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괜찮아

2023. 10. 7.

둘째가 어제저녁부터 열이 났다. 아이들이 아프면 나는 예민해진다. 걱정되고 불안하다. 근데 뭐가 걱정되고 불안한지 모르겠다. 해열제는 집에 있고 아이가 많이 아프면 집 근처에 있는 병원에 가면 되는데. 아이를 두고 내가 출근할 일도 없고 남편은 항상 내 옆에 있는데 말이다. 불안의 정체를 파악하지 않고 마냥 불안해했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도 모르고 화를 내고 무엇이 불편한지도 모르고 짜증을 냈다. 아이의 약을 사러 가는 남편이 서두르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잔소리를 한바탕 하고 나서야 알았다. 마음을 그렇게 써버리고 나면 늘 후회한다. 아이에게 아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른 내 마음을 알아차릴걸.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버리는 나를 오늘 발견하고야 말았다.


아픈 아이에 대한 나의 반응은 자동반사적이다. 습관과도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아이가 아프면 나는 당장 내일 아이를 맡아 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누가 좋을까. 친정 엄마가 좋을까, 시어머니가 좋을까. 누가 더 흔쾌히 아이를 맡아줄까. 내일 내 수업은 몇 시간이고 조퇴할 수 있는 상황인가. 남편과 떨어져 지낸 시간 동안 나는 혼자 그런 고민까지 감당해야 했다.


아이를 맡아달라는 나의 부탁에 누구든 흔쾌히 응해주지 않으면 나는 서운했다. 동료 선생님에게 수업을 바꿔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퇴근하고 미안한 얼굴로 시댁이나 친정에 가서 아이를 데려오는 일은 버거웠다. 출근하기 전 또는 퇴근 후에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료를 받고 다시 출근하거나 집에 와서 저녁을 준비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피곤했다. 아이가 아프면 나에게 많은 일과 복잡한 감정이 함께 찾아왔다.


그런 기억이 내 마음에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불안했던 거다. 아이가 아프면 아이가 힘들까 봐 걱정하기보다 아이가 아프면 내가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많아 부담스러웠던 거다. 아이가 이렇게 컸는데도 내 마음은 아직 그 기억에 머물러있다.


칠레는 월요일까지 연휴다. 아이는 충분히 쉬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고 화요일이면 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며칠 더 쉰다고 해도 상관없다. 내가 충분히 아이를 돌볼 수 있다. 이제는 '아이는 아프면 안 돼'에서 '아이는 언제든 아플 수 있다'로 마음을 바꿔야겠다. 내 마음의 기억도 리셋해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평일인데 주말 같은