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인데 주말 같은

2023. 10. 6.

금요일인데 아이들의 학교는 휴업일이다. 월요일이 칠레의 공휴일이라서 연달아 쉬기로 한 것 같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면 주말 같다. 하루 세끼를 챙겨야 한다.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어서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어제 골프장에 다녀왔고 밤에 유튜브로 영상을 보느라 늦게 잤다.


어제는 재미있게 골프를 치고 왔다. 공을 10개나 잃어버렸지만 공을 잘 친 홀이 많았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하루 내내 골프장에 있고 싶었다. '오랜만이니까 못 쳐도 괜찮아.' 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잘하려고 할 때는 그렇게 안 되더니. 이러다 언젠가 잘 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럴 때는 속상해하면 된다. 나는 일희일비하는 사람이니까. 기쁠 때는 온전히 기뻐하고 슬플 때는 딱 그만큼만 슬퍼할 것이다.


D-250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렇게 한가롭게 골프를 치고 서두르지 않고 식사를 준비하고 음식을 먹는 날이. 한국에서는 후다닥 해치우던 일을 칠레에서는 천천히, 정성스럽게 해보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남은 인생을 그렇게 살고 싶다. 삶을 숙제하듯 살고 싶지 않다.


아이들을 통학시키는 일이 편해지자 내 일상 곳곳에도 달라진 것들이 생겼다. 골프장에 갈 때 더 여유로워졌다. 나는 금요일마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 않아도 된다. 시장에 가는 일이 더 편해졌다. 일주일에 한 번 가던 시장을, 앞으로는 이주일에 한 번 가도 될 것 같다. 요즘 칠레 생활의 노하우가 쌓이기 시작했는데 곧 떠난다고 하니 아쉽다. 남편과 나는 매일 아쉬워한다.


이렇게 아쉬워할 시간에 칠레에서의 시간을 더 기억하고 기록하려고 애쓴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카메라로 담는다. 칠레의 뜨거운 햇빛, 꿀맛이 나는 맥주 같은 것들을. 한국에서 힘들 때마다 그것을 떠올리고 그리워하려고. 칠레를 그리워하고 칠레에서의 시간을 기억하려고. 나도 이렇게 여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려고. 칠레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내가 어디에 살든,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계속 확인시켜 줄 것이다.


한국에서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도망친 곳에 바로 낙원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하루하루를 정성스럽게 살다 보면 떠났던 마음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성실한 일상을 잘 보내다 보면 가고 싶던 곳에 기쁘게 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잘 지내보자고 나를 설득할 것이다. 힘든 일이 생겨도 일단 겪어보자고. 어떤 문제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것을 믿어보자고.


주말은 아니지만 오늘은 주말처럼 편하게 보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오늘을 어떻게 보내겠다는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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