 적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우리 가족은 서로를 위로했다.


우리 가족은 페루 이카에서 나스카로 경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나스카 라인을 보기 위해서다. 속상한 마음을 억지로 욱여넣으며 여행사의 승합차를 타고 비행장으로 갔다. 얼른 비행기를 타서 그 일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경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여권이 필요하다. 남편이 가방에서 여권을 찾았다. 남편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진다.

"여권이 없어!"


둘째 아이의 가방을 훔친 도둑은 미련이 남았는지 남편의 가방에도 손을 댔다. 가방을 통째로 가져가지 않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다. 하지만 가방 안에 있던 우리 가족의 여권, 신분증, 유심칩, 휴대폰 충전기, 멀티 어댑터까지 살뜰하게 챙겨갔다. 다행히 가방 안에 돈은 1원도 없었다. 신용카드와 현금은 나와 남편이 나눠서 각각 자신의 몸에 지니고 다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난생처음 겪은 여권 분실 사고의 충격은 컸다. 나는 온몸이 떨렸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남편은 땀을 비 오듯 흘렸다. 당황할 때 남편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아이들은 불안해했다. 나는 얼른 스마트폰에서 '해외에서 여권 분실 시 대처방법'을 검색했다. 블로그에 관련 글이 상당히 많았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여행사 직원이 우리를 가까운 경찰서로 데려다주었다. 여권을 재발급받으려면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고 분실 확인서를 받아야 한단다. 우리 가족은 멍한 상태로 여행사 직원이 시키는 대로 차에 타서 경찰서에서 내렸다. 경찰서에 가서 여권을 분실한 정황을 설명하고 어렵게 분실 확인서를 받았다.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행정처리 속도였지만 그것에 대해 불평할 상황이 아니었다. 경찰서에서 만난 높은 직급의 경찰은 속상해하는 우리 가족을 위로해 주었다. 우리를 경찰차에 태워 나스카 라인이 보이는 전망대로 데려가주었다. 전망대는 경찰서에서 자동차로 30분 넘게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그의 특급 예우가 고마웠지만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든 상태였다. 어서 빨리 한국 대사관이 있는 리마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날 우리 가족은 경비행기를 타면 멀미가 날 수도 있다고 하여 아침을 먹지 않았다. 경찰서에서 지체하는 바람에 점심을 먹을 시간을 놓쳤다. 바로 리마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7시간을 버스에서 보낸 우리는 리마에 있는 호텔에 들어가 육개장 컵라면을 먹고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컵라면이 이렇게 위로가 될 줄이야. 외국에서 먹는 컵라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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